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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료서비스의 경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와 그것을 구매하는 환자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지식과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 의료시장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은 하늘나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성직자들고 그들에게 영혼구원의 전권을 넘겨야 하는 신도로 이뤄진 종교시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의 효율성과 역동성의 기초가 되는 흥정을 병원에 가서 의사와 해본 이가 얼마나 되는가. 컴퓨터 단층찰영을 하라면 해야한다. 항암제를 먹으라면 먹어야 한다. 배를 째고 장을 들어내자고 하면 째고 들어내야 한다. 살려만 다오. 시키는 대로 다 할 것이며, 돈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기능할 것이라고 믿는 이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뿐이다." (홍기빈의 한겨레21 '증증질환 위주의 고가상품 개발' 기사 중에서)

관련 기사 : 중증질환 위주의 고가상품 개발

십수만원 짜리 가전제품은 며칠을 고민해서 산다. 그것도 모자라 매장에서도 한참을 상담한다. 그렇게 사놓고도 불만스러우면 바꾸거나 환불하기도 한다.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적절한 가격과 상품의 질을 놓고 벌이는 흥정은 시장주의자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시장 효율성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흥정이 없다면 그건 시장이 아니다.

나는 병원에서 한번도 흥정해본 적이 없다. 창구에 의료보험번호를 불러주고 기다리다 간호사 지시에 따라 진료실로 들어간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아픈 곳을 내어보이고 문진에 대답한다. 몇가지 문진소견을 듣고 나오면 간호사는 처방전과 간단한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그리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약을 산다.

의료서비스를 구매하는 과정 어디에도 흥정은 없다. 서비스 판매자의 판단에 따른 일방적인 지시만 있을뿐이다. 이건 분명 시장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회는 의료서비스를 의료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질병과 의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의료서비스를 구매해야 할지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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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빨 잘 듣는다는 델 가볼까? 하지만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입소문은 위험하다. 질병이란 게 그렇게 증상치료만 의존할 게 못 된다. 안그래도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율이 세계최고라 하지 않는가?

깨끗하고 시설 좋은 델 가볼까? 그런데 시설 좋은 병원과 의료서비스가 무슨 관계인가? 자꾸 사람들이 시설 좋은 데만 찾으면 의사들이 많은 돈을 들여 병원을 치장하는데만 신경쓸 것이고 결국 환자들이 부담하는 의료비만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를 판단할 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료상품을 선택할 때 상품의 진짜 질이 아닌 약빨이나 시설 등의 요소로 판단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의사는 의료의 질을 높이기 보다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칠 증상치료나 많은 자본이 드는 시설투자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건 의료시장이 아니라 '약빨 시장', '병원인테리어 시장'이다. 환자는 진짜 필요한 상품이 아닌 증상서비스와 인테리어 서비스를 더 받게 되고, 따라서 환자가 부담해야할 의료비는 훨씬 높아지게 된다. 아주 비효율적인 시장이다.

의료서비스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건 흥정의 무지뿐 아니다.


의료는 소비자가 자신의 수요를 예측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는 상품이다. 누구도 자신의 병을 예상하지 못한다. 또 병은 환자의 경제수준을 가리지 않고 온다. 부자에겐 비싼 병이 오고 가난한 자에겐 싼 병이 오는 게 아니다.

암에 걸리면 병원비와 요양비 포함해서 수천만원이 든다. 만약 암에 걸린 환자가 가장이라면 그 집안은 그대로 풍비박산이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해도 자신이나 또는 가족 중에 중병에 걸리면 경제적 빈곤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영화 식코를 보면 보험에 가입하고도 병 때문에 파산한 부부 애기가 나온다. 전직 신문사 편집장과 기계공이었던 부부는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각각 심장병과 암에 걸리면서 집까지 팔고 딸의 집 뒷방에 더부살이 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사 첫날 앞으로 어쩔거냐며 다그치는 아들 앞에서 50대 부부는 눈물만 흘린다.

어떤 시장에도 이런 거래는 없다. 대형차 사지 못하는 사람은 중형차 사고 중형차 사지 못하는 사람은 경차를 산다. 그것도 안되는 사람은 차를 사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병은 그럴 수 없다. 억대의 치료비가 드는 백혈병 걸린 사람이 돈이 없다고 감기약 먹고 나을 수는 없다. 의료는 소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시장이다.

질병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우리 사회엔 질병에 의해 경쟁의 기반과 여력까지 빼앗긴 사람들이 적지않다. 시장의 활력을 위해서도 불가항력적인 경쟁이탈은 막아야 한다. 투자의 실패는 몰라도 질병의 실패는 구제되어야 한다.

헬스로그를 운영하시는 양깡님의 글을 보았다.

양깡님은"웰빙시대에 망하는 의사들"이란 글에서 양심적인 처방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의료공단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리셨다. 또 의술보단 상술로 성공을 거두는 의사를 보면 허탈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환자와의 진료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커피숍을 운영한다는 의사분 얘기도 있었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 의사들이 의술과 상술 사이에서 얼마나 고뇌가 깊은 지 알 수 있다.

"의료에 있어서 웰빙 영역 중 그러한 것이 건강보조식품이나 보완대체요법들이다. 보완대체요법이 가진 무궁한 가능성에 대해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공급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가장 효과가 있는 치료와 의사로써 가장 수입이 되는 치료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해야하며, 스스로를 합리화 해야하는 시대다. 이를 부추기는데에는 선심성 행정에만 급급하고 실질적인 의료수가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이 있다고 본다" 


시장화 될 수 없는 의료를 시장상품 취급하므로서 환자뿐 아니라 의사도 의료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언으로 의술의 인류에 대한 봉사를 되뇌이던 그들이 시장에서 의료를 맞닥뜨릴 때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충실하면 양심을 저버린 나쁜 의사가 되고 봉사의 정신으로 시장에 맞서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문제는 시장화 될 수 없는 영역을 시장화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시장화 될 수 없는 서비스라면 공적제도로 만드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의사들이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료를 시장에서 선택해야 하는 환자들의 고민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고 의사들도 안정적으로 의술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하루도 쉬기 힘든 의사들의 휴일은 공무원 수준으로 보장될 것이다. 병원의 투자와 경쟁자에 대한 걱정 없이 환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 있게 된다. 연봉은 노동자 평균 임금의 몇배 식으로 정해지고 일정 수 이상의 환자를 보게 되면 수당도 청구할 수 있다. 의사들의 평가는 그간 자신들이 처방한 의료를 바탕으로 한 논문으로 하게 하면 될 것이다. 논문은 인터넷에 공개하면 공정성에 대한 시비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의사가 공무원이 되면 또 다른 문제점도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공무원화는 전체적으로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더 많아 보인다. 영국의 경우를 연구해서 조금 더 개선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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