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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어제 kbs 세상의 아침 프로그램(오전 6시부터 8시) 중 배칠수 세상만사 코너에서 IT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실태에 관한 방송이 있었습니다.

22일 한겨레신문에서 IT개발자의 노동실태에 관한 기사가 나간 후 세상의 아침 작가님으로부터 취재를 하고싶다는 연락이 와서 IT개발자 한 분 연결해드렸고 개발자 오프라인모임도 취재에 응했습니다.  



그날 준비한 개발자 오프라인 모임의 현수막입니다. 다들 현직에 계셔서 얼굴을 공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찍기 힘드니 현수막을 크게찍은 거 같은데 현수막 준비안했으면 클 날뻔했습니다.

카메라맨 수첩을 잠시 들여다보니 오프라인모임 다음날 소프트뱅크미디어랩 류한석소장을 만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시간도 보이더군요. 11시쯤.


제게 인터뷰 가능하다고 메일 주셨서 세상의 아침에 연결해드린 분입니다. 목소리가 밝으셔서 취재할만한 내용이 있을까 걱정(?)도 조금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아주 밝게 자신이 받은 고통과 휴유증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셨습니다.  

오프라인모임에 오신 카메라맨께서 이분을 찍고 오셨는데 팔도 잘 못드시는 모습 봤다며 걱정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목소리도 밝으셨지만 매사를 재밌게 살아가시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취재 끝나시고 후기까지 메일로 보내주셨습니다. 아래는 그 분이 공개해도 좋다며 보내주신 메일 내용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졸라 웃었습니다. 이제서야 취재해? 소재가 존나 부족하긴 부족하구나. 하긴 뭐, 마녀사냥 안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죠. 언제나 공공의 적 아니었습니까. 인터넷=음란물, 이 등식 깨는데, 정확히 10년 걸렸습니다.

1991년부터 두들겨 맞기 시작한 PC통신, 두들겨 맞아야 할 KT나 데이콤은 다 쌩까고 두들겨 맞는건 늘 통신하는 사람들이었죠. 네티즌은 음란물을 보기 위해서 통신에 접속하는 사람. 이 이미지 깨는데 10년 걸렸습니다. 지.겹.게.도. 투쟁해서 말이죠.

내 속으로 지금와서야 취재를 하고 별 난리를 다 핀다고 낄낄댑니다. 웃기는 짓이라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찍으러 온 분께도 그랬습니다. 당신들도 살인적인 노동강도지만. 이쪽은 당신들보다 더 한다고.

자기들 강도를 어떻게 아냐고 묻습니다. 풋, 예전에 프로덕션에 잠깐 있었거든요. 뭐 프로덕션이라고 하기는 뭐하고 PD출신 하나가 동영상쪽으로 계속 일들 한 지라, 옆에서 볼 일이 있었죠. 그래서 대충 동영상 판이 어케 돌아가는지 단가가 얼만지 대충 압니다 (웃음)

노는 놈, 아무 할일 없어서 컴퓨터나 만지고 있는 인간들, 세상에 불만 많은 인간들. 그 인간들로 포장되어졌던 인간들이 이제서 울면서 말합니다. "아무리 꿈이 이거더라도, 꿈 가진 놈은 절대 이 직업, 하지 마.." 라고. 걔들 꿈까지 망가트리긴 싫어서 말이죠. 욕 나오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사이언스 키드라는 말들이 약간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꿈을 물으면 과학자라고 대답하던 세대가 있었습니다.(뭐 저는 약간 늦은 세대지만) 그 길을 위해서 이거건 저거건 다 필요없고, 내가 하고싶은 일이면 뭐든지 상관없다. 라고 생각했던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 세대들이 선택했던 게, IT였습니다. 왜냐면, 컴퓨터가 좋아서, 컴퓨터로 뭔가를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 살아가고 싶은 게, 그거밖에 없었기 때문에.

과학자가 되진 못하더라도, 이 나라의 IT가 가장 앞서갈 수 있고, 우리는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이루었습니다. 버블? 웃기는 소리입니다. 그게 어디서 만들어졌을까요. 대기업들이라는 미친것들이 이 바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이 바닥 룰이 완전히 개판이 되기 시작합니다. 개미들이 죽어라 뛰어들어 벽을 깨 부셔 놓으니, 대기업이 들어오고, 이 미친 사회의 룰이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정상적인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무너진 시스템은, 피해자를 양산하기 시작합니다.

인건비는 한도 끝도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국가에선 말도 안되는 장미빛 환상을 내놓으면서 전혀 관심도 없고 공부도 안된 사람들이 이 바닥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개판이 더욱 개판이 되어 가면서, 무너진 바닥이 더욱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꿈도 로망도 없는 것들이 생활을 위해서 들어옵니다. 그런 것들이 주류를 차지합니다. 그런 것들의 쪽수가 한도 끝도 늘어납니다. 결국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위해서 이 미친 짓을 계속 하게 됩니다.

굶는게 무서운게 아니라, 꿈이 없어지는 게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꿈 하나 먹고 굶으면서 살아갔던 사람들이 그 꿈이 없어지는 게 무서워지는 겁니다. 그게 엿같은 겁니다. 내가 꿈이었던 이 직업이 정말 3D로 망가질까봐, 이제 이 직업 선택할 놈이 하나두 없어질까봐. 이젠 완전히 막장인 놈들이 할 짓 없어서 이거 선택할까봐.

이 미친 나라에서 살아가기 참 어렵습니다. 꼬우면 외국으로 떠야겠지만, 그래도, 이 미친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살아가기 위해서, 이 미친 나라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남아있어서 아둥바둥 합니다. 그게 이 나라에 마지막 남은 애정입니다. 어쩔까요. 이 나라를 버려야 할까요. 아니면 이 나라를 바꿔야 할까요. 예전엔 이 나라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가 이 나라를 버리는 게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미친걸까요. 아니면 이 나라가 미친걸까요.

많이 슬픈 하루입니다.

25일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했던 유일한 여성분입니다. 일주일이 총 168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4시간 빼고 164시간 일했다고 합니다. 이게 노동입니까? 이건 노동지옥 노동수용소입니다.


노동부 하는 게 그렇죠. 그간 야근 취재하면서 몇번 노동부 부딪혀 봤는데 노동부가 아니라 기업부라는느낌입니다. 불법야근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느낌입니다. 정책 필요 없습니다. 노동부가 불법야근 법대로만 단속해도 됩니다. 그런데 안합니다. 기업들 경영환경 걱정이 먼저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부가 아니라 기업에 노동자원을 공급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노동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죽음의 위협까지 느끼는 노동자의 처절한 환경은 아마 안중에도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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