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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분 나(커서)와 it연맹 조형일 실장님은 다소 당황하고 있었다. 20분이 오신다고 메일 주셨는데 그때까지 자리에 앉으신 분은 두 분. 방송국 등 언론사에서도 몇 분 오기로 했는데....  우린 코리아타임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우리가 착찹하게 출구를 바라보는 동안 먼저 오신 두 분은 정말 유쾌하게 얘기 나누고 계셨다. 두번째 오신 분이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웃음소리가 나왔다. 역시 같은 업종이라 금새 말이 통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조금 뒤 아름다운 아가씨 등장. 한 사람 한 사람의 출현에 목메고 있었는데 거기다 아름다운 여성분이라니. 기쁨 두배였다.

이후로 참가자들이 이어지면서 6시40분쯤 10명으로 모임을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13명의 it 종사자들이 모였다. 대학교 3학년 학생 두 분, 대학원생, 초급개발자 중급개발자, 17년경력의 고급개발자, 그리고 여성분까지 참가자의 구성은 꼭 짠 것처럼 아주 다양했다. 소프트뱅크미디어랩소장 류한석님의 참여도 다양성의 폭을 더 넓혔다.(처음 류한석님을 못알아봤다. 역시 사진과 실물을 대응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바닥이 좁다는 것도 드러났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퇴근 후 또 만나셨다. 두 분 반갑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셨을 듯 하다.


it연맹에서 준비한 책자. 5000개의 야근청원 댓글과 it맨 사직서, 언론사의 관련 기사, 연장수당청구 방법을 담았다.

17년차 개발자님의 활약이 대단했다. 국내대기업부터 해외취업까지 폭넓게 경험하신 한국에선 살아남기 힘들다는 고급개발자로서 여러 가지 깊이 있는 얘기들을 해주셨다. 방송국 인터뷰도 자원하시면서 개발자 야근 이슈화에 적극 나서주셨다.

유일한 홍일점 여성분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심각했다.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심한 체력저하로 1년간 밖에 못나갈 정도로 아프셨다고 한다. 아픈 것보다 더 상처를 줬던 것은 자신을 쓰다가 고장난 기계 취급하는 사측의 태도였다고 한다. 모임 중에서도 몇 번씩이나 쓰러져도 회사에서 쓰러진다는 구호(?)를 다짐하셨다.

12년차 개발자님은 답답한 현실에 지친 듯 말하기도 싫다며 투덜대셨지만 결국 차분한 지적과 호통을 섞어가며 방송국인터뷰까지 마치셨다.

베스트블로거 산골소년님도 나오셨다. 나는 아이디와 모습이 산골소년님처럼 그렇게 일치하는 분을 본적이 없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산골소년처럼 생기셨다. 말투도 웃음도 행동도 산골소년이었다. 블로그의 그 장난스런 포스팅도 산골소년님 모습을 보니 단박에 이해되었다.

3학년 재학중이라는 두 대학생의 모습을 가끔 살폈다. 과연 1년 뒤 취업할 그들은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른들이 많은 분위기에 압도된 건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때문인지 모르지만 좋진 않았다.

가장 바쁘신 분은 kbs세상의 아침 피디셨다. 들어오실 때부터 땀을 뻘뻘 흘리시더니 모임 내내 카메라와 마이크를 이리 저리 옮기시면서 그 땀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분이 얼마나 힘드냐며 물어보니 모이신 분들 이구동성으로 “진짜 힘든 사람은 여기 나오지도 못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어쩌면 그 분이 카메라를 들이대니 현장감이 생겨 더 분위기가 열띠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분이 원하는 장면들과 얘기들은 다 담아가신 듯 하다.

프레시안의 성현석기자님은 얘기에 직접 참여도 하셨다. 예전에 관련 분야에서도 일하셨다고 한다. 취재자로서가 아닌 진정으로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기자로서 멀찍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밀착하는 모습이 좋았다.

조형일정책실장님은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간 정통부와 접촉하면서 몇가지 성과도 얻어냈다고 한다. 정통부도 개발자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고 it연맹의 요구를 고민할 것이며 그 요구에 맞게 구체적 법안도 준비하겠다고 한다. 조실장님께서 잠시 언급한 내용이지만 이건 몇 달전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운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it연맹에 박수를 쳐드리고 그 다음 문제가 되는 것들을 개발자와 it 종사자들이 it연맹에 전해야 할 것이다.

야근에 대한 시각은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야근은 it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의 기업문화에에 만연한 야근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류한석님은 it기업의 현재 노동환경은 한국의 실정에 최적화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고치기 위해선 결국 한국사회의 문화와 전반적인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일 거다.

다른 시각은 it 직종의 특수성을 한국사회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it 업종의 원청지휘자나 경영진이 대부분 비개발자 출신으로 전근대적 사고로 개발자를 다루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12년차 개발자님은 개발은 책상에 앉아서 시간을 투입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답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 창조적 작업이라면서 그걸 밤새워 가둬둔다고 무슨 능률이 오르겠냐고 말씀하셨다.

나도 한마디 보탰다. 17년차 개발자님이 개발자들도 배포를 가지고 윗사람을 상대하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런 배포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로선 많지 않다. 자신만의 기술과 배짱이 있는 사람외에는 그러지 못한다. 한국사회전체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그런 친기업적 구호아래 노동자가 어떻게 배포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노동자의 배포를 만들어주기 위해선 사회적 구호를 바꾸어야 한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 이런 구호라면 노동자가 사업주 앞에 보다 당당해 질 것이다. 개인의 배포가 아닌 노동자의 사회적 배포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구호를 바꾸는 일은 바로 사회적 이슈화를 통해 가능하다. 계속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문제점을 얘기하면 구호는 곧 바뀔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탰다. 야근은 원청이나 사업주에게 경제효과를 줄지 모르나 사회적 경제효과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노동자가 열심히 야근하는 시간에 유럽의 노동자들은 4시에 끝마치고 축구를 보러간다. 한국사회가 야근으로 고작 야식이나 유흥주점  산업을 만들어낼때 유럽과 미국 사회는 수십 수백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거대한 레저 스포츠 산업을 일으킨다. 기회비용으로 봤을 때 한국사회의 경제효과가 더 손실이 되는 것이다. 축구장에 관중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한국언론의 지탄을 보면 그래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또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비생산적 산업은 결국 경제기반을 취약하게 한다고. 웃기는 개소리다. 이미 우리는 축구보다 더 비생산적이고 반사회적인 산업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학원산업이다. 극소수의 학생만을 위한 대입학원산업에 한국사회는 수십조원의 돈을 쏟아붇고 있다. 이 아무런 사회적 생산도 없이 학생을 혹사시키는 피폐한 산업에 수십조를 쏟아붓는 이 사회가 건강한 레저와 축구산업의 비생산성에 우려를 표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되는가. 참 기가 막히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돌아가는 개발자들 모두 만족한 듯 보였다.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동안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듣는 내가 후련했다.

25일의 분위기를 알고 싶은 분은 목요일 오전 7시 세상의 아침 배칠수 세상만사를 보시라.

* it 개발자 모임에 참석해주신 13분의 참가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주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 참석자 : 개발자 및 it 종사자 13분, it연맹 조형일 정책실장님외 1분, 무브온21 편집장 초당님외 2분,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님, 소프트뱅크미디어랩 류한석소장님, 세상의 아침 피디님 그리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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