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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요금에 생각지 못했던 서비스요금이 청구되는 바람에 전화상담원과 장시간 통화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화가 많이 났던 모양이다. 필요 이상으로 언성을 높이며 상담원을 괴롭혔다. 무조건 그 요금을 빼달라고 요구했고 확답받기 전에 전화를 끊지 않겠다고 했다. 한참을 당하고 있던 여자상담원이 참기 힘들었던지 조용히 남자 직원을 연결해주었다. 나도 속물이었다. 남자직원과는 몇번의 대화만에 통화가 끝났다. 부당하게 청구된 요금은 돌려받기로 했지만 사실 그건 여자직원을 통해서도 해결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매섭게 따져야 회사가 정신차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시비를 걸었던 건 회사가 아니라 사실은 여자직원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소비자로서의 고발의무에 충실했다기 보다 고객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당시 내 사정이 조금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화풀이 대상인 여자직원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회사의 페널티가 두려워 내게 고분고분했을 것이다.

당시 그녀를 일방적으로 쏘아붙인 나는 별 미안함을 느끼진 않았다. 왜? 나는 손님이니까. 손님은 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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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부산)2008년 1월9일자


관련기사 : 블랙컨슈머 등쌀에 알바생 속탄다.

블랙컨슈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막무가내 식으로 무리한 피해보상을 요구하여 업체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들 때문에 피해를 겪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이들을 직접 상대하는 종업원들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무리한 피해보상이나 요구를 종업원의 월급에서 보상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용돈을 벌겠다며 아르바이트로 사회경험을 하는 학생들이 이런 소비자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알바월급을 이들의 무리한 요구를 무마시키는 데 쓰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세상을 배우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하며 세상을 배운 학생들이 또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꿈꿀며 같은 블랙컨슈머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든다.

아마 블랙컨슈머들도 나처럼 절대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엔 이런 악덕소비자를 지탄하는 데 쓰이는 문구가 없다. 그저 손님은 왕이다. 무조건.

우리는 항상 손님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손님이지만 또 누군가에는 종업원이 된다. 우리가 종업원에게 왕대접을 받으려 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를 손님으로 왕대접 해야 한다. 소비자대중을 떠받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손님은 왕이다'라는 모토는 우리 스스로를 옥죄는 고약한 문구이다.

손님이 될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많으면 손님이 자주 될 것이고 돈이 없으면 손님이 덜 될 것이다. 돈 많이 가진 사람은 항상 왕이 될 것이고 돈 적게 가진 사람은 아주 가끔 왕이 될 수 있다. 결국 '손님은 왕이다'라는 이 모토는 빈부에 의한 계급 정당화에 수렴하게 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돈에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게 되면 결국 우리 모두를 자본에 종이 되도록 만들게 되는 것이다.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은 결국 다른 말로 '우리는 자본의 종이다'이다.

마트의 종업원들에게 의자를 주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할인점의 계산원들이 장시간 서서 일하는 바람에 하지정맥류 등의 각종 직업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유럽에선 마트의 계산원에게 의자를 주고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 대형마트 계산원에게 의자를
 
왜 할인점의 계산원은 의자가 없을까. 의자가 있으면 계산이 잘못되기 때문일까? 담당자는 미관상의 이유를 들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것도 손님을 왕으로 모시기 위함이다. 손님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할인점업체들이 종업원에게 의자를 주지 않는 것이다. 손님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서 계산원들은 그렇게 온갖 병에 시달린다.

분명히 알자. '손님은 왕이다'는 소비자가 아닌 자본의 이익에 복종하는 모토다. 자본은 우리가 받은 알량한 서비스를 핑계로 바로 우리 자신을 그렇게 혹독하게 통제하고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모토를 온 국민이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바람에 자본은 종업원(국민)을 다루기 한결 쉬워졌다. 소비자 대우해주는 척 하면서 그 몇배로 우리에게서 뽑아내고 있다.

왕은 없다. 우린 누군가의 종이 아니라 다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손님은 왕이 아니라 종업원에게 물건 구매에 도움을 받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웃으로서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야지 복종을 원해선 안된다.

복창하라. 손님은 왕이 아니다. 손님은 다정한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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