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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은 부도덕한가?"

이 말엔 매매춘이 부도덕하지만 않다면 허용해도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매매춘은 도덕성만 검증한다 해서 합리화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도덕성에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매매춘 합법화로 인해 야기될 사회문제를 검토하고 그것들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역주행하는 부분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몸을 파는 쪽은 여자고 사는 쪽은 남자다.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매매춘의 99%는 '여팔남사'이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이렇게 성별로 구별된다는 것은 이 매매가 자유롭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성차별에 의해 생겨난 매매라는 것을 말한다.

이건 빈부에 의한 직종의 차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회적 여건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교과서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도 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진 자가 될 수 있다. 빈부에 의한 직종의 차이는 극복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종이나 태생, 성별 등의 존재에 의해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현재 한국의 여성 임원은 전체 기업의 5%도 안된다고 한다. 신입사원 합격자들을 봐도 여성비율이 남성의 절반도 못되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의 여성비율도 이제 10%를 맞추니 마니 하고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영화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여성의 매매춘은 사회진출이 막힌 최하단계의 여성이 선택한 비자발적 매매이다.

상품화에는 자발적 매매라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사려는 사람과 파려는 사람 모두 기꺼이 사고 팔고 싶어할 때 시장은 도덕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처럼 파는 사람이 비자발적인 상품화는 그 상품을 파는 사람에 대한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상품의 소비자와 유통업자는 파는 사람이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그들에게 불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불평등한 한국의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도 한국의 거대한 유흥산업에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류 초기부터 매매춘이 있었다며 그런 역사적 사실을 매매춘 합리화의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인류 초기 그 어떤 여성도 자신의 몸을 팔고 싶어 하진 않았을 것이다(여성이 매춘을 즐긴다는 것은 남성들의 상상에나 있는 일이다.). 매매춘은 여성을 사려는 사람과 그 여성을 공급해주겠다는 남성들에 의해 조직되어졌을 것이다. 섹스를  원하는 남성들의 요구에 맞추어 포주들이 여성을 사서 공급하며 판매구조가 만들어 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매춘의 역사성이 매매춘 합리화의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건 남성지배의 잔혹한 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일뿐이다.

예기치 않은 문제도 발생한다. 성의 상품화는 성상품 소비의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일을 킬 수있다. 돈이 없어 섹스를 소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것이다. 우습지만 '성복지'를 해결하란 시위가 있을 수도 있다. 상품이라면 퍼져서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성을 상품으로 만들었다면 성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성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섹스만 파는 여자를 찍어서 시장에 내다놓을 것인가? 미녀의 성을 가진자만 독점한다는 불평은 또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이건 애초에 상품화 될 수 없는 성을 상품화 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이다.

성매매는 도덕적으로 확실히 문제가 있다. 우리가 사고 파는 상품들은 모두 노동이 투입된 것들이다. 그러나 성매매는 노동의 투입은 거의 없고 존재 자체가 상품이다. 노동을 통한 상품화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인간 존재 그 자체의 상품화는 절대 받아들여져선 안된다. 존재의 상품화는 존재의 인권 침해로 이어져 자본의 폭력에 인간을 내몰게 되기 때문이다.

배우들도 존재 그 자체로 상품화 되긴 한다. 그러나 살펴보면 그들이 존재 자체만으로 상품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배우가 되기까지 스탭과 자신의 엄청난 노동이 들어가고 그 노동이 존재에 입혀지면서 상품화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가 상품성을 인정받았을 때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매춘부가 성취감을 느끼긴 어렵다. 성을 파는 사람은 그 투입하는 노동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가리키는 성구매자의 손가락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그가 그의 노동에 성취감을 느낄 여지는 없다. 노동의 제공자로서 판매자로서 어떤 자존감이나 자부심도 없는 그는 사고 팔리는 노예같은 존재일뿐이다.

사실 성매매합법화에 대한 반론은 이렇게 길게 쓸 필요 없이 한마디면 된다.

"당신의 딸을 그런 곳에 보낼 수 있는가?"

이 말에 위에 얘기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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