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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을 위해 노르웨이를 방문했다. 이튿날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연구소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환담을 마치고 내려가던 중 낡고 작은 엘리베이터가 서버려 김대중 대통령 일행이 갖혀버린 것이다. 난감한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농담을 던졌다.

"이런 때는 여자와 단 둘이 갖혀 있어야 하는데..." (김대중 자서전 2권 386p)

그러나 이 재미있는 농담은 별 효과를 못 봤다고 한다. 일국의 정상이 엘리베이터에 갖힌 상황이었다. 어쩔줄 몰라 패닉에 빠진 수행원과 노벨위원회 측에 김대중 대통령의 농담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상에서 농담을 많이 즐겼다. 김대중 자서전에 보면 그런 상황이 종종 나온다. 특히 영부인 이휘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농담을 즐겨 건네는 대상이었다.


집에 아내와 함께 있으면 매일 웃습니다. 웃기는 것은 나고, 웃는 것은 집사람이예요. '당신은 나하고 사는 동안에 자꾸 웃어서 건강해졌으니까 그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김대중 자서전 2권 231p)


김대중 대통령의 농담은 일상뿐 아니라 정치 활동에서도 윤활유 역할을 했다. 1964년 일본으로부터 1억 30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은 걸 폭로한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이 상정되었을 때 필리버스터로 막아선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 중엔 이런 내용도 있다. 


이렇듯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애국자를 동료의원들이 범죄자로 만드는데 동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리고 의장 볼일이 급한데 화장실에 다녀와서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의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의장도 웃으면서 다녀오라고 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발언을 이어갔다. (김대중 자서전 1권 170p)


독재정권에 탄압받았던 시기도 김대중 대통령은 농담으로 승화시켰다.


외국에 나가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며 그 비결을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랫동안 군사 독재의 박해를 받으며 지내오는 동안 제 인생이 중단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노화도 중단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김대중 자서전 2권 129p)


가장 절망적일 때도 김대중 대통령은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1980년대 사형수로 감옥에 있을 때 아내가 내 앞에서 '김대중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 가장 섭섭했습니다. (김대중 자서전 2권 231p)


곤란할 거 같은 질문도 재치있게 받아넘겼다.


"요즘 클린턴 대통령은 정치는 잘하지만 스캔들도 많습니다. 이번에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셨는데 관상학적으로 어떤 운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스캔들을 생각하면서 얼굴을 봤는데 스캔들 가지고 망할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얼굴이 아주 순진하고 어린애 같은 데가 있어서 악운이 왔다가도 도로 도망갈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김대중 자서전 2권 88p)


김대중 대통령은 심지어 농담을 건넬 상대가 없으면 농담의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 유쾌해졌다.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찾는 김대중 대통령은 진정한 낙천주의자였다.


거미는 죽은 파리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다시 파리를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킬 정도로 때려잡는 기술을 연마했다. 죽이지 않고 잡는 법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런 다음에는 거미줄에 정교하게 걸어놓는 연습을 했다. 자칫하면 거미줄이 끊어졌다. (김대중 자서전 1권 362p)  


긴장된 남북 간의 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농담은 빛을 발했다.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 갑자기 튀어나온 김위원장의 농이었다. 절박한 분위기를 단번에 깨뜨렸다. 나도 다시 그에게 농담을 날렸다. "김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개선장군 좀 시켜 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 그러자 비로서 김위원장이 웃었다. (김대중 자서전 2권 293p)


외국 정상의 체면을 고려하여 말하지 못한 농담도 있었다.


2000년 10월 SAEM 정상회의에서 프랑스나 영국의 지도자들이 자국의 인터넷 인구를 600만명이네, 700만명이네 하며 자랑했다. 당시 우리 인터넷 인구는 무려 1700만명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차마 자랑을 하지 못했다. (김대중 자서전 2권 443p)


그런데 이런 대통령에게 우린 씁쓸한 농담을 안기기도 했다.


노벨상이 발표된 이후 야당 정치인들이 노벨상 수상 반대 투쟁을 선언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민노총 일각에서도 수상 저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국민의 정부가 민노총 위원장을 석방하지 않고 은행 파업 등에 공권력을 동원해서 해산시켰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자서전 2권 398p)


김대중 대통령 말년의 일상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인다. 고난과 박해 속에서 살아온 민주화 투사 대통령의 이런 행복한 말년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유지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왔기 때문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배워야할 것은 이런 건강하고 끊임없는 유머감각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별일이 없으면 점심을 먹고 아내와 거실에서 마당을 보았다. 참새들이 찾아와 지저귀고 꽃들은 방실거렸다. 커피맛은 좋고 모든 것이 향기로우니 시간마저 달콤했다. 나는 뜰에 있는 나무와 화초들을 순서대로 다 외울 수 있었다. 장미꽃이 피면 아내더러 '꽃구경 값'을 내라고 했다. 내가 돌봤으니 내 것이라고 우겼다. 그러면 아내는 돈이 없다며 차용증을 써 주었다. 100만원짜리도 있고, 10만원 짜리도 있었다. 내가 이를 보관하고 있는 줄 아내는 모를 것이다. 이 작은 뜰에 이렇듯 행복이 고여있었다. 거실에서 30분 정도 그러한 행복을 마신 후 침실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김대중 자서전 2권 6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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