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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희오토노조는 10월 18일 트위터를 시작했다. 아직 트위터를 시작한지 2달도 안된 새내기라면 새내기인 트위터다. 그러나 2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동희오토 트위터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자신들만 아니라 다른 사업장까지 도와주며 노동계의 이슈메이커로 활약했다.




사실 동희오토는 처음엔 트위터가 수다나 주고받는 의미없는 도구가 아닌가 의심을 했다. 그러나 그 의심은 트위터를 직접 해보면서 풀렸다.




트위터 초보가 그렇듯 동희오토 트위터도 처음엔 본인들을 소개하고 선팔·맞팔을 해가며 친구를 늘려나가는 걸로 시작했다.




동희오토는 당시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하고 있었다. 동희오토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올렸다.




농성장에 대한 현대차 본사의 방해가 수차례 있었는데 동희오토는 트위터를 배운 후부터는 이 장면을 트위터에 곧바로 사진과 함께 올렸다.




트위터를 활약 덕분이었을까. 동희오토는 트위터를 시작한지 17일만인 지난 11월 3일 9명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투쟁의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트위터는 이제 쓸모가 적어졌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사측과의 합의는 동희오토 트위터의 끝이 아닌 확대의 시작이었다. 




동희오토 트위터의 활동은 더 맹렬해졌다. 다른 노조의 트위터를 개설을 돕고 트친소(트위터 친구 소개)를 해주며 트위터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동희오토는 다른 사업장과 시위대의 투쟁현장을 트위터로 중계했다.




11월 15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벌이자 동희오토 트위터는 다음날 지체없이 울산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농성을 트위터로 중계하기 시작했다.




동희오토가 트위터에 내보낸 비닐을 덮고 자는 노동자들의 사진은 무려 97회의 추천을 받았다. 멘션을 한 댓글은 이보다 훨씬 많을 걸로 추측된다.




동희오토가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의 파업현장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다. 그러나 이 정도 활약이 혁명을 언급할만큼은 아니다. 동희오토 트위터의 활약에 '혁명적'이란 가치를 부여했던 건 동희오토가 실시한 트위터 교육 때문이다. 




농성이 시작되고 7일째, 동희오토가 합류한지 6일째 되는 날 동희오토는 현대차 농성자들에게 트위터를 교육했다. 




트위터 교육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농성현장의 노동자들은 농성의 고단함을 잊고 트위터삼매경에 빠져버렸다.




트위터 교육의 효과를 본 건 공장 안의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공장 밖의 시민들도 공장 안 노동자들이 전해주는 소식을 기다리게 되었다. 




공장의 노동자들이 직접 파업소식을 알리고 바깥의 시민들은 응원메시지를 보내주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자 시민의 직접적 연대가 형성되었다.




언론도 트위터 파업에 주목했다. 




이 새로운 현상은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공장 안 노동자들은 농성장의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중계했다. 현대차 포크레인침탈동영상은 트위터에서 수없이 RT되었다. 바깥의 시민과 가족들은 공장 안 노동자들의 트윗을 통해 웃음과 감동과 분노를 함께 공유했다. 이렇게 시민과 끈끈한 정서적 연대의 끈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을 사측이 함부로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2월 9일 현대차의 비정규직파업농성이 끝났다. 이번 파업은 역사에 첫  트위터파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동희오토와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은 파업역사에 혁명의 한줄을 새긴 것이다. 이 혁명이 앞으로 우리 노동사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희오토 트위터 : http://twitter.com/dha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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