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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이상이라면 막걸리에 대한 안좋은 기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나도 부산 금정산성에서 흥이 올라 서너통 비우다 그 다음날까지 지독한 두통에 시달린 기억이 있다. 이후부터는 막걸리라면 겁부터 집어먹고 아예 입에도 안댔다.

그 아픈 기억이 잊혀질 때 쯤 막걸리 열풍에 용기를 내어 먹어본 게 생탁이다. 그땐 사실 맛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내 몸은 실험대상이었다. 다음날 괜찮다는데 정말 그런지 거기에만 집중했다. 다음날 정말 말짱한 내 자신을 보고서야 막걸리 공포증에서 탈출했다. 생탁은 나를 다시 막걸리의 세계로 인도해준 길잡이였다

이후 술집에서 막걸리를 자주 시켜먹기 시작했다. 그땐 생탁이 아니라 막걸리라는 술 자체의 풍부함에 이끌렸다. 입안을 가득채우는 막걸리의 풍미와 입자의 질감에 한번 빠지니 소주나 맥주는 너무 싱거웠다. 

그 ,다음부터는 술자리에서 막걸리, 그 중에서도 생탁 예찬론자가 되었다. 첫사랑이 강렬한 것처럼 생탁은 첫 막걸리로 내게 그랬다. 
 



이렇게 생탁에 대한 자부심마저 생길 즈음 서울의 장수막걸리를 맛보게 되었다. 탑골공원 앞에서 돼지머리를 안주로 해서 먹었는데 내가 요즘 막걸리가 맛있다고하자 지인이 서울엔 요게 인기최고라며 장수막걸리를 시켰다.

처음엔 내 첫사랑을 자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장수막걸리를 한잔 들이킨 후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첫사랑에 눈이 멀어 더 좋게 느낄텐데도 차이가 확실히 느껴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 깔끔한 맛이었다. 장수막걸리를 먹고나니 생탁에 매퀘한 잔맛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안주와 술이 금새 비워졌다.

장수막걸리를 먹고난 후부터는 생탁이 입에 감기지 않았다. 서울만 가면 장수막걸리를 시켜 먹었고 부산에 내려올 땐 두어통 사서 내려오기도 했다.




생탁과 장수막걸리가 막걸리의 맛을 알게 해줬다면 여수의 개도막걸리는 막걸리의 깊이를 알게 해준 막걸리다. 

여수에 팸투어를 갔는데 한 분이 여수에 가면 먹을 수 있다며 출발부터 개도막걸리 노래를 불렀다. 막걸리 때문에 그렇게 들떠있는 분은 처음 보았다. 식당에 가자마자 개도막걸리를 시켜서 먹는데 한잔 넘어갈 때 그 표정은 천하를 다 얻은 듯 했다. 

술이 줄어드는 것도 아까워하는 그 분에게 한잔 받아마셨다. 그분처럼 절정의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여태껏 먹어본 막걸리 중에선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었다. 막걸리가 전혀 받치는 느낌이 없었다. 입에서 목으로 넘어가는데 그냥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한통을 물 마시듯 10분만에 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한 시간 뒤엔 나는 완전히 뻗어있을 것이다. 

개도막걸리의 맛에 빠진 것 나만이 아니었다. 술통이 꺼내는 즉시 바닥났다. 섬에서 민박했는데 그날 사둔 개도막걸리가 거의 동이났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나머지 술 몇통을 숨기는 걸 봤다. 




그러나 부산엔 장수막걸리도 개도막걸리도 없었다.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생탁만 있었다. 그때 쯤 국순당 막걸리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게 장수막걸리와 맛이 유사했다. 이후부터 국순당 막걸리를 주종으로 정했다.

국순당과 장수막걸리 중 어떤 게 더 맛있는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같이 놔두면 장수막걸리가 더 땡기긴 하는데 늘 먹는 것보다 가끔 먹는 게 더 그립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장수막걸리가 더 맛있다고는 말 못하겠다. 차이가 있다면 장수는 시원하고 국순당은 부드러운 거 같다. 




올해 부산에서 막걸리 선택의 폭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러나 이 막걸리를 나는 애초에 처다보지도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막걸리에 대한 안좋은 기억을 준 게 바로 금정산성이다. 금정산성에서 막걸리 먹고 두통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기억을 떠올리는 부산사람이 많다. 그때 생긴 반감 때문에 누가 민속주 1호인 금정산성 막걸리 어떻냐고 물어보면 나는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지만 머리 아파 죽으니까 절대 먹지 말라는 대답만 했다. 

그러나 부산에 살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한잔 먹지 않을 수 없는 자리가 왔다. 내켜하지 않으면서 한잔 들이켰는데 맛이 괜찮았다. 예전에 달달하기만 하던 그 싼맛이 아니었다. 그날 좀 먹었는데 다음날에도 말짱했다.




여수의 개도막걸리가 자꾸 땡겼던 것 신맛 덕분이었다. 목구멍은 막걸리의 신맛을 느끼고 쏙쏙 빨아 댕겼다. 산성막걸리도 그런 매력적 신맛이 있었는데 그게 개도막걸리보다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개도막걸리는 열기는 하는데 뭔가 닫는 맛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 들이키게 되는 것도 있었다. 반면에 산성막걸리는 끝맛을 채워주면서 맛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금정산선 막걸리만 주로 먹는다. 조금 비싸다. 다른 막걸리가 1000원대 초반인데 산성막걸리는 마트에서도 1800원에 판매한다. 그러나 그 몇백원 때문에 최고의 막걸리를 포기할 순 없다. 




나는 금정산성 막걸리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각자 좋아하는 막걸리 들고 중간 지점에서 한판 뜰까? 아쉬운 분이 찾아오시던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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