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최저생계비 체험을 했다. 한나라당 의원으로선 자신이 처음이라면서 의미도 부여한 체험이었다. 

나름대로 체험을 성실하게 해냈고 그래서 그 느낌을 자신있게 썼다. 그런데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최초라는 그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최저생계체험에 대한 자신의 느낌만 아니라 최저생계생활자에 대한 충고까지도 늘어놓은 게 문제였다.

차명진 의원은 최저생계비 6300원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은 가능할 것 같다는 뜻을 내비쳤다. 충분한 돈은 아니지만 저럼한 상품에 대한 좋은 정보와 건강한 몸이 있다면 썩 어려운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차명진 의원은 그돈으로 신문 한부의 문화생활과 천원의 기부까지 할 수 있었다며 자랑한다 . 최저생계비 6300원이면 1600원 정도는 여유를 가질 수 있더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체험이란 그 한번의 경험이 삶으로 쌓였을 때 어떤지를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차명진은 딱 그 한번의 삶만으로 자신보다 수천번은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런 삶이 끝날 가망이 없는 사람에게 할만하다는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뭐 앞에서 주름잡았다고 할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면 언어 속에 담긴 그 맥락을 상대가 읽을 것이라 예상하고 한다. 그래서 언어의 맥락을 전혀 읽지못한 대답이나 행동이 돌아오면 코미디가 되는 것이다. 개그맨도 아닌 정치인이 공적 발언을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개그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차명진 의원은 사고의 입체화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가 의심이 들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면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싸이코패스라고 부른다. 타인의 고통스런 삶에서 일회성 쾌감만을 말하고 그렇게 쌓여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차명진 의원은 어떨까? 최소한 타인의 삶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공감무능력자라는 비난을 들을만 하다.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