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5월 3일 오후 4시 창원 중앙동 한국일보 빌딩 5층 문성현 후보 사무실에서 문성현 후보 블로거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이날 오전 문성현 후보는 창원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때문인지 문성현 후보의 표정은 더 밝고 자신감이 넘쳐보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후보단일화에 대해 문성현 후보가 몇마디 던졌는데 그 중 세마디가 기억에 남습니다.

"유리한 후보가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엔 합의추대 방식이 좋다."

"이 흐름이 전국적으로 퍼졌으면 좋겠다."

앞의 두 마디는 창원의 야권이 단일후보를 합의한 방식을 말하는 것이고 뒤의 멘트는 야권단일화에 적극 앞장선 민주노동당의 기대가 담긴 바램입니다.


문성현 후보 홈페이지


창원시장 야권단일후보는 5월 1일과 2일 시민여론조사와 시민배심원 여론조사로 뽑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후보들은 마지막 순간 여론조사와 시민배심원 여론조사 결과를 봉인하고, 후보자간 의형제를 맺고는 창원시장 야권단일후보에 문성현 후보를 결의하였습니다. 블로거 구르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원결의라 할 수 있습니다. 


문성현 후보는 야권단일화에 대한 에피소드도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복지관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이 친히 불러내 야권단일화를 당부하며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자네가 안되도 좋으니까 꼭 단일화는 해야돼." 그 말을 듣고 어떤 경우라도 단일화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문성현 후보는 2년 전 당대표를 그만두고 거창에 내려가 호두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일선에서는 이제 물러날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당이 그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1년 전부터 당에서 시장출마를 권했고 결국 6.2 지방선거에 창원시장후보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아마 한번 마음을 비웠던 문성현 후보에게 야권단일화는 그래서 홀가분한 과정이었을지 모릅니다. 


당대표를 그만두고 거창에서 농사준비를 하느라 2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산을 개간해 호두나무를 심었습니다. 처음에는 삽 한 자루 들고 덤볐습니다. 덤프트럭도 사고 포클레인도 사서 직접 운전하면서 땅을 파고 돌을 들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내가 흘린 땀으로 완전히 달라져버린 땅을 쳐다보며 내가 살아 온 지난날도 꼭 그랬다 싶었습니다. 문성현 후보 자서전 희망은 당신 곁에 있습니다. 


문성현 후보 홈페이지


가족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이번엔 재판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판사가 문성현 후보에게 석방되더라도 노동운동을 할거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에 문성현 후보는 이렇게 대답 했다고 합니다. "당대에 이루어지기 힘들어 나가면 애를 낳아 대를 이어 노동운동 하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생각나서 한 대답인데 문성현 후보는 대를 이어 하겠다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그뒤 정말 애썼다고 합니다. 40을 넘어 애를 낳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산부인과는 다 찾아다니고 한약까지 먹어가면서 노력한 결과 결국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왼쪽은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는 문성현 후보. 오른쪽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문성현 후보가 남긴 말.

왼쪽 사진은 문성현 후보 홈페이지. 오른쪽 사진은 블로거 이윤기님 사진 제공. 


이번 지자체 선거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겹칩니다. 창원시는 김해와 인접한 곳으로 친노지지세도 강한 지역입니다. 아마 선거가 시작되면 야권단일후보인 문성현 후보에게 활동력이 강한 친노지지자들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문성현 후보가 친노지지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제가 친노 1호입니다."

문성현 후보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문성현 후보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블로거 이윤기의 아래 인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문성현 전 대표는 " 정말 제가 사랑한 인간 노무현, 당신을 잃은 슬픔보다 당신을 죽게한 시대의 분노를 꼭 기억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당신의 첫 노동자 재판 1985. 5" 이렇게 적었더군요. 이혜자 선생은 " 착한 바보 노무현, 저도 이제 노사모 ! 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날 문성현 위원장이 쓴 추모 글을 보고, 노변(당시에 다 이렇게 불렀다고 하지요)이 맡은 첫 번째 노동사건 변론 주인공이 '문성현 위원장'(전 민노당 대표)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85년, 노무현 변호사 첫 번째 노동사건 변론(이윤기)




창원시민이 아닌 제게 문성현 후보의 공약 중 기억에 남는 건 무선인터넷과 인터넷 문화가 성장발전할 수 있는 창원을 만들겠다는 공약입니다. 문성현 후보는 자신의 공약의 실천가능성을 보여주려는 듯 아이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실제 단체사진을 아이폰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는데 아이폰 자판을 한 손으로 조심조심 치는 문성현 대표의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 백인닷컴 블로거들과의 지방선거 후보 인터뷰에 첫번째로 응해주신 문성현 후보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엔 5월 6일 경남도지사 이갑영 후보 인터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