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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 토지개혁이 실패했다면? 이 말은 역으로 이해하면 우리나라가 해방 뒤 토지개혁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우여곡절은 있었다고 한다. 지주들이 저항을 했었고 이승만 정부도 그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받았다. 그러나 북한에서 토지개혁이 성공하는 바람에 남한도 경쟁적으로 토지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쟁 중이라 지주들도 변변한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미국이 토지개혁을 강력히 원했다고 한다. 남한 정치의 안정을 위해 농민의 지지를 바라던 미국은 토지개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토지개혁의 성공에 우리가 안도하는 것은 2차 대전 후 후진국들의 운명이 토지개혁의 성패 여부에서 많이 갈렸기 때문이다. 60년 대 선진국으로 비쳐졌던 필리핀은 지금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후진국으로 뒤쳐졌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토지개혁 실패로 인한 강력한 지주계급의 존재 때문이다. 지대를 추구하는 필리핀의 지주계급은 산업세력의 성장을 방해하면서 필리핀 경제를 정체시켰다. 반면 토지개혁으로 지주계급이 해체되고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농민들이 산업인력에 투입된 한국은 고도의 산업 성장을 이루었다. 

땅을 독점하는 지주계급은 법과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산업세력의 성장을 방해하여 자신들의 땅을 사회의 희소한 생산요소로 유지하는 지대추구행위를 한다. 사회의 생산요소를 독점하는 지주에게 농민들은 종속되고 그들의 노동력은 값싸게 제공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지주는 독점을 더 강화하게 되고 농민은 지주계급에 값싼 노동력을 대를 이어가며 안정적으로(지주 입장에서) 제공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겨레21을 기사를 읽고나니 역사의 반전에 대한 통쾌함보다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기사에서 토지개혁에 실패한 50년 전 필리핀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에 대한 착안점 같은 걸 떠올릴 수 있었다. 필리핀의 토지처럼 개혁되어야 할 무언가가 개혁되지 않고 이 사회를 꽉 막고 있으면서 같은 구조의 상황이 현재 한국에서도 산업을 달리하며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생각이다.

필리핀에 지주계급이 있다면 한국에는 수출대기업들이 있다. 땅이 필리핀의 지주계급의 수익원이라면 한국 수출대기업들의 주된 수익원은 수출이다. 필리핀의 지주계급처럼 한국의 대기업들도 지대추구행위를 한다. 수출대기업들은 정부의 저환율정책을 유도하고 대규모의 값싼 비정규직 노동력을 법적으로 제공받으면서 수출산업에서의 수익을 손쉽게 보장받는다. 이러한 수출 위주의 체제는 필리핀의 지주계급이 농민을 토지에 묶어둔 것처럼 한국의 노동자를 수출대기업체제의 시스템에 묶어놓고 있다. 

수출대기업들을 위한 정책으로 한국은 성장의 과실을 수출기업과 수입국가의 국민에게 갖다바치는 수출착취에 빠져있다. 성장은 계속하면서도 환율 장벽 때문에 국민소득은 10년 넘게 2만불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와 비슷하던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환율 상승으로 2-3배 이상 소득이 뛰었다. 무엇보다 분노하게 되는 건 자국의 기업이 만든 제품을 자국민이 수입국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사게 되는 경우다. 수출비용을 감안하면 한국의 수출대기업은 자국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에선 정책으로 보장받고 내수에선 수출기업이란 브랜드로 보장받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 장사를 한국의 대기업들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필리핀 지주계급이 울고갈 정도의 지대추구라 할 수 있다. 
 
2010년 한국노동자를 수출대기업의 지대추구에서 구해내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정체에 빠진 필리핀처럼 될지 모른다. 2010년 한국노동자를 수출대기업의 지대추구에서 구해내야 하는데 그럴려면 50년대 토지개혁처럼 노동력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개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지개혁이다. 노동자의 가치를 높여 수출대기업 체제에서 탈출시켜야 수출대기업의 지대추구행위가 멈추게 되고 노동자들은 보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산업에 투입되면서 한국산업의 생태계가 보다 새롭고 건강해지게 된다. 

토지개혁은 한국과 필리핀만을 구분지은 것이 아니다. 지주계급을 정리하지 못한 필리핀은 이제 중국과 베트남에도 밀리고 있다. 공산주의를 경험하면서 지주계급을 완전히 정리한 중국과 베트남 등은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의 공산주의 경험은 나아가 한국과 그들을 구분지을지도 모른다. 한국이 신자유주의 이념을 받들어 복지개혁에 망설이는 사이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이들 국가는 복지개혁을 손쉽게 해결하고 산업의 생태계를 새롭게 하면서 한국을 추월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래의 어느 순간 우리는 지금 필리핀이 우리를 본 그런 눈으로 이들 나라를 보게 될지 모른다. 

미래가 두렵다면 지금 복지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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