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화가 김은곤이 봉하마을로 짐 싸서 들어오게 된 건 1년 전이다. 봉하의 화포천을 그림에 담고싶어한다는 노무현 대통령 뜻을 전해받은 김은곤은 지난해 2월부터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 갖다놓고 그 안에서 먹고 자면서 봉하마을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귀향 2주년을 맞은 날 김은곤은 그간 그렸던 그림들을 마을회관에 펼쳐놓았다. 




1년 동안 그는 50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에서 완성된 30점을 이번 <마른 풀 봄을 노래하다>에 내놓았다. 30점의 그림은 마을회관 1층과 2층에 나누어 전시되었다. 




처음에 김은곤은 봉하마을의 화포천을 담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대통령의 추억들이 그의 그림에 스며들었다. 밀짚모자, 자전거, 디스 담배가 그의 그림에 등장했다. 




대통령의 추억이 등장시키지 않은 것도 있다. 5월의 화포천에 붉은 장관을 이루는 찔레는 그의 그림에 없다. 5월의 그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싫었던 것일까? 김은곤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강한 부채감"이라 말했다. 




(주)봉하마을의 대표 김정호씨가 찾았을 때 김은곤은 <풀-꽃잠> 전시회를 하는 중이었다. 90년대 초 민족민주계열 청년작가로 민초의 삶을 그리다 15년 만에 돌아온 김은곤이 진짜 풀을 들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 풀은 봉하마을의 습지 화포천으로 이어졌다.     



김은곤은 "화포천의 사계를 그린다면 좀 더 힘있게 풀을 그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대한 미술평론가 김준기의 첫마디는 이렇다.


"김은곤은 바닥에 낮게 깔린 풀꽃들을 하나하나 불러 세운다. 그는 개망초와 노랑어리연과 자운영을 자상한 목소리로 부른다. 낮게 깔린 풀꽃들을 호명하는 김은곤의 마음속에는 생명의 푸르름에 관한 존경이 가득 차 있다. 그는 특정한 풀 한 두 포기를 도드라지게 그려내기보다는 바닥에 밀착한 시선 전체에 들어오는 수많은 풀꽃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려냈다." 전시회 팜플렛 중에서


그러니까 김은곤은 모든 생명에게 시선을 분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풀 하나 소외되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된 시선이 모여서 김은곤의 그림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민초의 삶을 그린 김은곤의 정신이 화포천의 그림에 배어있다.
 



<봉하의 봄>과 <노랑 어리연의 점령>을 노무현 대통령과 손자가 지켜보고 있다. 




김은곤은 매일 새벽 2-3시에 일어났다고 한다. 일출 시점의 풀들을 보기 위해서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시점, 해가 뜨는 일출 시점에 그린 작품이 많아요. 창끝처럼 힘차게 올라오다 새벽 된서리를 맞고 끝이 노래진 갈대가 이슬 맺힌 상태에서 햇볕을 받으면 다시 고개를 빳빳이 드는 게 놀라워 화폭에 그대로 옮겼지요. 다시 봄을 기약하는 거지요." '봉하' 사계 담은 화가 김은곤




작가에게 팜플렛에 사인을 부탁하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의 모습에서 추노 대길이(장혁)가 생각났다. 세상을 쌓아오지 않고 대길이처럼 찔러보고 걷어차며 세상을 맛보며 살아온 사람의 내공 같은 게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어쨌든 그의 풍모가 예술적이라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 같다.

김준기는 김은곤의 전시회가 소중한 미래의 씨앗을 품고있다며 "마을에 머물며 마을을 그리고 그 마을에서 전시회를 여는 예술가의 삶이 생태공동체의 미래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아트셀 대표 김종세는 "여행하듯이 잠시 오가면서 그리는 그림과 그 속에서 살면서 대상과 하나가 돼 그린 그림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봉하마을 외에도 그의 전시회는 많은 의미와 시도가 담겨있는 것 같다. 

김은곤의 <마른 풀 봄을 노래하다>는 봉하마을회관에서 2월25일부터 3월7일까지 열린다. 이번 기회를 놓치신 분들도 볼 기회는 한차례 더 있다. 부산 문화골목 석류원에서 다음달 23일부터 오는 4월 18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 



관련기사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