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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때마다 은행원 아가씨들을 마주치곤 했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시내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7시쯤 퇴근했다. 집에 가면 8시가 넘어 배가 고파 지하철 입구에서 떡볶이로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 그 때쯤이면 유니폼을 입은 여성 은행원들이 포장마차에 복작거렸다.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니 퇴근하던 길에 들린 것은 아니다. 다시 은행으로 들어갈 때는 사무실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위해 순대와 튀김을 사들고 가는데 그 때가 7시를 넘었다. 1시간 더 일하려 요기하진 않을테니 적어도 9시까진 일 했을거라 짐작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10시 넘겨야 한다고 한다. 그 때가 10년 전이었다.

조금 놀랐다. 은행은 4:30분에 마치면 업무가 끝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른 업무의 시작이었다니, 은행도 좋은 데는 못된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투덜거렸던 나의 7시 퇴근이 그들에 비하면 참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사진출처 : 금융노조 

얼마전 금융노조가 은행의 영업시간을 3시로 줄이는 것을 고려한다는 발표를 했다. 직원들의 업무강도가 너무 세어 과로사가 염려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과로사 말까지 나오는 걸 보니 은행업무 강도가 10년 전보다 별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은행원들 떡볶이 집 앞에서 요기 안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노조의 발표가 있자마자 여론은 즉각 반발했다. 포털에 뜬 관련기사의 댓글들은 일방적으로 금융노조의 발표를 성토하였다. 배가 불렀다니, fta로 금융을 개방해야 한다니 하며 은행원들을 게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댓글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게 은행원들을 배불렀다는 식으로 윽박질러 해결될 일은 아닌데 말이다.

자주 가는 싸이트에서 야근문화에 대한 토론이 몇 번 있었다. 참여자들은 한국의 야근이 비생산적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업무의 폭주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야근도 있겠지만 습관적이거나, 상사눈치보기식 야근도 많다는 것이다. 꼭 해야할 야근인가 따져보면 한국에 야근다운 야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고도 했다.

3월26일자 비즈니스 위크지는 it첨단국가 일본과 한국이 왜 생산성이 낮은 가를 분석했는데, 한국의 it를 활용한 업무효율이 미국인보다 떨어지는 것은 직장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직장상사는 부하직원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놀고 있다고 간주한다.  직무에 대한 명쾌한 정의도 부족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분명한 기준도 부족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업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한국의 야근들은 바로 이런 직장문화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

물론 은행의 야근은 이런 직장문화보다는 업무의 강도에 의한 것이다. 한국의 고질적인 야근문화와는 별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적 관련은 없어보이나 크게 보면 관련이 있다.

금융노조는 4:30분 이후에 야근까지 이어지는 살인적인 업무강도 때문에 과로사로 쓰러질 지경이라며 업무단축을 호소했다. 여론조사도 국민의 91%가 업무단축에 부정적이라한다. 금융노조의 호소에 공감을 표시하는 국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은행원들의 하소연에 흔한 반응은 직장에 쫒겨나봐야 정신을 차린다거나, 배가 불렀다는 식이었다. 야근 등의 근무 환경을 벗어나보려 하는 은행원들의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야근 등의 근무조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저열한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상적인 논의라면 먼저 은행원의 11시까지 이어지는 살인적 야근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그 다음 소비자와 은행원이 서로 불편이 없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교대근무제를 채택할 수 있다. 오히려 근무시간을 늘려 두 개조로 은행을 돌리면 은행원들의 근무환경도 개선되고 고객도 은행이용이 더 편해질 것이다. 각종 자동화 기기를 확대 도입하여 왠만한 은행업무는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고객의 긴급 업무를 따로 관리하는 지점을 두어 밤늦게까지 운영하게 할 수도 있다. 조금만 고민하면 은행원들의 살인적 야근을 개선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개선할 방법이 있다는 것은 은행원의 야근이 꼭 해야 할 야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은행원들의 야근이 업무강도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야근이 아니라 사실은 한국사회가 해결을 방치한 불필요한 야근이었던 것이다.

합리적 논의를 통해 살인적 야근을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지만 야근을 당연시하는 사회분위기에 눈치가 보여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근무환경을 바꿔보자는 시도가 아예 씨알도 안먹힌다. 그렇다. 은행원들의 야근을 강요했던 것은 직장 상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원들의 야근을 강요하고 눈치를 주는 직장상사의 역할을 은행원들에게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혐오하던 야근으로 직원들 평가하는 직장상사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금융노조가 제기한 것은 근무환경 개선이다. 이건 어디보다 열악한 장시간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한국직장인들로서 연대해야 하는 운동이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노동문제는 임금이 아니라 핍진적 근로환경이다. 그런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하는데 ‘니들만 빠져나가냐’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우물에서 나가서 줄을 가져와 구해야 하는데 먼저 나가는 사람 발을 잡고 있는 꼴이다. 사실 은행원이 먼저 나가는 것도 아니다. 이제야 사회의 평균적 근무환경에 맞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세계적으로 오명 높은 한국의 야근에서 우리가 벗어나려면 사회의 전반적 야근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에서 가장 야근이 관행화 된 곳이 은행이다. 은행의 야근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의 야근문화도 개선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은행원들의 업무개선은 은행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바로 우리 사회의 근로환경 토대를 개선하는 일이다. 지금 은행원에게 배불렀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야근문화를 강화하고 생산성을 낮추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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