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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가 숏트 1위를 하자 흘러나오는 옛 이름이 있다. 바로 80년대 전설적 피겨 선수 카타리나 비트. 

카타리나 비트(Katarina Witt, 1965년)는 독일이 통일하기 전 동독공화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 금메달, 1988년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올림픽을 2연패한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화려한 기록을 남긴 선수다. 

기록만으로도 화려하지만 그녀는 기록만으로 말할 수 없는 더 대단한 게 있는 선수였다. 그녀가 얼음판 위에서 보여주는 동작은 분명 다른 선수들과 달랐다. 피겨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그녀의 연기에 한 번 눈길을 주고 나면 tv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연기가 끝나고도 한동안 넋이 나간 채 화면을 응시할 정도였다.   




8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남녀를 막론하고 책상에 카타리나 비트 사진 한장씩 안 붙여둔 사람이 없었다. 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잡지 tv가이드엔 그녀의 화보가 단골로 올라왔는데 당시 10대 청소년들은 그 화보를 곱게 잘라 자신의 책상 위에 붙여놓곤했다. 브룩쉴즈나 피비케이츠 등 당대의 미녀와 비교해도 그녀의 인기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세계적 스타였다. 
 
카타리나 비트가 한국에도 한 번 왔었다고 한다. 85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 피겨선수권 대회에 참여한 피겨 선수들이 내친김에 88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을 방한해서 시범경기를 펼쳤는데 그때 카타리나 비트도 함께 온 것이다. 당시 언론의 관심은 당연히 카타리나 비트였고 그녀에 대해 찬사와 탄성 일색의 기사를 쏟아냈다. 요정 같은 그녀의 인기 덕분인지 2만원 했던 시범경기 입장권이 암표로 10만원까지 팔렸다고 한다. 




당시 우리는 카타리나 비트를 별나라 요정처럼 여겼다. 피겨 자체가 별나라의 일이었다. 피겨는 서구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먼나라 얘기로 우리에겐 보는 것만 허락된 경기였다. 카타리나 비트는 그 별나라에서 최고의 선수였고 피겨 역사상으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선수였다. 고난도의 액션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놀라운 연기, 뛰어난 신체조건과 외모까지 갖췄으니 그녀를 요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피겨라는 종목에 별 흥미가 없었다. 해설자는 대단하다고 찬사를 보내는 그 기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은 수준으로 보였다. 선수가 밥먹고 훈련하면 저 정도는 하겠지 하며 은반 위에서 움직이는 선수들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었다. 서커스 묘기 정도로 생각했던 게 피겨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김연아도 아주 늦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한참이나 김연아를 연호하고 나서야 그녀의 스케이팅을 감상하게 되었다. 그 때 다른 선수와는 차원이 다른 그녀의 표정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눈빛도 강렬했다. 이건 우리나라 선수라서 느끼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한차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바로 20년 전 넋을 잃고 쳐다봤던 카타리나 비트가 떠올랐다.   

카타리나 비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김연아는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김연아는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피겨를 제패한 선수다. 별나라 얘기를 우리 앞에 가져다 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김연아는 거기다 역사상 최고의 찬사를 받는 카타리나 비트 이상의 매력을 뽐내는 선수까지 함께 가져왔다.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한국말을 하는 선수가 피겨를 제패하고 넋을 잃고 처다볼 정도의 놀라운 연기를 지금 하고 있다. 카타리나 비트를 꿈나라 요정으로 생각하며 자란 세대에겐 김연아는 볼을 꼬집어볼만한 선수인 것이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20년 전 카타리나 비트의 스케이팅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가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 한 편이 알싸해진다. 김연아는 단순히 올림픽 제패의 감동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또 하나의 뭔가를 이루어내었다는 자부심을 준다. 카타리나 비트로 인해 당시 공산국가인 동독이 의외의 문화강국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는데 그처럼 김연아는 한국이 피겨를 제패할 수 있는 국력이 있다는 것 뿐 아니라 문화의 생동감까지 갖추고 있는 나라라는 걸 세계에 알려주었다. 

김연아 고맙다! 내가 30년 간 별나라 요정이라고 생각했던 카타리나 비트를 실현시켜주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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