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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던 12월 10일 의원회관입니다. 객석 앞이 들썩거리면서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부축을 받으며 무대로 걸어갑니다. 천천히 무대의 중앙을 향해 걷는 그의 걸음에 객석은 퍼포먼스를 보는 것처럼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5미터 거리의 걷기 퍼포먼스를 마치고 노인이 객석을 향해 섰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단상에 선 이분이 바로 대한민국 사상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이영희 선생입니다.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같은 이영희 선생의 책은 70, 80년대와 20대, 30대를 걸쳤던 사람들에겐 필독서 중에 필독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변명하자면 시대적 불일치가 긴장감을 떨어뜨린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97년 대히트를 친 강준만의 김대중 죽이기를 2002년에 읽으면 그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 당시에 치열했던 선생의 책 속 그 인식들이 제 20대엔 표면적이나마 보편화 된 인식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변명했지만 그래도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항상 부채감으로 작용했습니다. 누군가 그를 얘기하면 조용히 입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읽지 못한 걸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책을 쓴 사람, 그가 바로 이영희 선생입니다.  




얘기가 끝나자 이 위대한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누구도 그 앞에선 최고의 경의를 표합니다.




눈은 객석을 향하면서 저려오는 팔을 때때로 주무르시곤 하셨습니다. 몇년 전 선생을 쓰러지게 했던 뇌졸증 탓일 겁니다. 선생은 이제 부축을 받아 움직이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선생의 아들이 아버지가 무척 엄했다는 얘기를 하는 걸 한겨레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은 자식들에게 매일 독후감을 쓰게하고 못쓰는 날에는 아들이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사정없이 혼냈다고 합니다. 덕분에 아버지를 기억하는 아들의 글에는 깨우친 게 많았다는 고마움보다 다정다감한 부정을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이 더 많이 묻어났습니다.

그 글을 읽은 후에는 선생을 보면 '시대의 스승'과 함께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도 같이 떠올리게 됩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게 항상 불편했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중략)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중에서)





선생이 정열에 불탔던 그 시대 우리의 아버지들은 시대를 사느라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들은 가족 대신 이 땅에 경제를 일구고 정치를 일구고 사상을 일구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들은 가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경제의 아버지, 정치의 아버지, 사상의 아버지셨습니다.

사진 속 선생의 모습에서 딸들과 함께 선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가 이제 가족의 아버지로 돌아와 딸들과 함께 어색하게 서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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