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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연극 취재 기획을 시작합니다. 대학로에만 연극이 있고 지역엔 연극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지역민들이 많은 게 한국 연극의 현실입니다. 이 취재 기획을 통해 부산의 연극과 연극인을 알리려고 합니다. 그 첫째 편 "정운찬 총리 무소신 행보 풍자하는 연극을 봤습니다."입니다. 






재밌는 연극 한 편 봤습니다. 부산의 극단 새벽이 지난 25일부터 시작한 '우리 시대의 삽화'라는 연극입니다. 연극은 '우리시대를 꿰뚫는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4편의 단막극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극단 새벽의 '기획의 말'을 빌자면 "짠한 4컷 만화 같은" 그런 통쾌함을 주는 연극이라고 합니다.




첫 단막극은 자살하려는 한 젊은이와 죽음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의 만남을 그렸습니다. 젊은이는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점점 죽음을 떨쳐내고 삶을 향해 일어섭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자리에 이제 노인의 죽음이 남습니다. 젊은이가 떨쳐낸 죽음을 이제 노인이 쥔 채 "내일 또 깨어나면 어쩌누"하는 독백을 하며 다리 앞을 서성거립니다.

죽음을 안고있는 두 사람이 죽음을 나누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음의 무게에 짓눌린 남자에게 노인은 세월의 지혜를 들려주며 그 무게를 덜어줍니다. 남자는 세월의 무게를 등에 지고 버티기 힘들어하는 노인에게 잠시 젊음의 시간을 나누어 줍니다. 죽음의 거래에서 항상 그렇듯 젊은이가 더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남자는 삶의 문을 열었고 노인은 죽음의 문 앞에서 조금 쉬었을 뿐입니다. 노인은 죽고싶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더 살고 싶다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의지와 삶의 의지가 딱 균형의 추를 이룬 노인은 죽음의 의지를 조금 더 억누루기 위해 다리 앞을 서성거리는지도 모릅니다.

초반 관객을 몰입시킨 자살자의 심리 연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살하는 젊은이를 연기한 배우 이도현은 공연 끝난 후 가진 '대화의 시간'에서 관객들로부터 초반 몇분 정신없이 빠져들었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얼짱 연극배우 이도현 단막극 '비오늘 날의 선술집'에서 동팔을 연기한 이도현은 극중에서 동팔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 26이라고 했다. 실제 나이가 궁금해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물어봤다. 24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관객들이 짧게 탄성을 질렀다. 생각보다 너무... (내용 클릭하면 기사로)


이도현의 1인 연기가 끝난 후 등장한 이현식의 안정적 연기도 극의 완성도에 한 몫했습니다. 한창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나온 배우 이현식 익살스럽고 편안한 노인 연기는 스멀거림 없이 관객들을 극에 녹아들게 했습니다. 어떤 관객들은 이현식을 정말 노인으로 착각하고 60대도 연기하냐며 물어오기다 한다고 합니다.





정운찬 총리를 풍자하는 연극은 바로 두번째 단막극입니다. 앞서 '다리 위에서'에서 자살하려는 젊은이를 연기했던 이도현이 갈릴레이로 나오고 권력을 상징하는 관료로 변현주가, 대중을  상징하는 노동자로 김재형이 나옵니다. 갈릴레이(이도현)는 무표정하게 타자를 받아쓰는 권력(관료)에게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말하다가 분노한 노동자의 다그침에 "돌기도 하고 안돌기도 한다"며 횡설수설합니다. 그러다 권력의 눈흘김에 다시 '안돈다'고 답합니다.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에 한 분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의 갈릴레이가 정운찬 총리를 풍자한 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딱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자가 '지구는 돈다'는 자신의 소신을 정권의 강요 앞에서 꺽는 모습은 최근 4대강과 세종시에서 여러차레 세종시 이름까지 바꿔가며 오락가락하는 정운찬 총리 최근 행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배우들도 관객의 말이 일리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세번째는 잘못 잡혀와 취조받는 두 사람의 얘기입니다. 연극은 두 사람의 취조 장면을 계산된 전환으로 번갈아가며 보여줍니다. 시위대와 함께 있다 끌려온 박팔봉과 '전태일' 영화를 만든 박광수로 오인되어 잡혀온 김광수는 나중에 혐의가 없는 걸로 점점 밝혀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권력의 폭력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 권력의 속성입니다. 권력은 죄가 없는 그들을 다른 걸로 엮어버립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경험한 사람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행히 연극 속의 팔봉과 광수처럼 엮여들진 않았지만 까딱 잘못했으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법에 형을 살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단막극이 블랙코미디같지도 않았고 황당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니 풍자도 아니었습니다. 첫번째와 마지막 네번째가 리얼리즘 연극이라고 하는데 사실 풍자라는 이 단막극이 넷 중에 가장 리얼하지 않을까 합니다. 현실이 연극을 이렇게 뭉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 사람들이 지역 연극을 안보는 이유는 뭘까? 연극이란 게 아주 드문 경험이라서 연극 내용보다는 연극경험 그 자체가 더 강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는 게 지역의 관객들입니다. 어떤 분은 연극을 처음 본다며 솔직하게 말하고는 배우들이 왜 다른 데를 보고 연기하냐고 묻기도...(내용을 클릭하면 기사로)





4번째는 조선소 앞 선술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단막극으로 가장 현실적인 연극이었습니다. 막장 중에 막장이라는 원양어선을 타다 그래도 노조가 있다는 조선소에 취직하게 되어 다행이라던 동팔(이도현)이가 옥포에 들어선 첫날 목격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옥포댁을 향한 김씨의 로맨스도 새 직장을 향한 동팔이의 설레임도 사라지고 그 사이로 죽음을 수습하기 위해 노조안전대책위원장 병철이 뛰어갑니다.

이 마지막 단막극이 첫번째 단막극과 수미상관식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와 네번째 둘 다 죽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죽음을 앞에 둔 자와 삶을 포기한자의 죽음이고 마지막은 삶에 애착이 강한 사람들의 죽음입니다. 첫번째는 죽음을 나누어 살 수 있었지만 마지막에선 죽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옆에서 웃다가 잠깐 사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은 자살율이 높은 나라입니다. 산재율도 oecd 국가 중 상위권입니다. 첫번째와 마지막 죽음은 우리 주변을 항상 맴돌고 있는 죽음들입니다. 연극 '우리시대의 삽화'는 이 땅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으로 극을 포위한 연극은 두번째와 세번째에서 지식인과 민주주의의 상징적 죽음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도 죽음이 넘쳐나는 이 땅에 내면의 죽음도 함께 벌어지고 있다고 '우리 시대의 삽화가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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