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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충성스런 남자들이 있다. 미실에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는 미실파의 남자들이 있다. 설원공과 세종 등 미실의 남자들은 미실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미실을 두고 그 믿음의 경쟁을 벌일 정도다. 박근혜의 남자들도 박근혜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낸다. 어느 정도냐면 박근혜의 이름을 넣어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만들기까지했다. 이 정도면 미실파를 능가하는 충성심이다.

둘째, 지켰으나 선택받지 못했다. 덕만공주의 추포령을 내린 뒤 미실은 주저하는 귀족들 앞에서 이 나라를 지킨 게 누구냐며 호통을 친다. 귀족들이 호의호식 할 수 있도록 신국을 지킨 자신을 왕으로 받들길 주저하는 귀족들에 대한 분노다. 탄핵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당을 지켜낸 건 박근혜였다. 덕분에 한나라당은 지금의 호의호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2007 경선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입술을 떨며 귀족들을 노려보는 미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박근혜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도의를 지키는 정치를 한다. 정변의 와중에 화랑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그동안 미실새주가 도의를 지켰기 때문에 따랐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실은 정변을 일으키기 전까지 신국의 도의를 지켜왔다. 그것이 미실의 권력이었다. 박근혜가 항상 말하는 것이 원칙과 상식이다. 박근혜도 미실처럼 도의를 지키는 정치를 해왔고 그것이 박근혜의 힘이었다. 정치적 신뢰를 가졌기에 정치적 분기점마다 그의 발언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미실과 박근혜의 도의엔 무언가 부족하고 그래서 두 사람의 도의는 줄타기 도의가 된다. 왜? 

넷째, 꿈이 없기 때문이다. 미실은 꿈을 꾸지 못했다. 그러다 덕만의 꿈을 보고 놀라서 왜 그런 꿈을 꾸지 못했나 자책하다 덕만의 꿈을 훔치기로 한다. 나아갈 바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에게 도의란 그저 처세술일뿐이다. 미실은 처세의 도의에 능했을 뿐 국가와 함께 나아가는 도의는 알지 못했다. 미실의 도의는 귀족을 위한 도의일뿐 수백, 수천만 국민을 염두에 둔 도의는 아니다. 박근혜에게 꿈은 있는가? 그가 국민들에게 주고 있는 건 꿈이 아니라 향수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한 도의가 아닌 향수를 지키기 위한 도의를 필요로 한다. 꿈을 훔치려는 미실은 처세를 하고 박근혜는 항수를 자극하는 연출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싶은 말은 뭐냐면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들어 덕만을 박근혜로 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덕만은 오히려 우리가 살리지 못한 노무현과 유사점이 더 많다. 

아랫사람을 살리기 위해 덕만은 미실에게 가고 노무현은 검찰에 갔다. 덕만과 그들을 이어주는 건 신국이고 노무현과 그들을 이어주는 건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덕만은 살고 노무현은 죽었다. 그들은 덕만을 지켰고 다른 그들은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 덕만을 살려내라는 비담의 절규가 공주에 대한 연정으로 보이는가? 아니다. 그건 유신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절규다. 우리를 향한 호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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