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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재보궐선거가 끝났습니다. 민주당 간판으로 한나라당 텃밭에 나섰던 송인배 후보는 패배했습니다. 여기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대통령과 함께 지역주의에 맞선 싸웠던 김정길 전 장관입니다. 누구보다 지역주의의 쓴 맛을 많이 본 김정길 전 장관은 양산선거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과거 그는 이 강고한 지역주의와의 싸움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선거가 끝난 이틀 뒤인 10월 30일 저녁 김정길 전 장관을 해운대의 한 커피숖에서 만났습니다. 김정길 전 장관이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말입니다. "YS가 비호남 지역 야당의 씨를 말려버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나름대로 역사에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김정길 전 장관 말을 듣고 보니 재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산선거 기대하셨습니까?

처음엔 생각 안했습니다. 영남 텃밭에서 한나라당과 상대해서 이긴다는 게 정말 어렵죠. 나중에 분위기 좋다길래 혹시나 하는 기대를 조금 가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상당히 선전했습니다. 한나라당과 싸워서 3000표 차이면 잘 싸운거죠. 송인배 후보가 당선되면 당선증 들고 봉하마을 찾는다고 했죠. 그렇게 됐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지역주의에 맞선 정치인으로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님과 장관님을 떠올립니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몇 번 떨어지셨습니까?

다섯번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아마 네번일 겁니다. 송인배 후보는 세번이죠. 삼당 합당 이후에 어렵긴 했지만 부산을 떠나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후 치러진 14대부터 17대까지 국회의원 선거는 모두 떨어졌습니다. 거기다 사하보궐선거까지 했으니 다섯번 낙선했습니다.

이번 양산선거처럼 박빙의 승부도 있었습니까?

마지막으로 뛰어든 17대 영도구에서 2500표 차이로 졌어요. 처음엔 노대통령 탄핵으로 두배로 이겼는데 정동영씨의 노인폄훼 발언나오고서 2-3% 차이로 좁혀지더라구요. 이게 조사할 때마다 떨어지더니 선거 직전엔 박빙이 돼요. 출구조사에선 내가 이겼다고 나왔는데 결과는 2500표 차의 패배였죠. 김형오씨(현 국회의장)가 당시 선거 직전 사무총장에 발탁되고 박근혜 전 총재는 영도에 3번 다녀갔습니다. 게다가 난 삼촌이 돌아가셔서 선거일 부산에 있지도 못했죠.

최근 선거는 여론조사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보복의 두려움 같은 거죠. 지금의 중장년 층에겐 독재시대의 경험이 있잖아요. 여론조사 오면 기관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는 겁니다. 불이익 당할까봐 말안하는 거죠.

여론조사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게 좀 이해가 안되는데.

전화번호도 기록에 남을 수 있죠. 정권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겁니다. 

삼당 합당 이후부터 장관님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주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야권통합 논의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90년 1월 삼당 합당했는데 89년 연말에 야권통합이 먼저 있었습니다. 통일민주당에선 저와 노무현, 이철, 장석화, 이기택 등이 나섰고 평민당에선 정대철, 이상수, 이해찬, 조윤형 등이나섰습니다. 소장파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는데 지도부는 통합에 부정적이었죠.




삼당 합당이 진행된다는 낌새를 채지는 못했습니까?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얘기를 직접 듣지는 못했죠. 나중에 보니까 나와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연락했더라구요. YS가 김정길이 하고 노무현이는 말해도 안들을 거라 생각하고 아예 연락도 안한거죠. 처음엔 20 명이 안간다고 했어요. 한 중진 의원도 "느그들 다 가도 나는 안간다."고 했습니다. 결국 다 따라갔죠. 

삼당 합당이 한국 정치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십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거대한 기회주의가 성공하는 역사를 만들어버렸다고 하던데.

비호남 지역의 야당 씨를 말렸어요. 영남이 아니라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야당이 사라졌단 말입니다. YS가 야당의 씨를 말린 겁니다. 

삼당 합당 후 어려운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지역구 유권자들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기대할 수가 없었어요. 만나면 "YS 와 안따라갔노" 그래요. "김대중 따라갔지요" 그러는 사람도 있고요. 악수 뿌리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 김형오씨가 무명의 신인일 땐데 YS가 영도에 두번 내려와서 아침부터 조깅하고 지역 유지와 점심 먹고 그랬습니다. 부산서 김정길이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YS가 왔다하면 다 뒤비져버립니다. 지금 박근혜 전 총재가 하는 것도 YS에게 배운 거죠. 14대(1992년) 다시 생각해보면 서초에 안간 게 참 아쉬워요. 삼당 합당의 주역 김덕룡씨와의 서초을에서 삼당합당의 정당성을 놓고 한판 벌여보는 건데 말이예요. 






장관님도 재보선에 나가신 적이 있습니까?

사하구 재보선에 나간 적 있습니다. 기대할 수 없는 선거였죠. 당시 YS 지지율이 90%를 달리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당시 민자당 후보가 YS 측근 중 측근인 박종웅씨였죠. 그때 광명에서도 보궐선거가 있었는데 부산엔 내가 가고 광명은 노무현 대통령 맡겨보자고 당에 얘기했습니다. 난 떨어지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된다고 봤거든요. 부산시민에게 노무현이 되는 거 보여줄 필요도 있었고요. 그런데 위에 내 말이 안먹혔어요. 만약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광명에 나갔으면 손학규씨는 정치에 입문 못했을지도 몰라요. 당시 광명 보궐선거 민자당 후보가 손학규씨였는데 어렵게 이겼어요.

15대엔 다시 꼬마민주당으로 출마하셨죠.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 복귀하면서 민주당이 다시 국민회의와 민주당으로 갈라졌어요. 나중에 개혁진영의 집권이 우선이라는 정치적 판단 하에 대선 전에 다시 합쳤습니다. 갈라질 때 내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구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 김 의원님은 안 따라갈거죠?" 물어요. 그래서 "안갑니다." 그랬죠. 15대엔 노무현 대통령이 종로에 가고 내가 중동구로 옮겼어요. 둘 다 떨어졌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나중에 종로 보궐선거에서 붙었죠. 16대 땐 국민의 정부에서 행자부 장관을 거치면서 부산 경남 최고의 공직 경력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그것도 안되더라구요.




장관님의 선거가 바로 한국의 지역주의 대결 정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장관님과 노무현 대통령이 노력했는데 아직 지역주의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양산 선거에서 가능성을 찾았을뿐 아직 지역주의 극복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개혁진영이 어떻게 노력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친노신당의 움직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당이 하나로 모여야합니다. 친노는 민주당이 지역당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민주당은 문호를 개방하면서 친노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민노당도 단일화 해야할 판에 또 갈라지면 어떡합니까. 삼당 합당 당시 꼬마민주당은 8-9명의 정예 스타군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신한국당을 못 이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나온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에 대한 의견 듣고 싶습니다.

법으로 장난치는 거죠. 절차가 잘못되면 법도 무효지요. 그런 논리가 적용된다면 법을 만드는데 절차가 필요없는거예요. 유신헌법도 유효하단 거잖아요. 언제부터 헌재가 국회의 권위를 존중해줬습니까. 절차상 하자가 있지만 국회를 존중한다구요? 그래서 국회권위가 존중됩니까? 그건 탈법을 존중해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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