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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을 가다보면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둘러멘 여자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커다란 렌즈 때문에 앞으로 기운 DSLR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가 지나가면 그래도 아직 낯선 모습에 눈길이 한번 더 가기도 합니다. 이들이 포착하려는 건 가족이 아니라 사물입니다. 피사체를 찾아다니는 여자들은 남자보다 좀 더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무슨 일로 카메라를 쓸까? 기자일까? 작가?





피사체에 대한 그녀들의 욕망은 기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의미있는 피사체를 하나라도 더 담으려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고 무언가 발견하면 달려들어 구도를 잡고 망설임 없이 렌즈를 들이댑니다. 연이어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는 이 공간이 그녀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든 여자들에게 눈길이 가는 건 낯설어서만은 아닌 듯 합니다. DSLR은 여성들의 외모에 패션아이템 기능도 하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여성에게선 패션의 포인트가 느껴지면서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패션에 무감각한 보통의 남자에게도 어필하는 것은 이 패션이 미적감각보다 충격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입니다. 밀리터리룩보다는 강하고 담배를 물고 있는 여성보다는 좀 약한 패션. DSLR 패션에선 저항이나 도전 그런 것이 읽힙니다.





미디어시대인 오늘날 카메라는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로도 쓰입니다. 촛불시위에서 카메라가 했던 그 활약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남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미디어 시대의 무기인 카메라는 누구의 것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을까요? 여성이 카메라를 조작하거나 들고다니는 연인의 모습에선 남녀의 역전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남자는 관찰자이자 생산자입니다. 여성은 피사체이고 소비자입니다. 관찰은 권력, 생산은 근육을 떠올리게합니다. 정적인 피사체는 약함, 소비는 낭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강하고 긍정적인 것은 남성이고 약하고 부정적인 것은 여성인 셈입니다. 카메라는 관찰을 확대하고 생산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여성이 카메라를 들게되면 약하고 부정적인 여성성을 떨쳐내고 강하고 긍정적인 남성성을 입게 됩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를 향하는 여자 앞에선 그래서 한풀 꺽이게 됩니다.




관찰을 하려면 관점이 필요합니다. 관점이 없으면 대상을 포착할 수 없습니다. 관점이 없는 관찰은 없습니다. 관찰은 관점을 동반하게 됩니다. 카메라를 든 여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여성적 관점이 풍부해진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이념의 대립이 아닌 관점의 부재였습니다. 관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라는 대상을 포착하지 못하고 매몰되었습니다. 관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맹목적 대립은 정치의 조정·타협을 어렵게 했습니다. 정통성 없는 권력도 사람들이 관점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관점의 부재를 극복하게 하는 카메라는 무엇보다 훌륭한 의식화 도구입니다.

카메라를 든 여자들은 강합니다. 카메라를 든 여자들은 생산에 참여합니다. 카메라를 든 여자들은 분명한 관점을 가집니다. 이런 카메라를 든 여자들 앞에서 세상은 그대로 일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은 분명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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