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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경주에 갔습니다. 선덕여왕 때문이었죠. 역사 속 덕만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첫 코스로 경주국립박물관을 잡았습니다. 일행 중 한 분도 유홍준교수가 경주에 가면 박물관을 먼저 보라고 했다면서 내가 제안한 첫 코스에 적극 동의했습니다. 박물관 매표소에서 관람권을 사려는데 창구에서 돈을 안받고 표를 줍니다. 공짜면 그냥 들여보낼 거지 왜 종이 아깝게 쓸데 없이 표를 나눠주는 걸까? 올해가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이 되는 해라 올해말까지 관람료가 공짜라고 합니다. 첫 스타트부터 날로 먹어서 기분이 좋게 출발했습니다. 다른 동네 박물관도 이 기회에 봐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박물관에 입장했습니다.




경주 첫 코스로 들린 박물관에서 첫 코스로 안압지관을 관람했습니다. 안압지관은 70년대 안압지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일행 뿐 아니라 관람객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던 전시물이 있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뭘까요? 남근입니다. 나무로 만든 모형 남근입니다. 투박하지만 적나라한 모양새는 이 목기가 남근을 본따 만든 거라는 건 누구나 알아챌 수 있게 합니다. 




이 남근이 전시된 진열창 위엔 제의와 민속신앙이라는 전시 제목이 적혀있었습니까. 그러니까 나무 남근은 남근숭배신앙의 제의에 쓰인 목기라는 말입니다. 근데 저 말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않았습니다. 과연 저 물건을 민속신앙의 제의에만 쓰였을까? 진짜 남자 남근의 대체 용도로 쓰이지는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음흉한 인간일까?




전시대에 쓰여진 제목과 이 목기의 실제 용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데엔 몇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 이 나무 남근이 출토된 곳은 안압지입니다. 안압지는 제사를 지내거나 하는 곳이 아니라 귀족들이 노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출토되는 물건들은 놀이기구에 가깝다고 봐야합니다.

둘째, 나무남근의 모양새나 크기가 격식보다는 사용성에 더 치중한 느낌입니다. 제의에 쓰이는 것이라면 사람들의 눈에 띄도록 크거나 남근의 밑둥을 넓게 처리해서 제단에 세워둘 수 있게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기는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모양새와 실물크기입니다.

셋째, 반질할 정도로 묻어있는 나무남근의 손때가 이 물건이 제의보다는 실생활기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의보다는 자주 쓴 흔적입니다.




그런 야릇한 의심을 품고 안압지관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전시관에서 나무 남근이 실생활용 목기로 쓰였을 수도 있다는 내 의심을 뒷받침해주는 전시물 하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토기 위에 달린 토우들을 잘 보십시오. 중간 아래에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주인이 이 토기를 오늘날 포르노테이프처럼 숨겨놓고 쓰진않았을 겁니다. 신라시대엔 가족들 누구나 보는 생활용구에 이렇게 성행위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이 개방되어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라시대 이 나무 남근의 실제 용도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섹스가 일상생활에서도 스스럼없이 표현되는 신라시대엔 나무남근의 용도가 제의와 성생활로 분리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남근숭배의 제의에 쓰였다고 해서 그걸 자위용으로 쓰는 것을 기겁을 하고 말리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거라는 거죠. 우리가 식기와 제기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섹스가 일상에서도 흔히 표현되는 신라시대엔 제의용 도구와 성생활용 도구의 구분도 느슨했을 겁니다. 우리가 제기로 밥먹는다고 부정한 짓이라고 나무라지 않는 것처럼 신라시대엔 제기로 자위한 걸 혼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제기로 안쓰이고 아예 성생활 도구로만 쓰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냥 길에서 나무 하나 주워 깍아 만들어 썼는데 성을 터부시하는 오늘날 관념이 이 도구의 실제용도에 대한 상상을 방해하여 자꾸 남근숭배와 연결시키려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러나 저러나 나무남근은 확률적으로도 실생활 목기로 쓰였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찾아보니 나무남근에 대해 나와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이미 있더군요.   

[한국사 미스테리](1)안압지 출토 목제男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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