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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라는 단어를 80년대 드라마에서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극 중 배신하는 남자를 경멸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자의 입에서 꼭 "위선자"라는 단어가 튀어나오 곤 했다. 그럴 때면 아주머니들은 고조된 드라마에 감정이입되어 탄식을 쏟아내거나 "에이 나쁜놈아"하며  테레비 속의 남자를 혼내곤 했다.

부모님의 부부 싸움 중에도 이 단어를 들었던 것 같다. 감정이 격해지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해 "당신 정말 위선자야"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말은 아버지를 잠시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그러고나면 부부싸움은 내리막길이 되거나 아니면 부부싸움의 이슈가 다른 쪽으로 전개되었다.  

남녀 사이에서만 이 말이 쓰인 것 아니다. 나도 예전에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사람이 위선적이라는 평이었다. 그 말은 왠지 인간 이하라는 말로 들렸다. 내가 겉과 속이 다른지 가끔 스스로를 점검해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80년대에 위선자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시대가 순진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엔 우리의 욕구들 중 많은 것이 사회적으로 비난 받았다. 그래서 그런 욕망들은 감추어지거나 은밀히 해소될 수밖에 없었다. 위선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걸면 걸리는 비판이니 이 단어가 사람을 비난하는데 아주 쉬게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위선자가 많아서 위선자란 비판이 유행되었던 것이 아니라 작은 욕망 앞에서도 갈등한 순진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제 욕망은 긍정되기 시작했다. 본능에 대한 표현은 정직해졌고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연예인의 솔직함은 미덕으로 많은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회가 어느 정도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게 되자 욕망에 대한 비난은 사그러 들었고 그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위선자라는 말도 비난의 효과를 상실하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에서 위선자라는 단어가 나왔다. 한 시민이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할 때 뒤에서 위선자라고 몇번 고함을 질렀다. 포털에서 이 기사의 제목을 읽고 먼저 든 생각은 '위선자'라는 단어가 참 오랜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80년대가 떠올랐다.

오늘날처럼 '발랑까진 시대'에서는 별 효과가 없는 순수한 시대에나 통했던 위선자라는 비난을 그 시민은 왜 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용어로 선택했을까? 발랑까진 시대에 그 비판이 과연 그가 의도한 울림을 줄 수 있을까?

80년대의 위선자는 하나 남은 만두를 남겨놓고 나가는 것처럼 작은 욕망에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위선자라는 비난은 욕망이 인정되자 금새 생명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날 위선자라는 비난을 적용하려면 더 강력한 위선자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대리케 해놓고 자신은 모른 척 하고 뒤에서 음모를 사주하는 야누스적 모습을 보여야 위선자라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위선자라는 비난은 욕망과 관련이 없고 그 인간의 괴물적 본성과 관련있는 단어가 된 것이다.

어떤가? 21세기의 위선자라는 비난과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울린다고 보시는가? 위선자라는 단어가 21세기 드라마가 아닌 정치계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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