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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 노무현이 쓴 책 4권이 배달되었습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이 만난 링컨>,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노무현의 리더쉽 이야기>. 노무현을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얘기해놓으면 거창해보일 수 있는데 실제론 아주 작은 작업입니다. 노무현의 책과 참여정부 관련 자료들을 읽고 제 블로그에 나름의 생각을 풀어보는 것입니다. 그런 작업들이 쌓이면 노무현을 이해하고 체계화하는데 일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무현이 죽음으로 이뤄낸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여러 작업들이 진행되는 걸로 압니다. 이런 작업에 블로그도 개인으로서 이렇게 참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제 블로그를 노무현을 탐구하는 블로그로 '찌뽕'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안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대통령에 나온 이유는 안 되도 되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29p)


2002년 12월 18일 저녁 10시 정몽준의 노후보 지지철회가 있었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민주당의원들은 정몽준을 만나 설득하라며 싫다는 노무현을 억지로 떠밀었다. 그때 노무현이 정몽준 설득 요청을 거부하며 한 말이다.

이때 대통령후보 노무현에게서 나온 "안되도 되기 때문"이라는 말은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무책임하다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 되도" 된다는 이 말은 노무현의 계속 이어진 삶의 방식이었다. 불연속적에 맞서서 자신을 연속시키기 위한 노무현의 삶의 원리였다. 노무현의 이 원리는 사법시험수기에서 처음 찾을 수 있다.


다만 이제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배수의 진은 거두어 버리고, 하나의 직업인이 자기의 생각에 충실히 종사하듯이 고시 공부도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려 했다. '수석합격'이라는 표어 대신에 '천직=소명'이라 써 붙이고, 숙소를 마옥당에서 집으로 철수하여 직장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낮에는 미옥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여유가 있을 때만 공부하기로 하였다.(여보, 나 좀 도와줘. 202p)


그렇게 좋아했던 큰 형이 불의의 사고로 죽고나서 나서 노무현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고시=출세'라는 등식도 깨졌다. 고시를 관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준비한 게 그거라 바로 관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고시가 '안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직장생활의 한 과정이라고 보았다. 실패는 직장을 옮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고시를 이전까지의 삶과 완전히 단절시켜줄 수단이 아닌 연속적 삶의 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여유가 생기면서 공부와 삶이 같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 시험에 대한 준비도 착실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얼마뒤 고시에 합격하게 돈다.  이후부터 그는 성과를 본 '안되도 괜찮다'는 그의삶의 원리를 계속 이어갔다.


내가 국회의원 노릇을 함으로써 오히려 권력자들에게 구색만 갖춰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숱한 의문과 회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는 그런 나 자신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버텨내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고통과 가슴을 짓누르는 양심의 가책뿐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쌓여 왔던 숱한 고통과 아픔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나의 선택을 가혹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지. 이제는 정말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어!(여보, 나 좀 도와줘. 39p)



1989년, 누구는 절대 놓지않으려는 국회의원직을 노무현은 1년만에 사퇴하려고 했다. 노무현의 사퇴선언은 당시 사람들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이 행동을 인기를 끌어보려는 쇼라고 했다.


노후보는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정몽준과 공동정부안이 논의될 때 두 차례 후보직 사퇴를 심각히 고민했다. 당에서 혼자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데 어떻게 정권을 잡을 수 있으며, 대통령이 된다 한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 때문이었다.(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24p)
후보단일화를 안하고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일보다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25p)




노무현의 삶의 원리는 지지자와 지인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곤 했다. 노무현이 대통령후보 사퇴를 거론하고 정몽준측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준 합의서에 사인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걸 노무현의 기막힌 승부수라고 했다. 물론 자신을 버려서 승리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모든 걸 내던진 단일화를 묘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묘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계속해서 관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삶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서 그동안에 축척된 여러가지 불신에 대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습니다.(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261p)
재신임을 묻는 방법은 국민투표가 옳으며 시기는 12월15일 전후가 좋겠습니다.(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262p)
(총선에서) 여당이 소수당이 되면 야당에게 (대통령 권력의) 절반을 가져가라 해놓고 내각제 대통령 비슷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국회에 내각을 넘기는 겁니다. 이건 국민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예요.(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344p)




노무현의 삶의 원리는 대통령 재임중에도 이어진다. 1년만에 측극의 비리에 대한 괴로움에 '재신임'을 꺼낸다. 그리고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도 내놓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런 그의 제의를 반대자들은 꼼수로 보았고 지지자들도 내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노무현이 마지막 남긴 말이다. "안되도 되기 때문"이란 말과도 통한다. 노무현은 고시 합격 이전과 이후를 하나로 보았다. 노무현은 국회의원인 것과 아닌 것을 하나로 보았다. 노무현은 대통령인 것과 아닌 것을 하나로 보았다. 노무현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았다.

그 하나는 바로 노무현이라는 가치다. 형의 죽음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를 간직한 하나의 노무현이 사법고시라는 불연속을 통과했다. 인권운동가인 하나의 노무현이 정치인이라는 이 끊기힘든 변환장치를 통과했다. 수백만 지지자의 가치를 담은 하나의 노무현이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불연속면을 통과했다. 

퇴임후 노무현은 인생 최악의 불연속을 맞이한다. 권력은 지인들과 가족을 수사하며 노무현을 압박했다. 모든 것을 노무현이 했다고 하면 가족과 지인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된다. 그러나 그런 진술을 하는 순간 수백만의 지지자들은 침통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노무현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이 불연속면을 통과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도 없었다. 사법고시와 국회의원과 대통령과 달리 이번의 불연속면은 의지를 가지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오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이 무자비한 불연속면에서 지켜온 삶의 원리대로 하나가 되고싶었던 노무현. 수백만 지지자의 가치를 실은 노무현을 지키고 싶었던 노무현. 여기에서 노무현은 삶과 죽음의 통로를 찾았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삶과 죽음의 통로를 통과하는 순간 노무현은 하나가 될 수 있고 노무현에게 실려진 수백만의 가치는 지켜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또 다른 노무현을 말한다면 그건 삶이 불연속을 통과하는 용기와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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