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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코드 빠진줄 모르고 서비스직원 불렀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테레비를 켰는데 방송이 안잡힙니다. 뭔가보니 IPTV 컨버터의 전원이 꺼져있습니다. 컨버터 스위치는 ON위치에 제대로 있습니다. 전기선도 컨버터와 컨센트에 야무지게 꽂혀있습니다. 기계결함이라고 판단하고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했습니다. 




몇 시간 뒤 서비스직원이 집을 방문했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직원이 테레비 앞에 앉았습니다. "전원이 안들어온다고 하셨죠?" 하면서 컨버터와 플러그를 확인했습니다. "여기는 이상없습니다." 하더니 테레비받침대 밑의 코드줄을 끄집어 냈습니다. 그러자 코드가 쑥 빠져나왔습니다. 중간에 연결된 코드가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서비스직원이 여기까지 체크하는데 10초가 안걸렸습니다. 코드를 제대로 끼우자 컨버터의 전원이 들어왔습니다.

코드가 빠져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민망함에 직원의 얼굴을 처다볼 수 없었습니다. 전기선만 제대로 확인했으면 우리 가족이 테레비도 바로 볼 수 있고 서비스직원 헛걸음도 안시켰을 겁니다. 내 사소한 부주의가 이만저만 폐를 끼친 게 아닙니다. 어쩔줄 몰라하며 이말저말 둘러대고 있는데 서비스요원은 내 미안한 기색에 아무런 내색이 없습니다. 난 미안함에 빨리 보내드리고 싶은데 그는 태연히 앉아 오히려 더 봐줄 게 없는가 물어보며 인터넷 선도 점검해주고 어지러운 전기코드도 정리해줍니다. 

요청하지 않은 인터넷선까지 점검하고 이것저것 설명을 마친 직원이 일어서더니 내게 자신의 명함을 건넵니다. 혹시 일주일 안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아닌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해달라고 당부를 합니다. 서비스 담당제 같은 건가 했는데 얘길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곳에서 일주일 안에 또 고장이 발생하면 직전에 출동했던 직원이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직원이 빠져있는 코드 외에 다른 곳까지 손을 본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플러그만 고치고 돌아갔는데 일주일 안에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 문책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기기를 봐준 그 직원의 서비스가 고마웠습니다. 이런 서비스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참 체계적이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니 과연 이게 옳은 상황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실수해서 불렀는데 오히려 직원이 내게 잘 봐달라고 고개를 숙입니다? 부주의로 비난받아야할 내게 그들은 인사하고 더 많은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용자의 잘못에 페널티가 아닌 보상이 주어지는 서비스시스템은 좀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런 서비스시스템은 칭찬할만한 것 못되는 것 같습니다.불량 사용자에게 더 보상을 하는 이런 서비스시스템은 착한 사용자에게 비용을 전가시킬 수 있습니다. 불량사용자의 부주의에 대한 보상비용은 물건 값에 전가되어 착한 사용자가 지불하게 됩니다. 회사의 과도한 수리서비스는 불합리하게도 불량사용자의 비용까지 소비자에게 물리는 것이 됩니다.
 
이런 서비스지상주의는 장기적으로 고객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집안의 기기 수리를 서비스요원에게 의존하다 보면 사용자는 나중에 더 크 비용을 치를 수 있습니다. 간단한 고장을 고칠줄 몰라 수리요원을 부르는 행위는 애프터서비스가 끝난 후에도 반복되어 결국엔 이전에 받았던 공짜 수리혜택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될지 모릅니다.  

사회적으로 봐도 이런 서비스지상주의는 노동자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 현재 노동자의 80%가 서비스노동자입니다. 노동자가 요구하는 서비스는 결국엔 노동자 자신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할인점 등에서 회사로부터 요구되는 서비스수준이 공장이나 공공기관 등으로 퍼져나가게 되고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혹사시켜 서비스 대접을 받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플러그 빠진 줄 모르고 수리요원을 부른 노동자는 언젠가 반말하는 손님 앞에서 무릎 끓고 무조건 자기 잘못이라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플러그 빠진줄 모르고 서비스요원 불렀다 깨닫게 된 거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서비스지상주의는 불량고객에 더 큰 보상을 주어 도덕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둘째, 서비스지상주의는 나중에 소비자는  큰 비용을 치르게 할 수 있다.
셋째, 우리가 요구했던 서비스지상주의는 다시 돌아와 우리를 혹사시킬 수 있다.



유럽선진국에선 왠만한 기기 등은 본인이 설명서 보고 알아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와 비교해서 너무나 형편없는 서비스입니다. 간혹 미수다를 보면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의 서비스시스템을 자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유럽은 소비자가 불편한 만큼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덜 혹사당하게 됩니다. 소비자를 편하게하는 한국의 서비스지상주의의 이면엔 혹사당하는 한국의 노동자가 있습니다. 과연 이런 한국의 서비스지상주의가 자랑할만한 것이 될까요?

과도한 서비스들 좀 끊고 살면 어떨까요? 직원에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회사는 불매하고 그런 서비스는 거부하면 어떨까? 서비스를 받지 않으면 않을 수록 우리의 삶이 좀 더 여유로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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