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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까지 노동하면 떠오르던 단어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였다.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를 상징하는 두 단어는 어떤 노동이 더 가치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두 부류 노동집단의 노동가치가 비교되면서 서로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육체노동자의 근육의 이미지와 정신노동자의 말끔한 정장 이미지는 어떤 측면으로든 노동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그러다 90년대부터는 아웃소싱과 용역이란 단어가 나타났다. 이 단어들은 산업합리화라는 미명하에 사회에 빠르게 퍼졌고 이 단어들이 자리잡으면서 노동의 가치는 폄하되기 시작했다. 노동의 상징은 '근육'이나 '정장'에서 '단순'과 '반복'이라는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낮게 평가된 가치만큼 노동의 분배도 적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의 70%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한 사업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있다. 

노동의 분배는 적어졌지만 그에따라 노동의 강도가 낮아진 건 아니다. 오히려 서비스산업시대로 접어들면서 노동은 더욱 힘들어졌다. 육체노동을 하다 감정까지 팔아야하는 시대가 되면서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훨씬 높아졌다. 그러나 자본은 이 힘든 '감정노동'을 '단순반복'이라는 단어로 폄하한 후 아웃소싱(용역)이라는 기법으로 착취하고 있다. 

용역은 노동자들이 이중으로 착취당하도록 만들었다. 소속된 노동현장의 고용주와 직접 고용한 회사 두 곳에서 노동자를 통제하면서 노동자들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의 업무내용이나 책임은 차이가 없으면서 오히려 용역업체노동자라는 이유로 더 불리한 대접까지 받고있다. 여기에다 용역업체의 간섭과 착취까지 당하게 된다.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사실 존재하지않는다. 모든 노동은 많은 주의와 숙련을 필요로한다. 단속적 업무로 분류되는 아파트수위의 경우도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고 실제로 단속적으로 근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파트수위는 단순반복에다 단속적이라는 단어까지 덮어쓰면서 최저임금도 받지못하며 일하고 있다. 결코 호응할 수 없는 '단순반복'과 '노동' 이 두 단어를 자본과 그 자본의 똥구멍을 빨아주는 언론들이 붙여 쓴 것은 언어사기이고 언어조작이다. 

90년대 이후 사회의 분배가 악화된 것은 노동이 자본과의 언어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시대로 접어드는데 노동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같은 대량산업화 시대의 언어만 붙잡고 있었다. 그 사이 자본은 서비스노동자들의 노동을 단순반복이라 폄하하며 서비스산업시대에 대처했다. 최근 여기에 대항해서 서비스노동자를 '감정노동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결국 세상은 언어의 싸움이다. 많은 언어를 만들고 통용시키는 쪽이 이긴다. 노동착취의 시대를 탈출하기 위해선 다시 블루와 화이트같은 노동언어들이 경쟁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노동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낮추려는 자본과 그 똥개언론의 언어조작을 물리치지 않으면 노동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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