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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왜 의학교과서는 없을까?

커서 2008. 1. 1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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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20명의 환자만 돌보기 위해 커피숍을 함께 운영한다는 의사의 얘기를 읽었습니다. 환자와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20명 이상 진료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습니다. 그때문에 부족한 병원운영비는 커피숍에서 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커피파는 의사, 제네널 닥처 김승범원장

일단 그의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이 반가왔습니다. 십수년전 속이 안좋아 내과를 자주 찾아간 적이 있는데 한번도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의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내시경조사로도 원인을 찾지 못한 그들이 내린 진단은 스트레스성이었습니다. 결국 병원의 진료와 약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가진단과 관찰로 증상에 대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의사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의사 말이라면 일단은 한번 걸르고 듣는 경향이 제게 생겼습니다.

병원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입니다. 불안한 얼굴로 환자가 몇마디 물어보면 의사가 더 이상의 질문을 못하게 말문을 막아버리는 경험은 대부분이 겪어본 한국의 의료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들으며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소중히 여기는 의사의 자세는 분명 신선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커피숍을 운영하며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확보한다는 그의 방식에 조금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의사에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진 않지만 의료소비자로서 꼭 그의 선행에 빚을 진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방식은 그간 진료커뮤니케이션에서 일방적 비난을 받았던 의사측의 항변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적절한 의료수가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그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의사로선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항변이 일면 일리있다 수긍합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 해결 법이 아닌 개인적 대응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분명 지적되어야 합니다. 

의사가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는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엔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상대인 환자가 의사와 커뮤니케이션 하기에 어렵지 않을 정도의 의료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커뮤니케이션 만족도는 더 높을 것입니다.  의사도 잘 알아야 하지만 의사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만큼의 환자 의료지식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몸을 다루는 의료에서 전문가는 의사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직접 병을 겪고 있는 환자도 전문가입니다. 병은 의사와 환자 두 전문가의 협업에 의해 치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의료지식을 갖춘 환자는 의사의 진료를 효율적이고 원할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의사라면 환자의 기본적 의학지식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은 환자의 의료지식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전문가인 자신들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 환자들의 태도에 불평을 하는 게 사실입니다. 과연 환자가 자동차 등의 소유물도 아닌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믿고 맡기는 게 맞는 일일까요. 단언컨데 자신의 몸은 절대로 의사든 의사 할애비든 맡겨선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몸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으려면 스스로 몸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학은 의사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워야하는 학문입니다.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의학은 본인 스스로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입니다. 몸을 다스리는 지식이야 말로 그 어떤 지식보다 먼저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엔 수학이나 영어교과서는 있지만 의학교과서는 없습니다. 제산제 등의 간단한 위장약이 내 몸에 들어가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환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감기가 대증치료제일뿐이라는 상식도 잘 알지 못합니다. 교통사고 등에 대해선 수없이 주의를 듣지만 한해 수만명이 숨지는 암이라든거 주요 질병의 발생과 치료과정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간단한 지식이 괜히 아는 걸까요. 이런 지식이 영어 단어 수학 공식 하나의 가치도 없는 것일까요.

정말 의료계가 환자의의 커뮤니케이션을 걱정한다면 진료시간 확보와 함께 환자의 의료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환자들의 의학지식은 병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불필요한 진료나 처방을 자제시켜 의료수가를 인상시켜주고 그에 따라 다른 환자의 진료시간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또 의료소비자인 환자가 의료상식으로 무장함으로써 의사를 긴장시켜 보다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자발적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의료소비자로부터 압박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의사여러분 의학교과서 어떻습니까. 커피숍 등의 개인적 대응보단 이게 진료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좀 더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 그리고 정말 궁금합니다. 왜 우리는 의학교과서를 배우지 않는지. 왜 의학지식을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주워 들어야 하는 건지. 혹시 학문의 권력과 관련 있는 건 아닐까요. 학문의 권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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