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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93년도에 나온 책이다. 92년 LA폭동 당시 라티노와 흑인들이 한국상점을 주로 약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언론에서는 이 때문에 LA폭동을 한흑갈등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내 한국인들은 왜 흑인들이 한국인을 공격하냐는 의문에 답이 필요했고 이 책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책이다. 책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고 정확히 밝힌다. 미국이 만든 인종차별을 한국인이 덮어쓰고 있다고. 이 책에 나온 미국의 지독하고 악랄한 인종차별 장면 14개를 소개한다.


1.
미국남부 루이지애나 주에 살고 있던 길로이핍스라는 백인여인이 백인으로 기록한 여권을 신청했는데 발급소로부터 흑인으로 정정해야 여권을 발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핍스여인은 부모와 증조 선조까지 모두 백인이었다. 당연히 핍스여인은 법원에 제소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황당하게도 핍스여인이 흑인이라고 판결했다. 핍스여인은 220년 전 프랑스계 농장 주인과 흑인 여자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의 후예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미국의 '피한방울의 법칙'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1983년이다.


2.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탄 흑인들은 500-600만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노예수입이 금지된 1807년까지 미국으로 도착한 노예는 150만이다. 무려 400-500만명의 노예가 생포와 이송 도중에 죽은 것이다. 인디언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미국은 유태인을 학살한 독일을 능가하는 인류 최대의 학살국가 라 할 수 있다.

3.
1857년 미국대법원은 드레스콧이라는 흑인 노예에 대해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헌법의 기본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조항에서 '모든' 사람은 백인을 의미하여 흑인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까지 내렸다. 한국의 수도이전위헌판결이 떠오른다. 관습법으로 수도는 서울이어야만 하는 것처럼 인간은 백인 뿐이다. 흑인과 황인종은 백인들 관습법에 의해 인간이 아니다. 

4.
링컨은 주하원과 연방하원으로 재직 중 노예제도를 없애는 안건이 상정될 때마다 100% 반대표를 던졌던 노예제도 지지파였다. 링컨은 불리한 남북전쟁 형세를 뒤엎기 위한 수단으로 노예해방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런 종자를 우리가 지금 위인이라고 받들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고 있는 건가? 링컨은 미국의 정치적 위인일 뿐이다. 그에게서 인류의 가치를 배우려고 해선 안되는 것이다.

5.
1차 대전 당시 체포된 독일군은 백인 막사에서 식사가 허용된 반면 아군인 흑인들은 백인 막사에서의 출입 및 식당에서의 식사가 금지되었다. 아군인 흑인은 개취급 당하고 포로인 독일인들이 그 개(?)보다 위에 있었던 것이다.

6.
 1955년 12월1일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시의 한 여성이 버스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기사가 그 여성에게 뒤로가라고 명령했다. 앞자리는 백인의 자리였고 그녀는 흑인이었다. 그녀는 용감하게 'NO'라고 대답했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뒷좌석의 흑인들은 경악했다. 이 여인은 봉제공장에 다니던 로자팍스여사다. 그는 곧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로 인해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10년 동안 미국 남부 전역에 인종혁명을 벌어졌다. 이날 버스에서 보인 용기로 로자팍스여사는 위인이 되었다. 해마다 그녀의 용기를 기리는 행사가 벌어진다.
 
7.
로자팍스여사의 사건으로 몽고메리시의 흑인들은 버스 보이콧을 벌인다. 걷기도 하고 동료의 차를 합승해서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보이콧이 1년 동안 벌어졌다. 이때 동료 흑인들을 태워 준 흑인들의 운전면허나 보험이 취소되었다. 백인경찰들은 합승한 흑인 승용차의 경미한 교통위반에도 수갑을 채워 구속했다. 한국경찰이 촛불경적시위자에게 가했던 것과 흡사한 일이 50년 전에 벌어진 것이다. 이건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쪽팔려 해야할 일인 듯.

8.
1955년 8월 미시시피주 머니라는 도시에서 에밀 팃이라는 14세의 흑인 소년이 백인소녀에게 '바이 베이브(Bye Babe)'라고 말했다.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던 흑인 할아버지는 경악했다. 남부에서 흑인이 백인여성에게 Babe라고 쓰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부 시카고에서 친척집에 놀러온 에밀 팃은 이걸 몰랐다. 그날 저녁 에밀 팃이 묵고 있는 모스 라이트의 집에 kkk단이 찾아왔고 두려움에 떤 모스는 그들이 에밀 팃을 데려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에밀 팃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뒤 에밀 팃의 시체가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그날 밤 에밀 팃을 데리고 나간 두 명의 백인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배심원은 모두 백인이었다. 놀랍게도 두명의 백인은 무죄를 판결 받았다. 그리고 그 두명의 백인은 에밀 팃을 죽인 무용담을 백인기자에게 4000달라를 받고 팔았다. 인도에서 일어난 명예살인이 아니다. 50년 전 미국이다. 지금도 이게 맞다고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나라를 지구촌 경찰로 믿고 맏길 수 있는가?

9.
미시시피주에서 3명의 흑인유권자 등록 캠페인 자원봉사자들이 실종된지 6주만에 저수지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을 죽인 건 kkk단과 세실 프라이스라는 지역경찰이었다. 세실은 3사람을 속도위반 혐의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가두고 밤에 kkk단을 불렀다. kkk단은 이 3명을 그날 밤 숲속에서 처형했다.

10.
급진적 흑인운동지도자 맬컴x는 어린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장차 무엇이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맬컴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흑인은 변호사가 될 수 없으니 좀 더 현실적인 직업인 목수를 택하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11.
영어에 상하이(shanghai)는 납치를 의미한다. 19세기 중국인들이 상하이에서 반납치로 팔려온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다 1882년 중국인 이민 금지법이 생겼다. 이 법으로 그 전까지 미국에 노동자로 건너왔던 10만명의 중국인들은 처자식을 중국에 남겨둔채 평생을 총각으로 살다 일생을 마쳤다. 그래서 중국사회를 일명 총각사회라고도 한다.

12.
미국귀화법은 흑인·아시아계·라틴계·인디언은 미국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 법은 1952년에 와서야 폐기되었다. 백인과 비백인 간의 결혼이 금지된 금혼법은 1967년까지 미국법에 남아있었다. 아직도 백인 상류지역의 부동산 등기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집은 오직 백인에게만 팔 수 있다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13.
2차대전 당시 11만명의 일본계미국인들이 적군시민이라하여 72시간 내에 수용소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법으로 많은 일본계미국인들이 집과 재산과 직장을 잃었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 시민에 대해선 이런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원폭이 독일이 아닌 일본에 투하된 것도 좀 생각해볼 일이다.

14.
15세의 흑인 소녀를 총으로 쏘아 죽인 한국계 두순자 여인은 재판에서 벌금과 3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두순자 판결이 내려진 그 다음날 글렌데일에 사는 한 한국계 미국인 브랜든신 씨는 개 폭행죄로 유죄평결을 받고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십몇년 전엔 한 일본인이 미국인의 집 초인종을 잘못 눌러 주인의 총에 맞아 죽었으나 주인은 무죄를 선고받은 적도 있다. 미국은 이처럼 이상한 나라다. 룰의 어긴 잘못이 목숨값이 될 수도 있다고 판결하는 사회다. 이런 곳이 과연 정상적인 세상인가? 이런 미친 놈의 나라를 따라하자고? 우리도 문 열면 총맞는 나라 만들까?

그래도 미국이 좋으십니까?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요? 92년 LA폭동 사건의 원인인 로드니킹 사건이 17년 전 일입니다. 17년 만에 미국이 좀 나아졌을까요? 너무 짧은 시간이죠. 종교국가(기독교) 미국에게 별 기대를 갖지는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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