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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얘기부터 먼저해보자. 2002년 대선에서 김민석이 정몽준에게 붙자 개혁진영에서 거대한 분노가 일었다. 분노는 곧 노무현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져 지지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후 노무현 지지도는 하락세를 그치고 상승세로 돌아서 정몽준과 비슷한 지지세를 유지했다. 만약 당시 김민석이 정몽준에게 가지 않았다면 지지도 추세상 노무현은 정몽준의 지지율을 밑돌았을 확률이 컸다. 단일화후보 자리를 정몽준에게 넘겨줬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민석은 노무현의 대선 당선을 도운 것이다.

김민석이 정몽준에게 가면서 내세운 주장도 일리있다. 당시 김민석은 누군가 움직여서 고착된 정국을 풀어야 한다면서 자신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화학결합을 위해선 자유전자가 튀어나와야 한다. 실제로 김민석의 이탈은 고착된 양쪽 진영을 두들겨 결합력을 만들었다. 김민석의 활약에 자극받았는지 노무현은 이전의 태도를 바꾸어 단일화에 나섰다. 결국 김민석은 노·정단일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한 것이다.

여전히 김민석에 대한 경멸감을 떨치기 힘든가? 그럼 내 얘기도 해보겠다. 나도 당시 단일화를 하지 않고선 노무현의 당선이 어렵다고 봤다. 노무현을 지지하고 정몽준이 민주당의 후보가 되는 꼴은 꿈에라도 보기 싫었지만 민주진영의 집권을 위해선 단일화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정치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노무현의 당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진영의 집권이었다. 민주세력이 5년만에 정권을 내주면 그간의 민주화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후보로 노무현이 아닐 수도 있다고 각오했고 단일화가 성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 김민석이 나선 것이다. 나는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진심이다. 

그러나 단일화 공로에도 불구하고 김민석은 참여정부 5년 내내 완전히 죽어 지냈다. 그는 네티즌의 적이었다. 김민석이 조금만 머리를 내밀어도 네티즌들은 정말 잔인하게 두들겨 팼다. 그가 참여정부 5년 간 살아날 수 없다는 건 명백해 보였다. 왜 그랬을까? 그가 살아나면 노무현이라는 극적인 드라마가 훼손되기 때문이었다. 김민석은 노무현 드라마에서 '김민새' 배신의 악역을 맡아 노무현시대를 내내 떠 받쳐줘야 했다. 이렇게 해서 노무현시대 최대의 희생양 김민석의 슬픈 드라마가 5년 동안 이어졌다. 

자 이제 정동영을 얘기해보자. 정동영이 자신의 고향인 전북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한다고 하자 민주당 내부와 진보진영에서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동영의 출마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동영이 동작구에서 뼈를 묻겠다는 약속을 버리고 다시 지역주의에 기대어 정치를 한다는 점을 비난하고 있다. 

지역주의에 기대어 정치를 한다는 비판은 사실 현 정치상황에 비추어 별 효력이 없는 비판이다. 현재 정치세력의 구심점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지역정치에 기대어 성장했고, 지금도 지역정치에 발판을 두고 있다. 민주당 모든 정치인이 이구동성으로 존경한다고 하는 김대중전대통령도 지역적 지지가 없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정동영만 안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동작구를 버렸다는 비판은 좀 억울하기까지하다. 동작구는 당이 선거전략에 의한 전략적 출마였다. 정동영은 자신의 안전한 지역구가 있음에도 당의 전략에 따라 연고가 빈약한 위험한 지역에 출마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지역구를 버려가면서 사력을 다한 정치인에게 보상은 못해줄지언정 그 명령을 근거로 해서 비난하고 공격하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 근거가 빈약하고 정동영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는 정동영불출마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에서 힘을 받는 이유는 뭘까? 김민석을 억눌렀던 노무현이 바로 여기에도 있다. 정동영도 김민석처럼 노무현시대의  피해자인 것이다. 정동영에 대한 비판은 노무현잣대가 있기에 힘을 받는다. 노무현은 철저히 지역을 배격하면서 성공했는데 정동영 너는 뭐냐 라고 비난이 정동영불출마론에 내포되어 있다. 김민석이 노무현드라마의 지속을 위해 배신의 상징으로 정치적 유배를 당했다면 정동영은 아직도 살아남은 노무현의 탈지역주의 정치이상으로 인해 정치활동에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선 지역주의 정치가 배격의 대상이 아니라 계급과 인종처럼 하나의 정치요소이다. 따라서 지역주의에 기대어 정치를 한다고 해서 비민주적이라거나 정치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비판할 수 없다. 탈지역주의는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이상일 뿐이다. 노무현은 탈지역주의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동영에게도 똑같은 성공이 반복될 확률은 낮다. 정동영은 지역정치를 도구로 다른 정치이상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노무현은 탈지역주의에 실패했다. 오히려 노무현의 실험은 한국에서 지역주의 극복이 아직은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무현의 실험이 가르친 것은 냉정하게 지역주의 정치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정치전략을 짜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탈지역주의 실패의 교훈은 아지 정치인과 지지자 사이에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지역주의 비판은 개혁적 정치인들을 짓누르는 가장 무거운 비판 중 하나이다. 실패한 노무현 정치이상은 망령으로 남아 진보진영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계급이 정치에 이용되는 것처럼 지역도 정치에 이용될 수 있다. 어쩌면 지역주의를 희석하는 것은 지역정치를 소진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지역주의를 억누루면 억누룰 수록 유권자를 더 자극하여 폭발력이 커지는 것인지 모른다. 노무현의 탈지역주의가 실패한 지금에서 보면 노무현의 정치이상이 지역주의의 현실적 해결방법이 아닌 한 정치인의 성장자양분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물론 노무현의 선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역주의 극복에 너무 조급했고 세계 어디에서도 쉽지않은 너무나 큰 이상을 품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지역정치를 기반으로 성장한 보수진영의 정치인들은 진보진영 후보들을 압도했다. 지역정치의 보호를 받지 못해 정치적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은 보수진영 후보 앞에서 역부족이었다. 만약 다음 대선도 진보진영이 지역정치를 제외하고 준비한다면 꼬마들이 거인에 맞서는 2007년 대선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도 지역정치에서 가능성을 키워야 한다. 노무현의 정치이상에 갖혀 지역정치의 가능성을 버려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탈지역주의 정치이상에 맞추다 보면 진보진영의 자원은 모두 소진될 수 있다. 진보진영은 이제 진짜 정치를 해야한다. 탈지역주의정치이상은 노무현으로 끝났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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