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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을 연기한 프랭크 란젤라의 실룩거리는 표정연기는 후련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건 그의 연기가 영화를 관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란젤라가 멋지게 완성한 닉슨이란 캐릭터는 영화의 줄기이고 나머지 캐릭터는 그 줄기에 붙은 가지처럼 보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다른 캐릭터는 줄기를 만난 가지처럼 살아났다. 닉슨이 영화에 나오는 게 아니라 영화가 닉슨에 얹혀서 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역시 연기가 '컨테츠어브컨텐츠'임을 실감하게 하는 영화였다. 프로스트&닉슨의 박진감 넘치는 표정연기는 관객의 뇌리에 수천억원을 들인 액션장면보다 더 강한 자극을 남겼다. 
  



닉슨은 토론하기 전에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 프로스트의 구두를 시비걸고 그의 바람기를 둘러친다. 그러고는 의뭉스런 표정을 지어버리면서 입을 싹 쓸어닦는다. 프로스트는 닉슨의 시비에 움찔하고 바로 그 상태로 토론에 들어간다. 이렇게 기선제압을 한 닉슨은 프로스트와의 토론에서 승승장구한다.

노련한 연사들은 대개 첫 마디가 공격적이다. 그들은 연설을 시작하기 전 청중을 먼저 공격한다. 앞에 앉은 사람의 이름을 묻거나 질문을 던지면서 청중을 술렁거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부드러운 반전으로 청중을 안심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때부터 청중은 연사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왜 그럴까? 공격적 첫마디로 연사는 청중에게 자신이 더 우위에 있음을 각인 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청중은 연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말과 유머에 최대한의 예의를 준비하게 된다. 대통령의 별 재미없는 유머에 사람들이 웃는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 이해될 것이다. 닉슨의 프로스트에 대한 기선제압도 프로스트가 잊고 있을 둘 간의 권력의 차이를 재인식시키려는 의도이다. 




세번째 토론까지 닉슨은 기선 제압하기, 상대의 질문에 주절거리며 답변하기, 희미한 논리에 기대어 호통치기로 프로스트를 압도한다. 그러나 닉슨은 네번째 승부를 앞두고 실수를 한다. 승부에 집중해야할 시기에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인간적 소회를 털어놓아 버렸다. 승부의 이면도 즐기고 싶었던 닉슨은 자신도 모르게 취중에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게 실수였다. 닉슨은 프로스트의 승부심을 자극시켜버렀다. 

닉슨은 외로웠다. 정치인인 외롭다. 정치인은 자신의 지지자를 대변해야 한다. 지지자들은 정치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행동과 말을 하길 바란다. 그래서 지지자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다. 지지자의 시선은 거대한 벽을 만들고 시선의 장벽은 정치인을 외롭게 만든다. 닉슨은 승부의 이면을 자신의 심복과 즐길 수 없었다. 도청하자는 소리에 놀라는 그의 측근에겐 농담이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닉슨의 농담마저도 감시하는 사람들이다. 노무현이 농담도 못한다며 정치인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는가. 농담마저 감시받는 닉슨은 결국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러나 닉슨의 취중전화에 무엇보다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프로스트의 쾌활함이다. 프로스트는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닉슨도 영화의 마지막에 늘 파티를 하고 여자와 쉽게 어울리는 프로스트의 쾌활함이 좋았다고 말할 정도다. 쾌활함만큼 인간에게 큰 매력은 없다. 어느 순간에서나 쾌활함을 잃지않는 인간은 성공확률이 높다. 프로스트는 3번의 토론에서 참패한 그를 조롱하는 동료들 앞에서도 웃고 넘어간다. 속은 끓고 겉으로만 넘기는 게 아니라 정말로 타인의 시선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성격으로 보인다. 처음 당할 땐 멍한 표정을 짓다 이내 심각함을 떨쳐버리는 마이클 쇤의 연기는 그래서 적절하다. 프로스트의 쾌활함이 닉슨의 취중 전화를 이끌어냈고 그로 인해 프로스트는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프로스트가 이겼다. 그러나 사실 프로스트는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토론 준비도 제대로 못해 팀원으로부터 조롱을받았고 사태가 위태해졌음에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딴데 정신을 쏟았다. 그러다 모든 것이 틀어진 순간 애인 앞에서 찌질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닉슨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벼락치기를 해서 거두게 된 그의 승리는 우연처럼 보인다. 프로스트의 애인은 프로스트에게 재능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말은 프로스트의 승리를 조롱하는 영화의 복선처럼 들린다.

관객은 그의 승리를 수긍하지 못한다. 왜? 그는 승리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진짜 승리자는 자본이다. 프로스트가 미국에서의 성공은 다르다고 하는 것은 미국에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성공하면 자본의 열광을 부르기 때문이다. 프로스트는 미국의 자본을 대신해서 닉슨을 상대해 이긴 것이다. 

포드가 사면하면서 공적기관은 닉슨을 단죄하는 통로를 상실했다. 공적기관의 단죄가 실패한 공간에 자본이 프로스트를 앞세워 닉슨을 처단했다. 공적기관의 실패와 자본의 성공은 무얼 말하는 걸까? 자본보다 비효율적인 공적기관을 조롱하는 것일까? 아님 자본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영화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닉슨의 심복 잭 브래넌의 입에서 나온다. 그는 닉슨을 모시는 정당성을 닉슨이  60%는 잘했다는 데서 찾고 있다. 거짓과 진실의 문제를 양적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손 씻었냐고 물어보는데 발보단 손이 깨끗하다라고 대답하는 격이다. 브래넌은 자신의 이런 신념을 털어놓으며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그 순간 '잘한 것도 많은데 왜 나만 그러냐?'는 분을 평생 모시는 분이 생각났다. 

영화 '식코'를 보면 닉슨의 육성이 나온다. 지금 미국이 고통받는 의료법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닉슨이다. 식코는 미국의 악명높은 의료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1971년 2월17일 5시23분에 잡힌 닉슨과 에릭크먼의 대화를 통해 알려준다. 대화의 내용은 이렇다.


애릭크먼 : 이 건에 대해 부통령님이 처리해야할 사안을 간추려 보았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애드거카이저 종신보험같은 건강유지기구를 포함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닉슨 : 나 그딴 의료정책 같은 거에 관심 별로 없는 거 알잖아.
애릭크먼 : 이건 사기업이 경영할 겁니다. 애드거카이저 종신보험은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경영합니다.(중략) 모든 인센티브는 더 적은 보험보장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들이 돈을 더 적게 지출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유인동기들은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닉슨 : 그럴싸한데.



닉슨은 이 새로운 의료정책을 소개하면서 미국인에게 세계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줄 것이라고 연설했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모든 미국인들이 처방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닉슨은 이런 사람이다. 그래도 이런 사람이 한 일 중 60%는 잘한 짓이고 그 잘한 짓 60%에 자신의 신념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전두환은 몇 퍼센트 잘한 대통령일까? 지금 대통령 옆에 있는 사람은 나중에 몇 퍼센트 잘했다고 주장할까? 시작부터 잘못되었거나 이미 숱한 거짓말이 드러난 정치인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진실 또는 선행의 양적 우위이다. 그러나 잘한 짓을 쌓아서 정당성을 만들려는 이런 정치지도자 때문에 국민은 고통받게 된다.  

대체로 잘 만든 영화다. 연기의 묘미를 느끼고 싶고 정치의 영감을 얻고 싶은 분에겐 권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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