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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기자의 기사 사진 펌



한겨레21의 안수찬기자가 지난 연말 여수 향일암의 새해 해돋이를 미리 보러갔다. 안수찬기자는 여수까지 기차를 타고갔다. 그가 탑승한 열차는 10시50분 용산발 여수행 밤열차. 

여수까지 가면서 안수찬 기자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을 관찰한다. 곁눈질 하는 남자, 모른 체 하는 여자. 그러나 선잠에서 깨면 옆자리를 살피는 건 누구나 같다. 

자신의 아버지도 떠올린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구 앞산에서라도 일출을 보여주었던 아버지. 그래서 안수찬기자는 석양을 더 좋아했단다. 기차 안에서 안수찬기자는 여수의 일출이라면 아버지아 아들이 화해할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기차란 공간에 대한 사색을 펼친다.
 



내 생애 가장 컨디션 좋은 날을 꼽으라면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에 갔을 때이다. 여행 당일 몸이 무척 안좋았다. 전날 뭘 잘못 먹었는지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무거웠다.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약해둔 비행기표가 너무 아까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날 일본 도쿄 시내를 밤늦게 돌아다녔다. 시내까지만 지하철을 탔고 도쿄 중심가란 말만 듣고 그냥 무조건 거리를 걸었다. 8시간 가까이 걷고 밤에 후배의 친척 집에 도착해 맥주를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몸이 좋고 안좋고는 술을 마셔보면 안다. 술이 꿀맛이면 컨디션이 최고라는 증거다. 아침까지 몸 가누기도 힘들었던 환자가 그 몸으로 여섯시간 넘게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오히려 몸이 좋아진 것이다. 

그때 여행의 쾌감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본다는 그 쾌감은 내가 30넘게 살아오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것이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내가 태어나서 느껴본 최상의 자유였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 주변에 있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가끔 관광 온 한국사람의 말이 들리면 오히려 불편했다. 

여행의 자유로움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탈 것은 기차다. 산과 강으로 차단된 철로만의 공간으로 이동하면 부산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새로운 공간에 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사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은 공간에 온 느낌이다. 그때문에 기차를 통해 여행하면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치가 된다. 

공간의 불연속성으로 기차는 여행자의 익명성을 높인다. 익명성이 높아지면 온라인이니 오프라인이나 말이 많아진다. 기차는 이렇게 개인들에게 익명성을 높여 서로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게 만든다. 기차 안에서 기차 밖에서.
 



3년 전 결혼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다시 일본을 찾았다. 도쿄가 아닌 후쿠오카 지역이었다. 그때 일본인의 기차여행 습관을 보고 다소 놀랐다. 우리의 버스처럼 일본의 보통 기차는 자유석이었는데 두 명 정원의 한 좌석에 한 명 씩 앉는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먼저 차지한 사람과 자리를 나누지 않고 그냥 서서 갔다. 

일본의 열차는 공간이 너무 넓었다. 열차가 크다는 말이 아니다. 열차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 좌석을 다 차지하고도 서 있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기다리면 자리는 금방 생겼다. 아마 이렇게 넓은 공간 때문에 좌석제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넓어서 닫힌 공간이 되었다. 




협소하다고 공간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와 버스는 기차보다 협소하지만 더 닫혀있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가지만 버스엔 실려간다. 지정해준 공간 이외에 움직일 수 없는 버스 탑승자는 도착한 후 공간에 갇힌 몸을 쭈욱 편다. 몸이 갇혀있기 때문에 마음이 갑갑한 승객은 버스에서 서로에게 열릴 수 없다.

반면 기차는 닫힌 공간이지만 갇혀있는 공간은 아니다. 몸은 충분히 움직인다. 마음은 대화를 즐기고 상대를 배려할만큼 열리게 된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옆사람에게 실례를 해야하고 열차 안에서 뭔가를 먹기 위해선 옆사람과 조금은 나누어야 한다. 접촉의 기회는 당연히 많아진다. 한번 접촉하고 두번 접촉하면 상대는 열리게 된다.

기차와 기차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것은 항상 신기하다. 거기서 차장 밖을 보고있으면 커피 한모금 물고 싶어진다. 그 공간에 서 있으면 항상 설렌다. 그래서 기차 여행이 설레는가 보다. 


아버지 향일암 해돋이를 보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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