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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이 사망한 총기난사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대다수 한국인의 바램과 달리 총기난사범이 한국인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때 한국인들이 확실히 알게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미국은 범죄자의 얼굴을 아무런 제한없이 공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혐의의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조승희씨가 범죄 혐의자로 드러나자마자 그 얼굴을 즉각 지면과 화면에 올렸다.

미국은 자신의 집을 예고없이 방문하는 사람을 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인프라이버시를 중요시 하는 나라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이고 인권선진국에 속하는 나라이다. 그런 미국의 언론이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은 혐의자를 공개해서 명예를 훼손하는 보도태도는 한국인에게 적잖은 놀라움이었다. 

왜 한국에선 문제시되는 범인공개가 미국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는 걸까? 미국이 사실은 인권후진국이고 알고보면 한국이 인권에선 세계최일류라서 그런걸까? 이 차이를 두 나라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차에서 찾는 것은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볼 때 좀 낯 뜨거운 일이다. 이 차이는 두 나라의 삶의 방식의 차이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미국이 신용사회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국언론의 범죄혐의자 얼굴공개는 어느 정도 수긍할만한 점이 있다. 얼굴은 한 개인을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표지이다. 얼굴은 개인 신용의 첫번째 보증이 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화를 한다고 하는데 만약 상대의 눈을 제대로 처다보지 못하면 부정직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있다고 한다. 

자신의 첫번째 신용인 얼굴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는 사람을 부정직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미국에서 범죄혐의자에게 얼굴을 공개하라는 주장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범죄혐의자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만약 정말 죄를 지었다면 불신용에 대한 공동체의 비판적 시선을 신용의 표지인 얼굴이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또 가능하다. 

미국은 이런 혐의자 공개를 공정한 법체계로 받쳐주고 있다. 미국시민들이 혐의자에게 법의 판결 앞에 당당해지라 말하고 혐의자도 법을 믿고 나올 수 있는 것은 공정한 법체계에 대한 믿음 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한 법체계에 대한 믿음은 타인에게 불리한 판결이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마음자세로 혐의자의 죄를 판결하는 시민배심원제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신용과 공정한 법체계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나라다. 한국은 여전히 개인의 신용보다는 인맥과 친분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인사마저도 지역과 종교적 인맥에 따라 이루어진다. 법원은 아직도 신뢰도가 낮다. 판사는 미국과 달리 판결에서 시민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이렇게 친분과 인맥이 중요하고 법의 공정성이 떨어지는 국가에서 개인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혐의만으로도 개인은 친분과 인맥에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고 그렇게 손실이 발생한 친분과 인맥은 개인의 삶의 근거를 파괴해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의 소시민에게 법은 두려울 뿐이다. 이처럼 혐의자의 얼굴공개는 그 사회 상황에 따라 맥락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조승희 사건에서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나중에 가족의 정보공개로 이슈가 되었다. 미국에서 공개된 조승희씨의 가족들 정보를 한국언론에서 공개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선 네티즌과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왜 조승희씨 친누나 실명, 직장, 사진을 까발립니까? ;;;
조중동 연합뉴스 한겨레까지.
미국에서 보도가 되었으면 한국에서 공개해도 괜찮다 이건지?
오히려 네티즌들이 빨리 기사 내리라고 분노의 리플을 달아놓았더군요.
열심히 살아 온 그 누나가 무슨 죈가요?(기자들이 흥분해서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가보죠? ;;



이 게시물에 다른 네티즌이 마지막에 달은 댓글이 있는데 그 글이 한국과 미국의 개인정보 공개에서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미국은 범죄혐의자 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도 공개하는 걸 꺼리지 않고있다.


미국에선 범죄자 가족에 대한 사회의 처우(?)와 인식(??) 자체가 우리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제프리 다머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왜 살인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책도 내고, 인터뷰도 잘 하고 그랬거든요.
마치 연좌제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온 가족이 야반도주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요.
근데 신상공개가 그것과 큰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어쨌든 저 가족은 미국인인 동시에 한인 사회의 일원일텐데... 온 나라가 이렇게 미국한테 잘못했다고 난리인데 가족이 한인사회에서 따돌림이나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에요.


하지만 이 댓글을 단 네티즌의 말처럼 미국과 한인사회 양쪽에 속한 조승희씨의 가족으로선 참으로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후 들려온 소식은 그들이 미국인보다는 한국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책도 출판했던 미국 살인자의 아버지와 달리 조승희씨의 부모들은 그후 계속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될려면 몇가지가 해결되어야 한다. 먼저 친분과 인맥에 근거한 정서적 연좌제가 사라져야 하고 또 개인의 정당함을 가려낼 수 있는 공정한 판결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 갖추어진다면 범죄자의 얼굴공개에 불안해 할 것이 없다.

만약 지금 당장 범죄혐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면 이런 조승희씨 가족처럼 정서적 연좌제의 고통을 받는 사람이 생기고 혐의만으로 생존 근거를 위협받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적어도 공개할려면 이런 것에 대한 다짐과 약속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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