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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경찰이 가짜 애를 진짜 애라고 우기고, 그에 항의하는 엄마를 정신병원에 집어넣는다. 이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실화인데 그 이후에도 너무나 드라마틱한 일들이 이어진다. 실화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개 때문에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다는 비난을 엄청나게 들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화적 상상력이 돋보였던 실화는 '코드12'였다. 진짜 아들에 대한 실종수사를 요청한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크리스틴은 동료수감자(?)로부터 자신이 코드12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코드12는 경찰을 불편하게 만들어 정신병원에 감금된 사람들을 분류하는 명칭이다. 남편이 경찰인 여자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고발했다가 감금되었다. 고소한 사람이 재수없게 경찰이어서 코드12가 된 사람도 있었다. 크리스틴에게 코드12의 내막을 알려준 여자는 창녀였는데 자신을 때려 고발한 손님이 알고보니 경찰이었다. 

남편이 경찰이니 어쩔 수 없었고, 재수없게 고약한 경찰을 만나 그럴 수 있고, 사회적 약자인 창녀다보니 좀 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틴이 코드12가 되는 건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차별이 아니다. 사회의 모니터시스템이 아주 활발히 작동하는 공간에 크리스틴은 있었다. 언론이 지켜봤고, 전문가가 따라붙었고, 유명한 목사가 그를 도왔다. 그런데도 크리스틴이 코드12가 되었다면 이는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틴을 코드12로 만든 데 최고의 주역은 물론 경찰이다. 경찰은 엄마인 크리스틴에게 가짜 아들을 안길 정도로 파렴치하고 대담한 거짓말을 서슴지않았다. 그들은 조작이 드러나면 또 다른 거짓말을 들이댔다. 윌터가 살해되었다는 범인의 자백이 있었음에도 윌터와 닮은 사진 4장이 더 있다며 거짓을 연장시킬 궁리를 했다. 

그들이 거짓을 인정하는 것은 거짓이 드러났을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윌터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가짜 윌터의 생존보다 진짜 윌터의 죽음이 경찰 위신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나서다. 진실은 궁지에 몰렸을 때 선택하는 더 유리한 선택일 뿐이었다. 

전문가들도 경찰 못지않았다. 수 센티미터 줄어든 키를 보고 아이들이 충격을 받으면 그럴 수 있다며, 의학적으로 가능하다는 황당한 이론을 펼친다. 정신병원 의사는 크리스틴이 미치지 않은줄 알면서도 태연히 전기충격과 정신병원 수감을 인정하는 싸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언론도 아무 소용 없었다. 그들은 그저 보도하는 기계였다. 경찰이 연출하는 장면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발표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다. 이상한 낌새나 석연찮은 것들을 그들은 기계적으로 지나쳤다. 그 정도면 다행이었다. 논조를 교묘히 비틀어 경찰의 편을 들기까지했다. 크리스틴을 도왔던 구스타브목사는 윌터사건을 보도한 신문을 들고 이런 조작된 기사는 생각없는 사람만 믿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해서 크리스틴은 이 사회의 유력한 집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코드12'가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정신병원으로 빼돌려졌다. 그리고 크리스틴이 다시 정신병원에서 풀려났을 때 거리엔 베이브루스의 53호 홈런을 알리는 소식이 뉴스보이에 의해 전해지고 있었다. 코드12 지옥이 펼쳐지는 다른 쪽에선 인간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살고있었다.




이 추악한 1928년 LA의 모습은 참 낯설지가 않다. 그들의 추악한 짓거리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2008년 오늘 한국의 관료들은 거짓말을 서슴지않는다. 증거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들러대고 우기다 들통나면 그때서야 불가피했다는 식의 변명을 한다. 이런 모습이 더 이상 기사거리도 되지않을 정도다. 그들의 거짓말에 국민들은 이제 익숙해져버렸다.

전문가들은 진실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당연한 진실을 논란의 장으로 끌어들여 진실의 힘을 빼버린다. 전문가들이 진실을 찾는 게 아니라 무엇이 사실인지 국민들이 판단할 수 없게 쟁점을 흐리는 짓을 한다.

대한민국에서 언론은 체인질링의 경찰과 같다. 언론은 코드12를 낙인 찍고 집행자에게 그들의 감금을 지시한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포악하게 짖어댄다. 1928년 LA에서 부패의 주역이 경찰이라면 2008년 한국에서 부패의 주역은 바로 언론이다.

권력을 불편하게 했던 촛불은 경찰과 검찰의 소환을 받았다. 지난 한해 대한민국에선 세계 법역사에 획기적인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광고불매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이 되고, 세계적으로 사문화된 허위사실 유포로 체포되었다. 아이들 먹거리를 지키기위해 유모차시위를 한 엄마들에겐 아동학대라는 오명을 덮어씌었다. 

촛불이 끝난 후 한국의 언론과 전문가와 권력은 코드12를 분류하고 감금시켰다. 크리스틴은 몇 달 후 풀려났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코드12의 분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분류가 끝난 사람들은 감금되고 있다. 크리스틴은 정신병원에서 풀려나 베이브루스의 홈런소식을 들었지만 한국의 코드12는 재판 중에 또는 수배 중에, 구속 중에 박태환의 금메달과  김연아의 그랑프리 제패 소식을 들었다.  

정신병원에 남아있던 코드12들은 크리스틴에 의해 풀려났다. 한국에도 크리스틴과 같이 권력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싸인에 서명하지 않을 크리스틴들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1928년 LA처럼 코드12의 퇴원을 명할 신뢰있는 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2008년 한국이 1928년 미국LA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면 20명의 아이를 죽인 '노스컷'보다 이 더러운 시스템에 복무하며 표정없이 위의 지시를 실행하는 인간들에게 더 증오감을 느끼게 된다. 노스컷은 2년 뒤 죽었지만 이 무표정한 복무자들은 살아남았다. 그들은 시스템을 핑계로 우리의 크리스틴과 코드12에게 차가운 얼굴을 들이대며 계속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을 것이다. 

내 자신이 추악한 시스템에 복무하는 더러운 괴물이 되지않길 빌어본다. 이런 괴물이 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 되겠다고 혼자 다짐해본다.

Changeling, it`s for korean
 

* 제 졸작을 퍼주신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출처만 작게 살짝 넣어주시면 더 영광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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