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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애플 소송에서 삼성이 완패했습니다. 배심원단은 삼성이 애플에게 1조2천억을 배상하라고 평결했습니다. 이 평결은 판사에 의해 최종 확정되는데 들리는 말로는 배상액수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국내 여론은 미국 배심원이 자국 기업 애플에 유리한 평결을 내렸다고 보는 것 깉습니다. 자국 기업과 애국 기업의 분쟁에서 배심원이 애국심에 치우친 판단을내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나 평결 결과만으로 즉각적으로 배심원의 애국심을 거론하는 것도 우리의 편향적인 반응입니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가 평결 결과만으로 의심을 받을만큼 허술한 제도는 아닙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배심원들은 여러차례 검증 받아 실제 배심원 자리에 뽑히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최종 12명의 배심원 중 50%인 6명은 변호인이 뽑도록 되어있습니다.

2007년 한 재미교포가 블로그에 쓴 배심원 체험기 연재를 본인의 허락을 받고 요약해 포스팅한 적이있습니다. 저자는 무척이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배심원에 겨우 합격하게 되는데 이 글을 보면 미국의 사법부가 배심원제 운영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배심원제가 도입되는 마당에 혹시 배심원제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있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이 글을 소개합니다. 아울러 삼성과 애플의 재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원 제목 :  윤재영씨의 배심원 체험기(2007/01/08)

 

배심원 쪽지 3번째로 받다

배심원 후보자로 법원에 나오라는 쪽지가 날라온 게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시민권을 받고 삼 년째였는데, 첫아이가 3살이고 둘째를 모유 먹일 때라 법정에 전화해서 면제를 받았다. 쪽지엔 언어에 지장이 있거나, 아이를 돌봐야 한다거나, 시간제 직업을 가진 사람은 면제를 신청 해도 된다고 적혀있다. 배심원은 시민의 권리이지 의무이다. 적절한 사유없이 불참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법정에 갔지만 배심원으로 뽑히진 못했다. 월요일부터 매일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 대기실에서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한 채 대기만 했는데, 목요일 오후가 되자 일당을 주며 이젠 안와도 된다고 해서 허탈했던 기억이있다. 동양인이라 배심원에 뽑히지 못한거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상처를 교직에 있는 사람은 잘 안 뽑힌다는 주변의 말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이번에 온 쪽지는 2번째 쪽지 이후 5년만이다. 지난번처럼 또 시간낭비만 할 것 같아 세미나 때문에 바빠 갈 수 없다고 했더니, 연기해준다고 한다. 남편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데 나만 벌써 세 번째다. 왜 이렇게 자주 뽑히냐고 항의하니 컴퓨터가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좋다 말았다.(? ^^;;) 널찍한 가방에 음료수, 간식거리, 신문, 잡지, 등 하루를 소일할 거리를 잔뜩 넣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 9시 시작이지만 8시30분까지 오라고 하였다. 서툰 운전에 초행길이라 좀 일찍 나서 법원에 제 시간에 도착했다. 5년전과 달리 법원은 보안이 아주 강화되었다. 누구든 하나뿐인 좁은 문 앞에서 가방검사, 몸수색, 신분검사를 받고 뱃지를 가슴에 달아야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배심원 대기자만 수백명

좁은 문을 통과하고 대기실에 들어서니 수백 명이 보였다. 둘러보니 대부분 흑인과 백인이고 토속 동양인은 나 혼자밖에 없는 것같다.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장내를 정리한 후 5명의 판사가 차례로 나와 자신의 소개를 하고 배심원 대기자를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대기자들은 그들 앞에서 배심원이 될 수 있는 자격, 미국의 시민이며, 나이가 18세 이상이고,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모두 일어나 오른 손 들고 선서를 했다.

하루 일당을 말해주더니 주 예산이 어렵다는 궁한 소리를 하며 돈을 안받아도 괜찮은 사람은 서명을 하라고 한다. 건강과 시간에 구애받는 사람을 판사가 인터뷰하여 80명을 배심원 면제해주고 남은 사람은 300명 정도다. 300명에게 일당 10달러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지불할 금액을 계산하니 만오천달러나 된다. 사인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거 돈 주면서 눈치 보게 할 건 뭔가. 난 그냥 받기로 했다. 알라바마 법에 의하면 배심원은 하루 10달러와 개스(기름) 값으로 마일당 5센트를 받게되어있다. 고용주는 직원이 배심원의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봉급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배심원을 대기하나 배심원에 뽑히나 받는 돈은 똑같다.

검사들이 직접 나와 배심원 한 개인의 의견과 권리를 행사하는 중요성을 말해주었다. 내 말 한마디에 재판의 결과 한사람의 인생이 왔다 갔다 할 것이란다. 나의 현명한 판단을 믿는다고 했다. 갑자기 솔로몬의 자리에 앉은 정의의 사자가 된것같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이런 순간에선 정의의 불꽃이 튈것같다.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중요성을 느끼는 순간 인간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앨러배마 법원

예비 배심원에 선출되다

오전 11시가 되면서 첫 예비 배심원 36명이 뽑혀갔다. 재판의 심각성에 따라 예비 배심원의 수도 변하는데, 살인 사건은 50명이 넘을 수도 있다. 5년전 불려간 재판은 도둑사건으로 24명의 예비 배심원을 뽑았다. 이 중에서 원고측 6명 피고측 6명을 다시 뽑아 12명의 배심원을 확정한다. 다시 다른 서기가 들어와 48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의 일처럼 듣는데 귀가 의심스럽게도 나의 이름이 불려졌다.

다시 몸수색과 가방검사를 받고 들어갈 순서가 정해진 다음 재판정으로 들어섰다. 우리를 향해 일제히 예리한 시선이 날아들었다. 판사 앞에 놓여있는 테이블의 왼쪽에는 여자 하나와 남자 넷이 있었고 오른쪽엔 여자 하나 남자 둘이 있었다. 피고와 원고 그리고 변호사들이다. 테이블 위에는 서류가 널려져 있었고 모두 무거운 정장을 한 그들은 무언가 열심히 적고있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돈된 자리다. 옷깃 스치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자리 잡아 앉는 소리만 들렸다. 나의 고유자리와 고유번호가 정해졌고 우리는 진열대 위에 올려졌다.

변호사들은 배심원의 앉은 자리의 차트를 가지고 있었다. 배심원이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배심원 중엔 의사, 대학교수, 기업체 부사장과 고시생이 있었다. 그리고 간호사, 학생, 가정주부, 국가보조금으로 생활하는 무직자와 목발을 짚고 나온 장애자도 있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 였고, 흑인과 백인, 여자와 남자는 각각 반반 정도였다.

배심원과 증인, 배심원 서로간, 배심원과 원고나 피고측 사이에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의 질문이 있은 후, 원고와 피고의 변호사가 배심원을 고르기 위한 질문을 시작했다. 각각 세 개의 질문이었다. 판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 사건은 의사의 실수로 죽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손해배상 건이었다. 먼저 원고측 변호사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피고와 원고가 배심원을 선택하다

먼저 재판의 경험이있거나 배심원의 경험이 있는 사람 손 들라고 했다. 관련이 없어 손 들지 않았다. 두 번째, 종교적 개인적인 이유로 사람의 죽음은 운명이기 때문에 이유를 따지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 손 들라고 했다. 나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왜 죽었는지는 정확히 따져 보상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운명론적인 가치관이 객관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손 들지 않았다. 세 번째 질문으로 요사이 의료비가 오르는 것은 사람들이 의사를 너무 자주 고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라고 했다. 손 들지 않았다.

피고측 변호사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첫째, 집안에 오랫동안 병을 앓고있는 환자가 있거나 그런 환자를 돌봐준 경험이 있는 사람 손들라고 했다. 나와 상관 없는 질문이었다. 둘째, 만약에 중병으로 진단 받았을 경우 다른 의사한테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 손들라고 했다. 손을 들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의 진단이 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원고 피고 각 측에서 모두 나를 눈도장 찍었다.

세 번째, 의사가 약을 처방해줄 때 처방대로 약을 먹지 않는 사람 손들라고 했다. 손을 들었다. 변호사가 묻길래 내 병은 내가 더 잘알고 의사도 약에 대해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약물복용에는 환자도 책임이 있다는 말인데 생각해보니 피고측에서 원하는 대답인 것 같다.

 

드디어 배심원 합격

75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재판정에 오니 아직 10분이 남았는데도 다들 와 있었다. 시간이 되니 서기가 10여명의 이름을 부르고 판사실로 오라고 한다. 갖다 온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약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점심시간 전에 나눠준 설문지에서 약물 이름을 아는 사람 체크하라고 했는데 불려간 사람들은 몇 가지를 안다고 체크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지금도 복용하고 있는지를 물어봤다고 한다.  

“지금부터 배심원 결정을 하겠습니다. 원고부터 한 명씩 원하지 않는 번호를 불러주십시오” 판사의 말이 떨어졌다. 원고측에서 한 번 피고측에서 한 번 이렇게 번갈아가며 불려졌다. 암호로 된 번호라 누군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윽고 판사가 배심원 12명과 대기 배심원 3명을 선정한 후 피고와 원고 측에 선정에 만족 동의하는가 확인하였다. 그리고 서기가 배심원의 이름을 불렀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합격이었다.

백인남자 5, 백인여자 3, 흑인남자 3, 흑인여자 3, 그리고 동양여자 나 하나 모두 열 다섯명이다. 그 중에 대기는 셋이고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배심원석에 앉자 배심원이 된 실감이 났다. 사람의 심리가 재밌다. 배심원석에 개인 지정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처음 앉은 자리가 제 자리가 되어 재판 내내 같은 자리에 앉은 것 같다. 판사의 입회 하에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배심원의 의무를 다할 것을 선서하였다. 그리고 판사가 주의 사항을 말해주었다. 

첫째, 재판에 관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을 것. 즉 증인의 말을 다 들어보기 전에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 모든 결정은 증거에 의하여 내려야 하며, 개인적 판단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면 안된다.

셋째,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컴퓨터나 또는 책자에서 찾아보아서는 안된다.

넷째,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사건에 관하여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재판 중에 메모를 해도 좋지만 남의 것을 보거나 비교해서는 안된다.

여섯째, 재판이 시작되기 전 배심원석에 나올 때는 배심원실에서 모여 나오라는 연락을 받으면 함깨 나와야 한다.

일곱째, 피고나 원고측과 접촉하지 말 것.

여덟째, 법정안 음식이나 전화사용을 금하며 전화기를 꺼놓을 것.

아홉째, 모든 질문이나 건의사항은 배심원 서기를 통하여 할 것.

열 번째, 배심원 반장을 뽑아, 일을 진행하도록 할 것.

열두명의 배심원을 뽑는 데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배심원실에서 배심원반장을 뽑아야 했다. 소기업체 사장이라고 하는 백인남자가 되었다. 말 빨 센 두 백인 여자들이 그를 추천하였다. 어디를 가나 백인이 주도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싫다. 흑인이 하기를 바랬다. 유일한 동양인인 나는 또 왜 안되는가?

 

피고와 원고

재판은 위에서도 밝혔듯 의료사고 배상건이다. 원고측의 주장은 의사가 처방약물을 남용하고 혼합사용의 경고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환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팸이고 40대 중반에 대학교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었다. 이혼 후 부모님 집에사 같이 살고 있었고 법정엔 팸의 아버지 대신 여동생 샌디가 나왔다. 반듯하게 앉은 자세 옷차림새 그리고 잘 가꾸어진 몸매 등으로 보아 팸의 가정은 미국 남부 중상층의 전형적 백인 가정이었다.

피고측은 두명의 의사였다. 사십대 중반의 여의사 '패턴'은 죽은 팸의 정신과 의사였고 칠십대 남자의사는 내과의사였다. 각가 다른 변호사와 보조자가 있었다. 서류를 검토하며 냉냉하게 처다보는 모습의 패턴은 당당한 여자였다. 판사가 관중석의 남편을 소개했는데 얼마나 비대한지 남편의 세배는 되보였다. 70대의 내과의사의 이름은 '이근'이었다. 관중석에 소개된 '이근' 의사의 부인은 곱게 단장한 옷차림새와 생김새로 누가보아도 정감있는 귀부인의 모습이었다' 

 

2년 후 법원에 다녀오다

사건이 끝난 후 배심했던 사건을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마침내 비오는 2월 그 꼬리표를 떼었다. 법원에 사건 번호를 내밀니까 신분 확인도 하지 않고 파일 5개를 준다. 원래 7개인데 2개는 판사가 가져갔다고 한다. 사건이 끝난지 일년이 넘었는데 무엇때문이었을지 궁금하다.

빈 책상에 앉아 정보자료를 훌터 보며 깜짝 놀랐다. 법정에서 오고간 모든 증거물과 증인석에서 변호사와의 대화가 마치 껍데기를 벗겨놓은 듯 모두 공개되어 있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과거사, 사인, 그리고 증인들의 개인적 정보 그리고 심문내용까지 다 있었다. 죽은 여자에 관한 자료 속에서는 그 여자의 한 인생이 다 요약되어 있었고 너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시체해부결과 머릿속 두뇌가 몇그램 되는지 까지 다 있었다. 이렇게 까 발려 세상에 공개해 놓을 만큼 아버지와 식구들이 억울했을까 그리고 사랑했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가지 자료를 복사하고, 다음에 또 찾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락 지었다. 복사는 한 장에 25센트여서 필요한 만큼만 하였다. 나오면서 법원의 사진을 찍었다. 요새 테러문제로 다들 긴장하고 있어 사진을 찍고나서 도망치듯 차를 타고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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