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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교과과정 중 반드시 넣도록 강요당하는 세 가지 단원이 있다. 첫째는 링컨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오두막집에서 주경야독하여 입신양명해 노예해방의 기수로 자랐다는 얘기이다. 둘째는 조지워싱턴의 이야기이다. 사과나무를 베어 고민하다가 결국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용기있고 정직한 소년의 모습으로 워싱턴은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단원은 1차적으로 아이들에게 링컨과 워싱턴을 우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의도는 링컨과 워싱턴의 이미지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아름다운 꿈의 나라 미국의 잔상이다. 유관순의 모습이 삭제된 교과서, 사회주의 세력이 가담했다 하여 6.10만세 사건이 기록되지 않는 교과서가 이렇게 철저히 남의 나라 이야기에 관대한 것이다. 문화적 식민교육,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87년 6월 3일 서울형사지법 113호 법정에서 보도지침사건으로 구속된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 3명의 언론인들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이 말은 구속된 3인 중 가장 먼저 체포된 김태홍씨의 진술 중 한 부분이다. 

생각해보니 위인의 이야기 중 가장 먼저, 많이 듣는 게 미국의 위인이다. 그래서 미국의 위인은 우리의 머리 속에 어릴 때부터 각인되어 미국에 대한 환상의 잔상을 만든다. 훌륭한 위인이라면 나라를 가리지 않고 존경하는게 맞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이 우리의 항쟁의 역사와 민족의 위인에 우선한다면 문제가 된다. 그렇게 되면 식민교육이 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나라가 외면하는 항쟁의 역사는 미국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현대사는 학살의 역사이다. 동학혁명과 의병봉기의 좌절, 3.1운동, 6.10만세... 이러한 역사는 바로 죽음이 뒤따른 역사였다. 또 48년 제주에서는 전체 주민 23만 중 7만여 명의 양민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의 남자는 몰살당했었다. 제주도, 삼다도라 돌과 여자와 바람이 많다는 곳.... 되씹어 생각할 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또 거창사건에서는 700명이 죽었다. 그리고 80년 광주에서는 또 수천 명이 죽어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8.15 광복 이후의 죽음이 미국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나라, 그 나라는 이 대한민국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미국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언론은 이 부분도 철저히 방기했다. 관심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런 미국의 실체를 모른다.


워싱턴과 링컨이 교과서 앞에 나오는 것에 더 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땅의 원혼들은 그대로 놔둔채 미국찬가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바로 그 학살과 관련된 나라이라는 것이다.


김태홍씨는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것처럼 얘기한다. 너무 비약일까? 역대 주미대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전 주한미대사 워커가 우리 국민을 가리켜 쥐새끼라 했고 또 릴리 대사는 미국 내 유력지인 '볼티모어 선'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리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라고 말했다. 그들은 차라리 너무나 솔직하다. 쥐새끼..., 모욕적인 말이다.(재판정을 둘러보며)


우리는 80년대 주미대사에게 '쥐새끼'란 소리를 듣고 '완전한 식민지'란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한마디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식민지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 있는가? 김태홍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건들은 또 있다.


언론자유를 막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이 미국이다. 언젠가 릴래 대사가 야당 지도자를 만나 폭력은 절대 안되며 언론자유는 88년 이후에 하자고 했다고 한다. '차'치고 '포'치고, 병 주고 약주고, 릴리는 주한 미국 '총독'이다. 언론이 이러한 미국을 옹호하는 현실, 바로 그것이 내 조국의 현실이다.



일개 대사가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약속까지 하고 있다. 여기까지 읽고나니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였다는 걸 부정하기가 힘들다. 주미대사가 주한미국 총독이라는 말에 고개를 떨구게 된다. 


80년대 당시 시국사건법정은 재판을하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시국재판에선 으례 구호나 투쟁가가 외쳐졌다. 보도지침 재판에서 재야운동권과 구속된 3인도 법정투쟁의 각오로 나섰다. 그들이 열변을 토한 최후진술은 독재정권의 대리인인 판사나 검찰을 훈계하고 국민을 향한 연설이었다. 이 재판에서 변호인과 피고인들은 공판 때마다 역사에 남을 명문들을 쏟아낸다.

김태홍씨의 최후진술은 지금 들어도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다. 그의 진술엔 당시 재야와 운동권이 도달한 인식과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80년대 말 대학시절 당시 한겨레나 운동권의 대자보에서 듣던 말들 대부분이 그의 말에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가 80년대 후반 대학가 등에서 떠돌던 말들의 원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87년 6월 3일 서울형사지법 113호 재판정에서 울려퍼진 김태홍씨의 최후진술 필독을 권한다. 서슬퍼런 독재의 폭력을 뚫고, 검사와 판사 그리고 200여명의 민주시민으로 이루어진 방청객 앞에서 울려퍼졌을 그의 단호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한번 느껴보기 바란다. 30대 아래 세대에겐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창을 열게 해줄 소중한 말이 될 수 있다.

* 책 속의 내용을 타이핑해서 올립니다.


1987년 6월3일 113호 법정 보도지침재판 김태홍 최후진술

통일을 지향하는 새언론을 창출하자.

오늘 나는 최후로 진술하는 심정으로 얘기하겠다. 전술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이번 사건에서 내가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김주언기자를 보호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김태홍씨가 제일 먼저 구속된 후 김주언씨와 신태범씨가 잡혔다. 김태홍씨가 심한 고문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엊그제 동아일보 기자들의 용기있는 행동(5월25일 동아일보 기자 133명은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주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했다.)을 치하하면서 우리가 제도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현직 언론인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두고자 한다. 제도언론이란 현직 기자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론 그 자체를 말하며 언론사 경영진, 편집국 등의 고위 간부 등 실무적 결정권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젊은 기자들은 불꽃같은 뜨거운 가슴을 안고 괴롭게, 보이지 않게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본다.

<동아투위>의 정모 선배가 쓴 월간 '세대'지의 제도언론에 대한 글을 접했을 때 "해직 언론인이 왜 현직 언론인에 대해 따뜻한 격려의 글 한 귀절도 써 줄 수 없는지 반문하면서 격려의 말을 넣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이번 사건만 해도 김주언기자처럼 현직 언론인의 감투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직 언론인들이 더욱 분투해 주기를 간구한다.

먼저 진술에 들어가기 전에 대통령에 대한 호칭에 관해 얘기를 좀 하겠다. 나는 외신부 기자를 10년 여 했다. AP, UPI 등은 기사 초두에 대통령 닉슨이라고 쓰고 그 이후는 닉슨이라고만 쓴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이기 때문인지 로이터 통신만 미스터를 붙인다. 내가 전두환씨라 하는 것은 예의를 중시하는 동양이기 때문에, 또 많은 사람이 모인 공공장소이기 때문이다.

'용어' 사용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 사회는 어휘 사용의 자유가 없다. 그 예로 '조선'이란 말을 보자. 우리는 조선사람이라고 하면 얼굴이 하얗게 되고 설사병 걸린 사람처럼 어쩔 줄 모른다. 조선무우, 조선고추, 조선간장 등 사물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쓰면서 반공법을 의식한 때문인지 사람에 대해서만 쓸 수가 없다. '계급'이란 말은 사회과학자들조차 '계층'이라고 쓰고 있다. 이는 엄청난 의미의 차이를 낳는다. '인민'이란 말은 영어로 피플(people)이다. 링컨이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 햇을 때 이를 가장 적절하게 옮긴 말이 인민이다.

한 가지 사실이나 사물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혁명' '제국주의' '식민주의' 등의 단어들이 기피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구속되어 있어 오히려 자유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러한 용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진술하겠다.

인간이 언론자유를 말살당한 현실은 곧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의 권리를 박탈당한 것을 의미한다. 비민주적인 사회, 암흑의 현실은 '언론만의 자유'를 애당초 허용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언론은 극의 상황으로 치달아왔다. 이 사건을 보도하자 2만2천부 이상의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부정의 부정'이랄까,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어론에 대한 불신이 보도지침이 폭로된 말 특집호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 진술에서 언론자유가 통제된 현실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은폐시키고 유지시켜 주는가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낮게는 개인의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민족분단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침묵과 굴종 없이 가능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힘에 의한 통치

우리나라 헌법 제 1조에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보다 더 큰 거짓말은 없다. of the military, by the military, for the military라야 현실과 가깝다. 그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공포의 팽배'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5.16 이전에도 이승만정권이 국회의원을 지하실에 가두는 등,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졌었지만 5.16 이후와는 비교조차할 수 없다 하겠따. 군대식 관행, 사고방식..... 등 군대식으로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힘'에 대한 공포가 팽배하기 시작했다.

우리 언협에도 여러 기관의 요원들이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이런 충고를 한 일이 있다. "김형, 군 관계 기사는 신경을 좀 써서 쓰십시오."라고. 아시다시피 언협 사무국장은 실무자로서 모든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되어 있고, 책이나 문건이 나올 때마다 5일 내지 10일의 구류를 사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일단 경찰서에 들어가면 조사문을 작성하게 되는데, 당연히 나의 진술서는 남영동, 안기부, 보안사 등으로 보고될 것이다. 세 군데 모두 소름끼치는 고문능력이 갖추어진 곳이다. 그런데 그 중 한 기관이 다른 기관 즉 '군'을 조심하라고 한 것이다.

이 법정에서는 지금 200여 명의 방청객들이 앉아 있는데 방청객들이 다소 소란하면 으례 "왜 시끄럽게 구느냐?"는 검사의 호통이 뒤따른다. 그러면 금방 장내가 조용해진다. 이 법정에 언론인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온통 '공포'에 젖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의 현실에 앞장서서 저항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최후의 공명성을 지녀야할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웃으면서 대학문을 들어선 학생들이 울면서 그 문을 나간다. 수백 명은 졸업조차 하지 못하고 이른바 조기졸업을 한다. 이런 현상을 현정권은 "대학 내에 좌경용공세력이 있다"고 치부해버린다. 골방에서 모의하면 잡혀가고 일말의 용공혐의가 있었다는 명목으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자 마자 수배를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간다. 또 다른 학생이 나선다. 재선출된 그도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생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또 젊은 목숨을 숱하게 앗아갔다. 고문치사 의문사 등이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것은 파쇼체제의 말기적 증상이다.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한다.(냉소적 어투, 장내 웃음)

내가 여기서 들은 두 학생의 죽음, 박종철군과 김용권군의 죽음이 어떻게 사건화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행운'이라고 할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런 사건은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 말을 하는 것이다. 85년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과 관련되어 수배를 받아오던 우종원군은 온몸에 몸이 든 채로 철도연변 콩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추락사'라는 조그마한 기사가 나고 이 사건은 얼버무려졌다. 또 86년 김성수군이 부산 해안 군사통제지역 안에서 발에 돌이 묶인 채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4.19 때는 김주열군 한명의 죽음이 정권을 넘어뜨렸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불살라 죽고 떨어져 죽고 고문당해 죽는데도 정권은 끄떡하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목숨이 숨져야 이 정권이 넘어가겠는가. 언론이, 언론이 이런 사실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히지 않는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긴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학원뿐만이 아니다. 정권의 폭력성은 모기관에서 무작정 두들겨맞은 일이 있었다. 이모 부장은 얼굴에 멍이 들어 회사에 나오지 못했다. 가장 자유로와야 할 언론조차 '폭력의 사슬'에 묶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언론이 열차에서 떨어져 죽은 학생 얘기를 감히 할 수 있겠는가? 84년에 강제징집 당한 6명의 학생이 왜 군대에서 죽어갔는지 파헤쳐 낼 수 있겠는가? 당연히 국민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채 끔찍한 이 사건들은 묻혀 버리고 만다.

한국은 과연 독립국인가

전 주한미대사 워커가 우리 국민을 가리켜 쥐새끼라 했고 또 릴리 대사는 미국 내 유력지인 '볼티모어 선'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리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라고 말했다. 그들은 차라리 너무나 솔직하다. 쥐새끼..., 모욕적인 말이다.(재판정을 둘러보며) 이 법정은 너무나 깨끗하다.. 내가 기거하는 방은 0.75평짜리 독방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볂소가 없다. 방구석에 똥통이 있고 그 옆에 오줌통이 있다. 또 그 옆에 오물통이 있고, 창피스럽게도 식수통이 있다. 똥통은 1주일에 1번 치운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쥐새끼들이라는 말을 듣고도 성인군자답게 참고 있는 것이다. 말이 조금 빗나갔는데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식민모국인 미국에 대한 얘기이다. 바로 그 쥐새끼가 고양이를 향해 발통을 세우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나는 이 이야기의 시작을 1940년대 후반에 벌어졌던 슬픈 역사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수많은 생쥐가 죽어간 이야기, 거기에서부터 미국과 우리의 관계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학살의 역사이다. 동학혁명과 의병봉기의 좌절, 3.1운동, 6.10만세... 이러한 역사는 바로 죽음이 뒤따른 역사였다. 또 48년 제주에서는 전체 주민 23만 중 7만여 명의 양민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의 남자는 몰살당했었다. 제주도, 삼다도라 돌과 여자와 바람이 많다는 곳.... 되씹어 생각할 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또 거창사건에서는 700명이 죽었다. 그리고 80년 광주에서는 또 수천 명이 죽어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8.15 광복 이후의 죽음이 미국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나라, 그 나라는 이 대한민국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미국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언론은 이 부분도 철저히 방기했다. 관심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런 미국의 실체를 모른다.

우리 사회는 군의 사회이고 모든 영역에서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 1945년 8월15일 미국이 정복자로 진주한 이래 이승만은 미국의 일방적인 지지와 부일세력의 협력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전적인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

제3세계에서 반미구호가 외쳐지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85년 미문화원 농성을 계기로 이 금기사항이 깨어졌다. 그때 학생들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우리의 국군통수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 수십억불에 달하는 경제잉여를 앗아가는 나라, 우리의 내정에 일일이 간섭하는 나라... 이런 것을 제국주의라고 한다. 이런 나라가 우리의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가.

국민학교 교과과정 중 반드시 넣도록 강요당하는  세 가지 단원이 있다. 첫째는 링컨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오두막집에서 주경야독하여 입신양명해 노예해방의 기수로 자랐다는 얘기이다. 둘째는 조지워싱턴의 이야기이다. 사과나무를 베어 고민하다가 결국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용기있고 정직한 소년의 모습으로 워싱턴은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다. 나머지 하나도 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당원은 1차적으로 아이들에게 링컨과 워싱턴을 우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의도는 링컨과 워싱턴의 이미지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아름다운 꿈의 나라 미국의 잔상이다. 유관순의 모습이 삭제된 교과서, 사회주의 세력이 가담했다 하여 6.10만세 사건이 기록되지 않는 교과서가 이렇게 철저히 남의 나라 이야기에 관대한 것이다. 문화적 식민교육,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언론자유를 막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이 미국이다. 언젠가 릴래 대사가 야당 지도자를 만나 폭력은 절대 안되며 언론자유는 88년 이후에 하자고 했다고 한다. '차'치고 '포'치고, 병 주고 약주고, 릴리는 주한 미국 '총독'이다. 언론이 이러한 미국을 옹호하는 현실, 바로 그것이 내 조국의 현실이다.

조작된 남북의 긴장

다음엔 분단상황과 언론자유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겠다. 사실 통일문제만큼 언론자유가 철저히 봉쇄된 분야가 없다. 심지어 북한에 관계된 기사자료는 오직 내외통신만이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보가 모든 것을 규제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는 북한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론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실정을 전혀 모른다.

1967년 동아일보에서 북태평양 원양어선 침몰사건을 간지에서 특집으로 다뤘다. 북태평양에 명태잡이를 나갔던 우리 원양어선단이 태풍을 만나 몇 척이 침몰을 당하고 산같은 파도가 휘몰아치는 밤바다를 피해 미국의 알류샨 열도의 항구로 대피했으나 그 항구가 군항이라는 이유로 다시 파도치는 밤바다로 쫓겨났으며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신창이가 되어 일본의 항구에 기항하려 했으나 방역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다시 바다로 쫓겨났다.

그때 조그만 박스기사가 옆에 실렸다. 북한은 1만톤의 모선을 소형선박이 호위하면서 북태평양에서 연어와 송어를 잡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어선은 미소일캐나다 4대국 협약에 의해 연어 송어는 못잡고 명태 등만 잡는다.

지금 미국교포사회에서는 김형욱 회고록 과 분단을 뛰어넘어 두가지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분단을 뛰어넘어에 의하면 국민학교 교육부분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북한의 국민학생들은 30명 40명 단위로 반편성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전 수업이 끝난 뒤 2시간 낮잠을 자고 오후에 1시간 수업을 받은 후 책가방을 사물함에 두고 빈손으로 하교한다. 또 부부가 맞벌이를 할 경우에 월수입이 50-80원인데 그 반 정도면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한다. 74년도엔 세금이 없어졌다고 외신이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검사의 이의제기가 있었다.

검사 : 피고인의 진술이 재판과정에서 빗나가고 있다.

재판장 : 계속 진행하시오.
(다시 진술 계속)

재판장님, 나는 진술 서두에서 최후로 말하는 심정으로 한다고 이야기 했다. 언론자유가 박탈당한 상황에서 지금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내가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발언은 언론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가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남북의 긴장관계가 연 5조원의 국방비를 지출하게 한다. 그런데 1918년-32년 20년 동안 세계는 평화를 누렸고, 2차대전이 끝난 45년 이후 지금까지 유례없는 평화가 인류의 공포를 씻어주고 있다. 현재의 남북긴장은 조작된 것이 아니겠는가?

검사 : 가장 중요한 남북한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

재판장 : 지금까지 진술한 내용은 피고인 자신의 이익을 위애 진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청객 박수, 다시 진술 계속)

내 인생을 생각할 때 이 진술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를 준다. 81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해 84년까지 40대 초 인생의 황금기 4년 간을 번역으로  생계를 이어온 나는 84년 12월19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회원이 되면서 다시 태어났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사랑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얻게 되었다. 언론자유를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말을 계속할 것이다.

저 산에는 호랑이가 없는데도 가지 못하게 한다. 인도네시아 발리하이  섬에 악마가 있다는 전설이 있는데 미국 해병대가 그 전설을 퍼뜨렸다고 한다. 제도언론은 없는 사실을 있는 것으로 만든다.

미국의 극우재단인 해리티지 재단이 소련, 미국, 한국,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 미국언론들은 항상 (실제와 상관없이) 소려이 미국보다, 북한이 남한보다 군사적으로 우세하다고 보도한다. 또 어느날 갑자기 한국신문은 특파원발 기사로 북한 10개 사단이 휴전선에 전방배치되었다고 발표하고 이것이 활자화되어 보도되면 국민들은 이를 맹신하게 된다. 또 미국 행정부가 국회에 국방예산 증액을 요청할 때 의회에서 이를 반대한 의원은 낙선하고 만다. 모두 언론자유가 없는 데서 오는 결과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통일이다. 정권유지를 위한 안보를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수조원의 국방비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기를 우리는 원한다. 한강에는 유람선이 떠 있꼬 서대문구치소에는 똥통이 떠 있다. 5조원의 돈이 문화비, 건설비, 공공투자비로 쓰였을 때 얼마나 좋은 나라가 되겠는가.

일전에 검사가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천달러라고 했다. 물론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 8백만 농민과 2천4백만 노동자를 그렇다지 않다.

총 GNP가 8백억달러라고 해도미국, 일본이 2백억 달러를 가져간다. 차관 원리상환금, 직접투자 이윤 등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머지 중 1백억 달러는 정권유지비로 나가고, 1백5십억 달러로 4천만이 나누어 먹는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구조적으로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2백억 달러는 서어비스업 소득이니 실질 GNP에서 제외된다.

또 지역간 격차는 얼마나 극심한다. 거기에 의도적으로 조장된 지역감정이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박정희씨와 전두환씨가 반쪽 남은 민족을 분열시켰다. 도시 아이에 비해 시골 아이들은 키가 작고 체격이 작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라졌다. 서울의 쓰레기 청소부, 똥 치우는 사람, 시장 생선가게 아줌마 등 하층민의 90%가 전라도 사람이다. 나도 고향이 광주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새언론을 창출하자.

나는 이제 우리가 새 언론을 창출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이 정권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그때까지는 게릴라식으로 숨어서라도 해야 한다.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언론자유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어느 한 선배가 나에게 39년을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고 한 말이 생각 난다. 그 후로도 7년을 더 산 나로서는....

끝으로 내 처를 존경한다. 가정 생계를 꾸려나가야 되는 처지가 안됐다. 처음 한국일보 기자를 한다가 이제는 아침마다 남대문 시장에 가서 택시를 안타고 1000원을 아끼려고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운적도 많고 시련도 많고... 처에게 감사한다.

두 아들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가 돼도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로 살거나 다른 무엇을 하고 살거나 인간적 권리나 자유가 없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내 아들이 대학을 나오고 미국유학을 가는 것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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