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후보가 오거돈 후보에게 양보하고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로서 부산시장선거는 오거돈과 새누리당 서병수의 양자대결이 되었다.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오거돈 후보는 서병수 후보에게 박빙의 차이로 앞서는 걸로 나온다. 한치를 알 수 없는 접전양상이 되면서 부산시장선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김영춘과 오거돈의 단일화는 시기적으로 보면 예상치 못한 사건이다. 12일 김영춘 후보의 제안으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단일화는 4일만인 16일 김영춘 후보의 양보로 마무리를 지었다. 4일 동안 이루어진 단일화 과정은 그야말로 속도전이었다. 12일 오전 김영춘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위한 끝장 토론'을 제안하자 오거돈 후보가 김영춘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즉각 방문해 화답했고 다음날 두 후보는 해운대 벡..
오거돈 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2004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였다. 2003년 안상영 부산시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행정부시장이었던 오거돈이 시장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오거돈은 권한대행 7개월 동안 태풍 매미와 화물연대파업을 잘 대처하고 APEC 부산유치라는 쾌거도 이루었다. 행정력과 정치력을 검증받은 오거돈은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결국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시장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부산시장 출마 정도로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기억하진 않는다. 이름표만 걸었던 오거돈이라는 세글자는 2005년 국정감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국정감사장에서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이 당시 해수부 장관이었던 오거돈의 답변을 두고 "장관이 답변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부분은 ..
이해성이 부산시장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이해성이 누구지?'였다. 동구에서 구청장과 국회의원으로 세번이나 출마하긴 했지만 부산에서 이해성의 인지도는 낮았다. 심지어 민주당 시장 후보 경선 흥행을 위한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낮은 기대치와 달리 이해성의 선거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지방선거 무공천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1인시위를 하고 무소속 오거돈 후보에 대해선 불가론을 내세웠으며 같은 당 김영춘 후보와는 중구의 존폐여부를 두고 정책 논쟁을 벌이면서 여야 후보 중 가장 활발한 이슈파이팅을 보여주었다. 페이스메이커 정도로 보기엔 준비된 컨텐츠가 탄탄했다. 인지도 낮은 도전자의 열정이라기엔 견고했다. 한마디로 이해성 후보에겐 선거에 대한 자신감이 느..
김영춘은 상도동 출신 정치인이다. 민추협 의장 시절 비서로 시작해 야당 총재 비서를 거쳐 청와대 정무비서까지 김영삼을 보좌했다. 94년 2년 간의 청와대 생활을 끝내고 김영춘은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첫번째 선거에는 실패하고 2000년 두번째는 매주 선거구 8개 동의 재활용폐지를 상차시키는 등 밑바닥 표를 훓는 활동 끝에 광진구갑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김영춘은 상도동 막내로 통했다. 김영삼의 둘째 아들 김현철에 이은 셋째아들로 불릴 정도로 김영삼의 신망이 두터워 참모들이 김영삼에게 껄끄러운 말을 해야할 때면 김영춘을 통하기도 했다. 김영삼의 최측근 김덕룡과는 해수욕장도 같이 갈 정도로 친분을 과시했다. 신한국당 시절 김영춘은 제 1당의 최대 정치 계파에서 가장 촉망받는 정치신인이었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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