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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말한다.  
1. 88만원 세대가 88만원 세대를 말한다



15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15-29세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5년 48.8%에서 2006년 47.1%, 2007년 46% 입니다. 반면 30세 이상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5년 66.6%, 2007년 67.2%입니다. 20대는 해마다 낮아지고 30대는 높아졌습니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20대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는 것은 학력간 임금격차가 벌어지면서 학업 또는 취업준비기간을 거쳐 취업하고자 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실상 자발적 취업재수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김성규 부경대 학생부처장이 한마디 했습니다.


“서울 쪽 주요 대학이라면 자발적 재수라는 개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기업 취직 기회가 한두 차례에 불과하고, 그나마 취직이 안돼 대학원에 간 것을 가지고 ‘취업을 미룬다’고 하면 곤란하다” (국제신문 2월 16일자 참고)

 

저도 김성규 부처장과 같은 생각입니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의 경우 분명한 메리트나 보장이 있기에 대학원이나 유학을 갑니다. 그러나 그외 대학들은 구직을 하지 못해 떠밀려 가다시피 하는 게 유학이나 대학원입니다. 물론 대학원 나오고 유학 갔다오면 조금이라도 취직이 나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막연한 기대입니다.

지난번 <88만원 세대가 88만원 세대를 말한다.>기사 말미에 20대의 허심탄회한 얘기를 기다린다고 하니 많은 메일이 왔습니다. 공감한다는 메일도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보내온 분도 많이 계셨습니다.


“과의 특성이 있어서 88만원세대라고 불리우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소개한 소윤성님은 “혹시나 다른 20대의 취업준비생 또는 대학생들이 커서님의 기사를 읽고 자신의 정치 사회에의 무관심에 스스로 면죄부를 줄까 걱정이 된다”는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소윤성님과 몇 차례에 걸쳐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인터뷰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인터뷰라기 보단 논쟁이었습니다. 20대와 40대가 만나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만남이었습니다. 소윤성님은 현재 지방의 한의대 본과 4학년에 재학중이고 나이는 25입니다.


20대의 현실인식


가정형편이 조금 어려운 편에 속하는 친구의 경우 상당히 진보적인 경향이 심하고 중산층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친구는 보수적인 경향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커서(이하 커)
 : 소윤성님은 사회 정치에 관심이 아주 많아 보입니다. 주변의 20대들 사회정치 인식 수준은 어떻습니까.

소윤성(이하 소) : 극과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학우는 소신을 굳게 가지는 반면, 그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 없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학우들과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끔 있을 때는 제가 여러 매체에서 접한 것들을 설명하는 분위기 위주로 됩니다. 사회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는 간혹 논쟁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땐 각자 다른 시선에서 오는 차이를 느끼는 경우가 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정형편이 조금 어려운 편에 속하는 친구의 경우 상당히 진보적인 경향이 심하고 중산층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친구는 보수적인 경향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중산충 이상의 보수적인 친구들과 부유하지 못한 편에 속하는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이 갈립니까.


: 커서님 세대가 20대일 때는 아마 정치적 상황이 주된 관심사였을 겁니다. 주변 환경이 정치적인 자극을 줬기 때문에, 또래 집단끼리 정치성향 공유가 빈부의 차이에 별 영향 받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재의 20대는 정치적 자극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자극이 되는 것은 부모님 정도입니다. 그러니 정치적인 성향이 딱히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진보성향의 학우에게 노무현정부에 대한 평가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론에서 실패한 정부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국민 인식도 안 좋습니다. 하지만 그 학우는 다르게 평가하더군요. "정책추진의 방향은 맞았다. 단지 그 과정에 있어서 오류가 있었다. 사회의 분위기가 너무 보수적이다. 언론의 극단적인 보수성이 국민을 호도한 면이 있다."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수 경향의 친구들이 이정도 통찰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들은 언론과 부모님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서 정치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고, 이것이 이명박당선인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빈부의 차이가 정치성향의 차이로 바뀌는 것은, 빈부의 격차가 교육의 격차로 나누어지는 것과 연관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성향이 모이면 그러한 경향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간단하게 대선에 어느 후보를 지지할 것이냐 라는 대화만 나눠도 서로 영향을 받는 것이니까요.
(소윤성님은 빈부격차에 따른 정치적 관점의 차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굉장히 적은 케이스에서 나온 것이기에,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걸 밝혔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너무나 힘과 시간을 쏟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투자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 메일을 보니 소윤성님은 현실의 사회정치를 인식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오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회정치 인식수준도 높아보입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세상을 읽고 알게 된 과정을 얘기해주십시오.


: 먼저 '단순사실의 파악'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큰 이슈는 그 노출 빈도가 높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단순 사실들-정보의 취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일어난 사건이 과거에 어떠한 상황이었고, 어떠한 과정으로 그렇게 되었나 하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일례로 최근 경제에서 가장 큰 이슈인 주가폭락과 세계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접하고, 그 원인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큰 축을 담당하는 것을 알고 그 연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어떤 것인지 그 개념에 대해서도 이번에 알게 되었지요. 나중에는 '정보의 비판적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매체들을 접하면서 각각의 매체에 대한 경향성을 파악하고 그러한 많은 경험을 통해 각각의 기사에 나타나는 논조를 파악했습니다. 아무리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려고 해도 작성한 기자의 사상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반영된 사상이 '절대선'일 수 없기에 비판적인 안목으로 기사 내용을 봐야 하고, 이는 수많은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낀 경험은 동아일보의 사설란을 봤을 때의 충격입니다. 반 노무현 정서가 너무 심하게 박혀있더군요. A의 사실을 근거로 B의 내용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의 비합리성을 읽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는 데에 인터넷의 많은 정보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20대가 사회정치적 인식 수준이 낮은 것에 대해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며 현재의 20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같은 20대로서 20대의 어떤 점이 답답하신지요. 이런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현실적으로 취업이 대학생에게 가장 큰 주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을 너무 짧게 보고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대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은 소위 '스펙 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격증을 따고, 인턴쉽을 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편입시험을 보고, 영어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취업준비에 있어서 자신의 경쟁력을 '눈에 보이도록' 올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 말은 뒤집으면, '눈에 보이는 것'들에 너무나 힘과 시간을 쏟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투자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회에 대한 통찰력, 사람을 대하는 능력,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설득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찰까지, 모두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 학내 데모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시위에 이끌려 가본 적은 있으십니까. 학교 내 운동권 학생들은 어떻게 생활합니까.


: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총학생회 주도의 운동권 시위는 아니었고 한의학계 내부의 문제로 인한 데모였습니다(우울하네요.). 1~2년마다 한번씩 했으니, 벌써 3~4번 참여했네요. 등록금 투쟁 정도 외에 학내 데모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운동권 학생들의 존재는 잘 모르겠습니다.


20대와 미디어


저도 부모님께 한겨레를 권했다가 퇴짜 맞았습니다.
완성도 있는 내용을 보인다는 것이 20대에게는 아직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20대는 신문을 어떻게 봅니까. 대부분 인터넷인가요. 한겨레나 경향 등 진보신문을 보는 비율은 어떻습니까.


: 저의 경우 포탈사이트에서 기사를 읽습니다. '빠른 업데이트'와 함께 ‘다양한 매체’의 기사를 동시에 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여러 시선을 동시에 읽을 수 있고,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 할 수 있습니다. 20대의 경우 아직 학생으로, 독립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한겨레나 경향보다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보수 쪽 신문을 더 많이 보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부모님께 한겨레를 권했다가 퇴짜 맞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겨레가 그나마 가장 중도적인 매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수매체가 너무 많아서 상대적으로 굉장히 진보처럼 보이고 있지요.


: 사회과학서적은 어떻습니까. 최근 대학가에서 유행하거나 권하는 책이 있습니까.


: 사회과학서적을 보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정치사회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저 스스로는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을 아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따로 책을 더 보거나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최근 대학가 도서트렌드는 '실용서적'이라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우들이 아니면 거의 접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20대들을 몇 번 만나봤는데 의외로 블로그를 잘 모르더군요. 생각보다 20대가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낮아 보입니다. 인터넷도 가벼운 검색이나 기사보기 위주이고 게시판이나 토론방, 블로깅 등의 활동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 블로그는 '무작위 대상에 대한 노출'입니다. '싸이월드'는 블로그에 비해 그 노출 정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지인들에게만 노출한다던가, 일부는 노출하고 일부는 감추거나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모든 이에게의 노출이기 때문에 -이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미니홈피와 차별점이 없으므로 블로그를 할 필요가 없죠.- 그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낍니다. 상당한 완성도의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완성도 있는 내용을 보인다는 것이 20대에게는 아직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완전실명제로 운영되는 미니홈피와는 다르게, 익명으로 댓글을 달 수 있는 블로그는 아무래도 악성댓글의 위험도 많구요.


사교육


대학의 서열화가 구성원의 서열까지 정하는 상황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 대학서열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저희 때는 고1 까진 수업 끝나고 집에 갔고 고2부터 야간자율학습을 8시정도까지 했고 고 3때 10시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학원 등 사교육은 없었습니다. 전두환 세대는 사교육 안받았죠. 소윤성님은 어땠습니까.


: 03학번이고 분당에 거주합니다. 시간과 지역에 따라 사교육의 경향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 지역과 학번을 밝힙니다. 중학생 때는 중요과목을 중심으로 단과학원을 다녔습니다. 수학 영어 이정도로 했습니다. 과목당 월 8만원. 고등학생 때는 야간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로 진행됐습니다. 가능하면 참석하는 것을 권장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종합학원에 3년 동안 계속 다녔습니다. 학원비는 그 당시에 30만원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학교 교육은 이미 사교육을 한번 받은 학생을 대상으로 복습하는 느낌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교육이 어느 정도 필수라고 느꼈고, 그 효과도 상당히 봤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사교육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 자율학습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학원에 안다닌다면 학교 수업 후엔 자유시간인가요. 저희 때는 자율학습이 강제였거든요.


: 단어의 뜻 그대로 '자율'로 '학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역별, 학교별, 담임교사별로 다릅니다. 같은 나이의 동기들을 보면 강제로 자율학습을 했다는 친구도 많고 전혀 없었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 대학서열화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도한 사교육도 그 원인이 대학서열화인데. 그리고 이제 갖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를 학벌로 차별하는 것은 구성원의 성취의욕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간의 차별화는 충분한 경쟁을 거친 30-40대 이후에라야 옳다고 보는데.


: 서열화의 폐지는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서열화는 대학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단지 대학의 '네임벨류'만으로 그 서열이 결정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그 방법을 '특화'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대학에서, 특히 경쟁력이 약한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분야의 특화를 통해 대학의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소위 '스카이'라고 불리는 명문대학들이 경쟁자를 국내 대학으로 보고 있으면 안됩니다. 세계의 유수한 명문 대학들이 그 경쟁자들입니다. '서울대'라고 하면 -'연세대, 고려대'하면- 떠오르는 분야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존스홉킨스 의대처럼. 외국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대학이 '고려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지 고려대가 영문명을 'Korea University'로 쓰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게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현재 국내 대학들의 세계경쟁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서열화가 없어진다면 현재의 많은 교육문제들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최대의난제인 교육문제가 해결된다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 대학의 서열화가 문제화 되는 것이 비정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부분이 대학교에 입학하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이 대학서열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안나와도 먹고 살기에 힘들지 않고, 사회 시선이 차갑지 않다면 굳이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상,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자에 비해 너무나 많은 대학 정원 덕분에 대학에 가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니, 마치 대학교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의 연장처럼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학한 대학의 위치가 그 사람의 위치를 대변하게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높은 서열'의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감과 위축을 느끼게 되고 대학의 서열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비판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 대한 대한민국 전체의 인식의 문제입니다. 대학의 서열화가 구성원의 서열까지 정하는 상황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 대학서열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체제와는 다르게, 신자유주의체제에서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통한 '발전'이 그 사회의 진행에 있어 기본적인 요소이고, '경쟁'은 반드시 '1등부터 꼴찌까지' 순서를 메기게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고등학교처럼 평준화하는 것은, 대학교를 고등학교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자의 시선일뿐입니다.


책 [88만원 세대]


대학 측에서 가끔 외국 유명 대학의 학비와 국내 대학의 학비를 비교하면서 싸다고 강조할 때가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유명 대학에서 장학금혜택을 많이 주는 데 비해 국내 대학은...

: [88만원 세대]를 읽어보셨습니까. 책을 보면 프랑스의 경우 68혁명 당시 대학서열화폐지를 요구한 게 고등학생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린 학생들의 인문학적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사교육에 찌들은 한국학생의 경우 인문학적 문제를 골똘히 생각할 여유를 사회가 주지 않습니다. 이것만 봐도 한국의 20대가 사회정치적 인식 수준이 낮은 것은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국가에서 월세나 학비 지원금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야합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약한 것이 20대를 경제적 정치적으로 독립시키지 못하는 거 아닐까요.


: 책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인 책임이 더 크다고 개인이 손놓고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니지요? 각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의 패러다임 속에서, 결국은 생존경쟁이고 얼마나 잘 사는지는 각자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구조적으로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개개인이라도 각자 자신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일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자금 부담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자금부담으로 취업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면, 그만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학자금의 문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계급 고착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꼭 해결되어야 합니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어야 꿈을 꾸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떠한 직업을 가져도 열심히만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존경쟁' 이 주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 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발전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라는 논쟁과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분배를 위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장이 먼저라면, 과연 어느 정도로 성장을 할 때까지 분배를 늦춰야 합니까. 욕심은 무한한데 어느 선에서 과연 만족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장만 강조하면 무한성장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88만원 세대]는 결국 20대가 그들끼리의 취업경쟁을 해야할 게 아니라 연대해서 다른 세대에게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요구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20대의 연대는 가능할까요.


: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론입니다. 문득 얼마전 TV에서 봤던 '방관자 효과'가 떠올랐습니다. 집단이 적으면 적을수록 단체행동에 '나서기'는 쉽습니다. 집단이 커질수록 어떠한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한 단체행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20대 전체는 너무 큰 집단으로 느껴지네요.


: 20대 스스로도 자신들이 이전 세대보다 취업 등에서 불리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얘기하는 편입니까. 앞선 세대나 사회에 어떤 불만을 말합니까. 학비나 취업에서 국가적 지원이 모자란 것에 대해 문제 삼는 사람들은 있습니까. 혹시 20대 스스로 연대하지 못한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있습니까.


: 한의학과에 재학중이라 저와 제 대학 동기들은 취업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지 않는 편입니다. 여기에 대해 제 친형님의 의견을 빌려 얘기해보면 굉장히 심하게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명확히 드러나는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규모 축소'와 졸업생 주변의 '백수'들의 증가로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앞선 세대에 대한 불만은 잘 모르겠습니다. 세대에 대한 불만보다는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학비지원은 국가 지원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의 사학재단에 대한 관리 부족이 더 큰 문제로 보입니다. 대학 측에서 가끔 외국 유명 대학의 학비와 국내 대학의 학비를 비교하면서 싸다고 강조할 때가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유명 대학에서 장학금혜택을 많이 주는 데 비해 국내 대학은 장학금 혜택도 적을 뿐더러, 학교 운영비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비에 비해 대학의 발전에 투자되는 비용도 적고 학생혜택도 적습니다. 재단 관리에 있어서 정부에서 손을 놓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대학 경쟁력도 약하고 학생들은 졸업하면 채무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불만이 많습니다.

20대 내부의 연대는 '88만원세대'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원래 없던 개념'이라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군요.


20대가 40대에게 묻다.


보수적 주장에 솔깃하다가도 좀 더 반론을 찾아보거든요. 아마 제가 80년대 '저항'을 보지 못했다면 세월이 주는 보수의 무게에 별 의문을 품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40대는 '중간세대'입니다. 일반적인 40대는 젊은층의 '진보'성향에서 장년, 노년층의 '보수'성향으로 바뀌는 과정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연배에 위치한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해, 그리고 본인의 성향변화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 사실 나이가 들면 보수적 사고방식이 편합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거나 제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세대나 변화 탓을 하는 게 머리가 덜 복잡하죠. 세월이 가면서 자신 안에서 솟아오르는 편한(보수적) 생각들에 자꾸 의문을 가지지 않으면 사람은 보수적으로 바뀌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삶에 여유가 없어지면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진보적 고민보다 보수적 체념이 더 잘 먹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짜인 프레임이 아무래도 보수보단 진보가 고민이 좀 더 어려운 게 사실이거든요. 보수적 선동은 60년간 보수언론과 정권에 의해 즉각 먹혀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각인된 정치유전자는 잘 안바뀌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87년 바로 그해 6.29항쟁을 겪었습니다. 당시 시위에 몇 번 참여했는데 독재타도를 외치는 학생들과 그들에게 박수치는 넥타이 부대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때 받은 인상이 평생을 가는 것 같습니다. 보수적 주장에 솔깃하다가도 좀 더 반론을 찾아보거든요. 아마 제가 80년대 '저항'을 보지 못했다면 세월이 주는 보수의 무게에 별 의문을 품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웹진 오프모임 가면 모인 사람들 나이가 의외로 많습니다. 어린 사람들이 많겠지 하고 갔다가 고개만 숙이고 오기도 합니다. 80년대 전두환 때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계속 세월 따라 가는 것 같아요. 새로운 세대는 저항의 세례를 받지 않았고 386은 자꾸 늙어가고 그러니 정치 참여자들 나이만 자꾸 올라가는거죠. 한마디로 단절이죠. 


: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중간적인 위치에서 40대가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실무적인 면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실무의 책임도 어느 정도 지는, 책임자와 실무자의 중간의 위치에 있는 게 40대인데, 중간자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중간자의 가장 큰 임무는 커뮤니케이션이죠. 위의 책임을 아래에 이해시키고 아래의 실무를 위에 설명해야죠. 그런데 한국은 커뮤니케이션이 빈약한 사회입니다. 이러니 중간자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중간자는 잘 치입니다. 아랫사람은 위를 보고 수군거리고 윗사람은 아래를 닥달하라고 합니다. 이런 조직에서 아래는 달래고 위엔 "하겠다"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중간자들이죠. 40대 과로사가 많은 것도 그러고 보면 이런 결과겠죠. 그러니까 중간자 40대는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유지할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겠죠. 그리고 그건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어느 정도까지의 범위를 의미하는지요?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 두 세대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인지(그건 아닌것같네요), 아니면 가장 넓게 두 세대의 의견 전달을 넘어서서 두 세대간의 의견을 조율해내는 것인지(이것일 거라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후자라면, 아래세대에 윗세대의 의견을 개진하고 설득하는 작업은 가능하겠지만, 반대의 상황은 사실 어려워 보입니다. 가부장제의 권위의식이 상당히 강한 현 사회상황에서는, 윗세대들에 아랫세대의 의견, 사상을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로 느껴집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것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실현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소윤성님 예상대로 후자가 맞습니다. 그리고 어렵죠. 제가 지난해 야근관련 기획기사를 하면서 해외교포들의 얘기를 들었는데 거긴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조직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면 위험하죠.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어 돌이킬 수 없을 때 다시 하는 작업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늦더라도 체크하고 커뮤니케이션 하고 넘어가더군요. 반면 우리는 까라면 까다가 나중에 잘못된 걸로 드러나면 무식하게 다시 시작합니다. 이때 다시 시작하는 비용은 아래 사람들이 야근으로 때우는 게 예사죠. 소윤성님 말씀대로 이걸 중간자가 알더라도 위에 설명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 밑에선 뻔한 것도 위에 못 전달한다고 중간자에게 불만이 쌓이죠.

어느 사회든 중간매개체가 없으면 극단적 대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 대결과 파국을 피하기 위해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중간자(매개자)가 튼튼해야 하고 제 역할을 해야겠죠. 회사에서 중간간부가 아랫사람 달래고 윗사람에게 무마시키는 것도 어느 정도의 중간자 역할이 되죠. 그게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땜질식 처방이라서 문제지. 어쨌든 한국에서 중간자의 역할은 소윤성님 말씀대로 힘듭니다.


인터뷰를 보시는 분께 소윤성님이 남긴 말

20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님에도 이렇게 제 의견이 '20대의 생각'으로 노출되니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공 특성상 제가 취업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서, 어느정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본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이면서 20대를 객관적으로 본다고 할까요? 대부분이 개인적인 의견이고 저와 제 주변 사람들만의 경우로 구성된 경험에서 나왔기에 많이 부족하고 어쩌면 극단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유념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텍스트로 의견을 밝히기에 '의사전달에 있어서 문자의 한계'가 얼마나 심할지 걱정입니다. 제 생각이 그대로 전달 됐으면 좋겠네요.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메일 주십시오.(soyoonsung@hanmail.net)



* 20대, 소위 88만원 세대의 공개논쟁을 제안합니다. 기자나 인터뷰 해주신 분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 정치·경제적으로 약자인 20대 자신의 얘기를 해주실 분 아래 메일로 연락 주십시오. 책임과 현장감 넘치는 논쟁을 위해 이 논쟁은 실명 등의 공개를 원칙으로 합니다. po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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