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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실비단안개 http://blog.daum.net/mylovemay/

 

 

유배문학관이라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 것도 있어요?'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배문학관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게 얼마 되지않았으니까요.  

 

 

사진 제공 : 실비단안개 http://blog.daum.net/mylovemay/

 

 

유배문학관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2010년 11월 1일입니다. 5년 여의 준비 끝에 남해읍 남변리 3만 5000여㎡ 터에 건립되었습니다.

 

 

 

 

유배문학관엔 유배자들의 작품과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내외부엔 유배와 관련된 전시물이나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유배문학관엔 남해를 소개하는 전시물도 볼 수 있는데 유배자들이 눈여겨 봤을 남해만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소개할 필요는 있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유배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배문학관일까요? 유배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합니다. 유배가 개인에겐 불행이었지만 유배로 인류문화는 보다 풍성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남해일까요? 남해가 유배문학관을 가질 자격이 있는 걸까요? 

 

 

 

 

 

류의양은 남해 유배 중 남해를 돌아다니며 남해견문록을 적었습니다.

 

 

 

 

남해 유배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김만중일 겁니다. 김만중은 남해에서 한글 소설의 걸작 사씨남정기를 썼습니다.

 

 

 

 

김만중의 유명한 비평집 서포만필도 남해에서 쓰였습니다.

 

 

 

 

남해를 일컬을 때 '일점선도'라고 하는데 이 말도 유배문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선 초기 남해에 유배온 김구가 쓴 화전별곡의 '일점선도'라는 문구가 그 뒤로 남해를 일컫는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남해에 유배문학관이 들어선 가장 큰 이유가 이게 아닌가 싶습니다.

 

 

 

 

풍부한 유배문학을 탄생시킨 남해는 유배문학관을 가질 자격이 충분합니다.

 

 

 

 

남해의 화려한 풍광도 유배문학에 기여했을 겁니다. 다도해와 금산의 풍광을 보고 시 한 수가 안 떠오를 수 없었겠죠.

 

 

 

 

옛사람이 느낀 걸 지금 사람도 당연히 느끼겠죠. 그래선지 남해 유배문학관엔 방명록문학이 꽃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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