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2011년 일본 쓰나미 때 가족의 죽음 앞에 보여준 일본인들의 태도는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통곡을 하거나 시신을 부여잡고 우는 게 우리가 봐온 가족의 죽음을 대하는 모습인데 일본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방송에서 가족의 죽음을 전하는 그들의 모습엔 눈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의 이런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태도는 경외심마저 들게 했죠.

 

일본인의 이런 태도는 100여년 전에도 세계인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때의 재앙은 관동대지진이었습니다. 당시엔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일본인을 지인으로 둔 외국인들이 가족 앞에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일본인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라는 책에 보면 2011년 우리가 본 일본인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제 일을 처리해준 은행원의 이마에 붉은 상처가 있었어요. 은행 건물이 심하게 파손된 것 같기에 제가 그 은행원에게, "지진이 났을 때 은행 밖에 있으셨어야 했을 텐데요. 괜찮으셨어요?"하고 묻자 그 사람이 힘없이 웃으며 일본인답게 공손한 말씨로 "은행 안에 있다가 돌아가신 분은 없습니다" 하더군요. 그러고는 자기 상철ㄹ 가리키며 "집에 불이 나서 안사람과 세 아이를 구하려다 다쳤습니다" 하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제가 "식구들 모두 무사히 빠져나오셨길 바래요" 하자, 그가 조용히 "그러질 못했습니다. 안사람과 아이들 모두 불길에 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더군요. 189p

 

 

저자는 이런 사실을 서양인들을 도저히 믿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는지 이와같은 에피소드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B씨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얘기는 한 적이 있었죠? 집이며 물건이며 모두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됐어요. 그리고 얼마 후 B씨가 한 일본인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B씨에게 정중히 안부를 물었대요. 그러자 B씨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일일이 열거했는데 개중에 대부분은 다시 구할 수 없느 것들이었죠. 그러고는 B씨가 그 일본인에게 "별일 없으셨어요" 괜찮으셨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했더니, 그 사람이 조용히 한다는 말이 "저는 아들 셋을 잃었습니다" 하더래요. B씨는 앞으로 어떤 일본인에게도 뭘 잃었네 하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겠다는군요. 191p

 

 

키스 여사는 1920년에서 40년 사이 동양의 모습을 그린 걸로 유명한 여류화가입니다. 그는 특히 한국에 애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당시 한국에서도 두 번이나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본 한국인은 일본인들과 정반대로 눈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서양인인 키스 여사에겐 의아한 장면이었고요.

 

 

여자 대여섯 명이 합창하듯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소리를 냈죠. 이내 무당도 곡을 하며 흐느껴 울더니, 역시나 곡을 하며 우는 다른 여자의 어깨에 기댔어요. 곡을 하던 여자 중 하나는 아기를 업고 있었는데, 그 아기까지 덩달아 울었답니다. 정말 슬픈 일이 있나 보다 싶어 안내자에게 물었더니 죽은지 4년이나 된 남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래요! 이 의식은 망자가 더 좋은 곳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의 영혼에 행복만을 빌어주기 위한 굿이래요. 52p

 

 

언뜻 보면 눈 앞의 죽음 앞에도 침착한 일본인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 절제하는 일본인의 태도가 혹시 옥쇄나 가미가제 같은 극단적 전쟁 형태를 만들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죽음을 두렵지 않게 만들지만 또한 인간의 죽음을 가치없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통곡하는 한국인들이 품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나 죽음 앞에서의 통곡은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귀중히 여기게 되고요. 이런 점에서 한 우주가 사라지는 죽음의 현상 앞에서 일본인의 침착한 태도는 그리 권장할만한 덕목은 아닌 게 아닐까요?

 

21세기 들어 일본이 활력을 잃어간다는 소식이 많이 들립니다. 경제는 점점 쪼그라들고 정치는 우익들이 판치고 있다죠. 일본 우익들은 헌법을 뜯어고쳐야 일본이 살아난다고 하죠. 그러나 제 생각엔 일본은 먼저 울어야 할 거 같습니다. 일본이 활력을 잃는 건 눈물의 에너지가 없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내용 하나 더 소개합니다. 키스 여사는 한국에 온돌에 대해 놀라워 했습니다. 왜 일본이 이 좋은 걸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의아해 햇을 정도로. 아래 내용 읽어보시죠.

 

 

마을 사람들이 아침밥을 짓는 동시에 온돌방을 데우거든요. 그 영리하다는 일본인들이 방을 덥히는 이런 현명한 방법을 왜 받아들이질 못했는지, 참 안타까워요! 41P

 

저는 녹초가 돼서 말할 기력도 없이 그대로 따뜻한 방바닥에 쓰러졌어요. 그런데 불과 삼십 분도 안돼 벌떡 일어나서는 "이제 괜찮아졌어요" 하고 말했죠.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에 뼛속까지 따뜻해지더라고요. 세상에 따뜻한 바닥만큼 편안한 게 또 있을까요? 로마인들은 정말 현명했나 봅니다. 64p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