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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제목에 혹해 집어든 책이 있다.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읽으면 연애를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집어들었는데 기대와 달리 연애의 수법에 관한 건 전혀 없는 인문학 책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얄팍했지만 끝은 진지했다. 여태까지 읽은 책 중에서 이 책만큼 몰입해서 읽은 책도 없었던 것 같다.

 

책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펼치자마자 <사랑의 기술>이 떠올랐다. 저자 이인은 책 서두에서 "철학과 문학, 사회학과 경제학, 여성학과 뇌과학,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진화심리학과 인류학으로 사랑을 바라봤다"면서 이 책으로 "사랑을 제대로 공부하는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랑이 한순간에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랑의 기술>과 닿아있는 부분이다.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사랑의 기술>처럼 인문학과 과학을 동원하지만 달콤한 사랑 이야기의 맛을 유지한다. 두 책을 서로 비교한다면 <사랑의 기술>이 사랑을 통해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인문학이라면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인문학으로 토닥거려주는 연애학 개론이라 할 수 있다. 이인의 책은 연애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실망시키지 않는 책이다.

 

 

 

 

책에는 다방면에서 본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사랑은 "우리 삶에 생겨나는 숱한 사건들 가운데 으뜸"이고, 사랑은 '행복하리란 보장 없이 먼저 불행에 빠지는 일"이고, , 사랑은 "나를 끊임없이 비우며 상대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절절한 마음으로 땀 흘려야 하는 노동"이고 사랑은 우리 모두를 엄한 근본주의자로 만드는 이 시대 최고의 종교다.

 

 

 

 

책에는 수많은 날을 고민해도 알 수 없던 사랑의 이유도 나온다.

 

사랑은 "나를 중심으로만 살던 인간에게 어느날 또 다른 나가 나타나"기 때문에 어렵고, "관계를 맺을 자유가 생겼지만 그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감정노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렵고,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으을 남들에게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사랑은 뇌의 감정을 다루는 변연계와 이성을 다루는 신피질이 어긋나게 움직이기 때문에 어렵다.

 

 

 

 

책에는 또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사랑의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들도 나온다.

 

시식코너에 내놓은 음식처럼 작게, 그러나 내 마음이 어떤지는 알 수 있도록 조심스레 마음을 꺼내 보입니다. 곧바로 후회가 찾아옵니다. 왜 이렇게밖에 고백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나의 형편없는 변호는 끝이 났습니다. 나는 최종선고를 기다리는 피고가 되어 당신의 판결을 기다립니다.... 그와 나는 연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날아든 불티 정도로 여기거나 짐짓 모른 체 딴전을 부리고 외면한다면, 화마는 나를 집어삼켜 버리고 내 마음은 홀라당 타버립니다.

 

 

 

 

기다려도 당신은 오지 않네요.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힐 때는 세상이 꽉 닫히는 것 같습니다. 5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5분이 5년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노인에서 허수아비가 되었다가 한순간에 이 거리에 불시착한 외국인 비행사가 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길거리 상점에서 들리는노래, 그 모든 게 ‘무의미’해집니다.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사랑을 해야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과학적인 이유 하나는 이렇다.

 

인간의 몸은 애착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 자체가 누군가와 익숙해지면 이미 그 사람은 나와 한몸처럼 되어버리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리를 전적으로 조절하지 못한다. 각자의 생리는 다른 사람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는 구조다. 두 사람은 함께 모일 때 비로서 안정되고 균형 잡힌 유기체로 탄생한다. 사랑하면 더 건강해지고 헤어지면 아파지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나의 ‘애씀’과 그 사람 또한 나에게로 넘어오려는 ‘애탐’이 마주치면서 오랜 시간 차곡차곡 신의가 생겨날 때, ‘나와 너’가 ‘우리’로 바뀌며 참사랑이라는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대학 때 읽었던 <사랑의 기술>은 사랑의 감정을 떨쳐내게 만들었다면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고 싶게 만든다. 옛날에 읽은 책이 사랑에서 떨어져 멀찍이 보라고 말한다면 이번에 읽은 책은 사랑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선 이 책이 더 따뜻하고 솔직하고 실용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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