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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전까지 노무현은 내게 그냥 정치인 중의 한명이었다. 그랬던 그가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던 2002년이었다.

처음 기세좋게 70%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몇번의 위기로 하락하기 시작해 선거 한달을 남겨둔 11월 경엔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당시 노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며 선거전에 참여했다. 누군가 부산지역의 신문에 노대통령을 응원하는 광고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 게시물에 전국에서 나를 포함한 5명의 지지자들이 화답했다. 며칠 뒤 이 아이디어는 신문사 생활광고에 실현되었다.




위에서 세번째가 나다. 이런 광고로 표 몇개라도 더 얻으려 할 정도로 당시 우리의 맘은 간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게 당시 광고를 내던 사람들이 부산지역의 여론의 눈치를 많이 봤다는 것이다. 문구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제안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지지자들의 염원이 통했는지 노무현대통령은 정몽준과의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역전드라마를 보여었고 우린 짜릿함에 떨었다. 




5녀 간의 임기를 마치고 노대통령은 고향 봉하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2007년 겨울 봉하마을에 사저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보수언론들은 이 사저를 두고 아방궁이니 하며 노대통령의 고향귀환을 폄하했다. 분통이 터졌다. 벼르다가 얼마뒤 봉하마을로 달려갔다. 보수언론이 과장한 봉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그때 찍은 노대통령사저 앞에 놓여있던 방명록이다. 처음엔 연예인들의 이름이 장난인줄 알았다. 나중에 방송을 보고 이름의 주인공이 연예인들이라는 걸 알았다.




2008년 2월25일 5년 간의 임기를 마친 노무현대통령은 퇴임하여 고향 봉하로 돌왔다.




이날도 봉하에 있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벌어진 퇴임식이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퇴임환영객의 손에 떡이 들려진 것이 보였다. 남들 다 받는 거 안받을 수 없었다.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사저 앞을 가리켰다. 사저구경을 하러온 사람들에게 이사떡을 나눠줬던 것이다. 떡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사저 앞으로 뛰어갔다. 수십명의 방문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앞에서 떡을 나눠주는 사람의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떡 충분합니다.줄 서계시면 다 받습니다." 두개를 받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노대통려 퇴임 후 한장의 사진이 인기를 끌었다. 바로 노간지로 불린 이 사진이다. 사진을 보니어딘지 알 수 있었다. 봉하 주차장 앞에 있는 쉼터였다. 사진을 보는 순간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진을 따라해보자. 저기가 노간지 따라하는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간지 따라해봤다

그래서 이 사진을 찍었다. 재밌다는 반응이었지만 장소가 틀렸다는 지적도 많았다. 어쩔 수 없었다. 쉼터의 아주머니가 의자 배치를 바꿔버리는 바람에 노간지의 모습을 재현할 수 없었다.
 




2008년 10월 고재열기자가 한달간의 휴가를 받아서 부산에 내려왔다. 그를 안내해 봉하로 갔다. 마산에 갔다가 오는 길에 봉하로 갔는데 좀 늦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노대통령의 일장연설이 끝나고 방문객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평일엔 사람이 많지않아 노대통령이 방문객 옆에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도착해서 사진 찍는 곳 근처에서 쭈삣거리고 있는데 보좌관이 시간 다되었다며 우리를 줄지어 있는 사람들 쪽으로 안내했다. 몇분뒤 좌커(서)우고(재열)로 노대통령과 한 컷을 찍었다.




고재열기자는 이날 재밌는 사진을 하나 건졌다. 요양원의 노인들이 노대통령을 위해 중간에 자리를 만들어두었는데 노대통령이 어른들 중간에 있는 게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어른들 뒤에 섰다가 제자리(?)로 가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이 사진은 노대통령의 NG로 고재열기자의 블로그에 기사로 나갔다. 나는 이 사진을 찍는 고재열기자를 찍었다.




이날 노대통령은 유치원아이부터 요양원 어른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두달 뒤인 2008년 12월 또 봉하마을에 갔다. 노건평씨 수사가 진행되면서 노대통령 편치 않을 때였다. 이럴 때 노대통령의 의연한 모습고 말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다. 노대통령 연설은 보통 긴 게 아니었다. 뒤로 빠져 사람들 표정을 살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이고 노무현 말많네." 하면서 긴 연설에 약간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한 시간 뒤 연설이 끝났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는데 한시간이면 짧은 거란다. 그것보다 더 긴 연설이 많다고 한다. 속으로 말했다. "노대통령님 연설 조금만 줄여주세요. 그러나 천재가 아니라는 노대통령의 연설내용은 참 좋았다.




노대통령의 검찰수사가 중계되고 있던 5월 초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대통령은 방문객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마을 여기저기엔 수사받고 있는 노대통령을 응원하고 검찰을 비난하는 프랭카드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응원문구가 적힌 노란리본들이 묶여 있었다. 한창 바쁜 농번기임에도 마을엔 슬픔과 적막감이 느껴졌다.

노란리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노대통령 사저를 지났다. 노대통령이 떨어지셨다는 부엉이 바위도 지났다. 한참을 가니 노란리본이 끊어졌다. 그 아래를 보았다. 원두막이 보였다. 5월의 햇살은 따가왔다. 원두막의 시원한 그늘 아래에 누워 온몸을 덮고 가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종소리가 들렸다. 청명한 종소리가 귀까지 시원하게 했다. 내 몸에 있는 감각이란 모든 감각은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촛불이 종을 치고 있었다.




촛불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고 있는 걸까? 






봉하마을엔 촛불이 종을 치는 원두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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