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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민정당이 제안했던 의원내각제, 그럴듯 한데.


86년 민정당의 홍보책자다. 먼저 이 책자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이 책자가 나온 역사적 배경설명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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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2.12총선에서 창당한지 한달도 되지 않은 신민당은 돌풍을 일으켜 103석의 거대 야당으로 국회에 자리잡는다. 이듬해 야당은 그 기세를 몰아 직선제 개헌을 위한 1천만 서명운동에 돌입한다. 당장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5공정권으로선 야당의 이러한 투쟁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결국 국내외의 여론에 밀린 5공 정권은 86년 4.30일 여야대표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여야가 합의하면 현행헌법을 고치는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이에 따라 그해 7월30일 국회헌특위가 발족하여 여야가 개헌협상을 시작한다. 민정당은 신민당의 직선제 개헌에 맞서 의원내각제개헌을 당론으로 정한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는 당시 인기없는 5공정권을 연장하고, 야당의 직선제와 절충점이 어려운 포지션을 취해 개헌논의를 무력화 시키기 위한 5공세력의 양수겸장의 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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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책자는 당시 민정당이 의원내각제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대국민 홍보책자이다.

책자는 먼저 직선제의 문제점부터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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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바뀌면 시청 청소부까지 바뀐다."

오호! "이전 정권의 사람 다 나가라"고 했던 유인촌 장관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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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선의 선거전은 문자 그대로 사생결단의 혈전이 되었다"

BBK 시디가 공개되던 날 국회 앞의 치열했던 전투가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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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불가능한 공약의 남발과 선동정치의폐해"

말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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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 대통령제 아래서의 국회는 쟁점별로 타협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대화의 광장이 되지 못하고 폭로와 선동을 위한 대결의 장소가 되기 쉽다."

국회의원 하는 일이 원래 이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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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의 핵심이 자연히 대통령에게 집중되므로 사법부의 독립성과 언론의 자율성 등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으며"

이미 기대를 접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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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자가 자신의 출신지역에서 몰표를 노리게되어 흑색선전을 하게되면 그 결과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된다. 그리하여 망국병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지역감정을 극단적 수준으로 조장할 것이다."

말해 무엇하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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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난 뒤에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불신풍조를 퍼뜨리며 상대방을 모략할 위험성이 크다."

상대 정치세력이나 표를 준 사람을 서로 인간으로 보지 않을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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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의 결투처럼 단 한판에 모든 것을 건 직선제 혈투는 후보자 몇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고 국론을 동과 서로 가르고, 당선자는 체제의 구심점으로, 패자는 반체제의 중심점으로 갈라서는 것이 상례였다."

좀 놀랍다. 지금 드러난 직선제 폐해를 한치의 틀림도 없이 그대로 예측하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의 폐해에 대한 올해 발표된 정치논문이라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탁월한 작품이라고 박수받을지 모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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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자는 의원내각제의 장점에 대해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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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정치와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통해 1인 장기집권과 독재화를 막을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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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내각제 아래 정당들은 정책경쟁과 지지획득 경쟁을 보다 더 본격적이며 상시적으로 벌여야 한다.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각종 연구기관들과 이익단체들을 포함한 중간집단들과 끊임없이 접촉해서 그들의 지혜를 빌리고 욕구를 반영해야 한다."

그럴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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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든 야당이든 권력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단 원내로 들어와야 하며, 들어온 사람은 참여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수상 또는 국무총리도 동료의원 가운데 1인에 지나지 않을 뿐 [신격화]된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수상이 그렇게 아무 때나 갈아치워진 거 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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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내각제 아래서는 대통령제 때와는 달리 국회에서의 여야 대립이 곧 집권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다수당이 제1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제2야당 및 소수당에 대해서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맞는 말이다. 한국에선 의원들이 아무리 깽판쳐도 관계 없다. 오로지 모든 것은 대통령의 정치력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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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아래서 야당은 통치의 메커니즘을 곁눈질할 기회마저 거의 없지만 의원내각제 아래서는 권력의 주체가 국회의원인만큼 항상 권력의 실체와 그 흐름을 지켜보면서 수권능력을 키울 수 있다."

정권이 초반에 보여준 아마추어틱한 모습이 예방될 수 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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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서로의 형편을 충분히 이해하며 따라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생결단적인 적대의식이 없다. 따라서 여당은 야당이 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야당은 조급하게 집권을 서두르지 않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평화적이며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거 공감 된다. 당시 민정당으로선 정권연장 의도로 전개한 논리지만 오늘 대통령제의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우리에겐 이 책자의 내용들이 상당히 크게 울린다.

만약 87년 민정당 바람대로 의원내각제로 개헌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에 나온 내용대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세력교체도 중요하다. 의원내각제로 퇴출되어야 할 정치세력이 퇴출되지 않으면 또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대통령제 덕분에 그간 우리 사회의 세력교체가 어느 정도 가능하여 민주주의가 촉진되었던 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독재세력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반면 대통령제 폐해는 극심해졌다. 이제는 의원내각제가 우리사회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한단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치시스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정당 책자를 보고 이런 영감을 얻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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