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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의 로고는 다이내믹이다. 과연 로고처럼 부산은 다이내믹할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정치는 전혀 다이내믹하지 않은 것 같다. 얼마전 부산에서 토크컨서트를 가진 조국 교수도 부산을 일당독재의 도시라고 말한 바 있다. 부산은 지난 20년 간 다른 정치 세력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부산의 정치가 원래 이렇게 역동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혹했던 군부집권 시절에 치러진 12대 총선에서도 여당이 10석 중 단 2석만을 가져갔을 정도로 부산은 전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도시였다.  

12대 총선이 중선구제라는 걸 생각하면 부산의 12대 총선 결과는 더욱 놀랍다. 한 선거구에 2명을 뽑는 방식은 여당이 기본적으로 1석은 차지할 수 있는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방식이다. 그런데도 부산의 5개 선거구 중에 여당이 당선된 곳은 단 2곳 뿐이었다. 





87항쟁이 끝난 후 치러진 88년 13대 총선에서 여당은 더 줄어들었다. 15석 중 단 1석만이 여당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부산의 정치 역동성은 13대가 마지막이었다. 이후 치러진 선거는 누구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일방적인 선거가 되었고 정치 열기가 시들해진 부산은 투표율도 전국에서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14대에 고작 허용한 정치적 역동성은 무소속 1명.





김영삼 정권 말에 치러진 15대엔 그 희미한 역동성마저도 사라져 18개 선거구에서 모조리 여당이 당선되었다. 

부산 선거 역사상 하나의 당이 모든 선거구를 독식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전례가 없다던 독식현상은 그 다음 16대 총선에서도 나타났다. 

인구 380만의 도시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야당 정치인이 한명도 없다는 건 비정상도 보통 비정상이 아닌 상황이다. 이 시기 부산의 정치는 완전히 죽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부산 정치와 함께 부산의 경제와 문화도 점점 역동성을 상실해갔다. 젊은이들은 타 시도로 빠져나가면서 급속히 고령화 되었고 부산은 학자들이 연구를 해보고싶다고 말할 정도로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인구가 급속히 감소했다.  





그러다 17대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에 힘입어 한명의 국회의원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1/18은 너무나 작아서 부산의 정치권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18대엔 그림상 부산이 어느 정도 역동성을 회복한 것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그러나 18대에서 당선된 무소속과 친박연대는 한나라당 내부의 일시적 분열이었다. 6명의 의원은 분열을 정리하고 얼마뒤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부산의 정치적 역동성은 전혀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3당 합당 후 부산에 도전했던 야당 정치인들은 단 한명을 제외하곤 모두 실패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산 선거 역사는 참혹함 그 자체다.

부산선거 참혹사가 시작된 92년에서 20년이 지난 내년에 총선이 있다. 과연 부산은 2012년에도 야당 의원을 싸그리 몰살시키는 선거 참혹사를 이어갈까?

부산시의 로고처럼 내년에는 부산의 정치적 역동성이 회복되어 흥이나는 부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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