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정은 조삼 선생께서 후학 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함안군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어 자신의 호 '무진'으로 명명한 정자이다. 조삼 선생은 1473년 태어나 1507년 문과에 급제해 다섯 고을 목사를 맡았고 사헌부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까지 지냈다. 연산군 폭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유자광이 중종 이후에도 계속 권좌에 앉아있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유자광을 주벌하자는 상소를 올리기도 한 곧은 선비였다. 조삼 선생이 재직 당시 조정에선 사림파와 훈구파의 싸움이 치열했다. 1519년엔 사림파에 압박당하던 훈구파가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사림파 선비들을 대거 숙청했다. 사림파의 일원이었던 조삼 선생의 낙향은 이와 같은 사화에 영향받았던 것 같다. 공직 말기엔 유유자적하게 일을 하여 언관으로부터 ..
1392년 조선이 개국했다. 고려가 망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의 장내마을에는 작은 고려가 남았다. 고려를 남긴 사람은 이오(李午)다. 이오는 정몽주와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고 공양왕 때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시기가 적합하지 못하다고 사양한 선비다. 조선이 개국하자 이오는 자신이 고려의 유민임을 주장했다. 유민임을 표방하기 위해 고려동을 지어 담장 안쪽은 고려 유민의 거주지고 담장 밖은 조선의 영토라고 하면서 담장 밖에서 나오는 곡식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백이숙제가 주나라의 것은 먹지않겠다 하여 고사리만 뜯어먹다 죽었는데 이오는 백이숙제보다 업그레이드 된 방식으로 조선왕조에 저항한 것이다. 이오의 조선왕조에 대한 저항은 죽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자..
2009년 이전에는 '아라홍련'이라는 연꽃명이 없었다. 이 꽃 이름은 함안에서 처음 지은 것인데 '아라'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된 함안 일대의 옛 지명이다. 함안이 '아라홍련'이라는 꽃 이름을 작명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꽃의 꽃씨가 함안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함안의 성산산성 발굴조사를 하던 중 지하 4m~5m 층에서 아주 오래된 연씨들을 발견했는데 그 씨앗에서 아라홈련이 싹을 튀운 것이다. 성산산성에는 씨앗이 전부 열 알 발견되었다. 그 중 두 알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보내 탄소연대측정법으로 분석을 해보니 대략 12세기에서 15세기 사이로 확인되었다. 연꽃 씨앗의 연대가 대략 고려시대 쯤으로 추정된 것이다. 10알 중 2알이 탄소연대측정으로 쓰이고 8알이 남았다. 이 8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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