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2012 대선

“문재인, 좀 더 대담하고 과감했으면 좋겠다”

커서 2012. 8. 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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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 인터뷰



지역주의에 도전한 대표적 정치인으로 우리는 흔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가장 치열한 지역주의 도전사를 쓴 정치인은 김정길이다. 김정길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4차례나 더 지역주의에 도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종로에 출마해 부산을 잠시 떠나기도 했지만 김정길의 도전은 단 한 번도 부산을 떠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김정길의 지역주의와의 싸움은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김정길은 지난 4.11 총선까지 지역주의와의 싸움에서 7번 실패했다. 3당 합당을 거부한 이후의 선거에서 모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길의 실패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김정길은 최근의 선거에서 또 실패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에서도 탈락한 것이다. 오직 민주당의 이름으로만 지역주의에 도전한 그에게 당도 가혹했다. 컷오프 5명의 작은 영광마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서 김정길은 그저 '실패한 정치인'으로 남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지난 12일(일) 오후, 김정길 전 장관을 만났다. 그 많은 실패와 최근의 연속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김정길은 왕성한 정치의욕을 보였다. 오히려 총선 전 만났을 때보다 더 의욕이 느껴질 정도였다. 김정길은 민주당 대선후보에 진보적인 후보가 전멸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민주당 후보에 모자라는 그 진보성을 주입하는데 자신이 역할을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백범 김구 선생의 길은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정길은 지난 총선에 대해서도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총선 때 친노진영의 '낙동강 벨트' 전략을 실패로 규정했다. 그로인해 서부산권을 제외한 동부산권 등은 선거판이 거의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만약 문재인 후보가 부산의 중심에 출마했다면 부산 전체 선거판을 띄울 수 있었을 거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김정길은 민주당 유력 후보 3명에 대해서도 간단한 평을 했다. 문재인 후보는 진정성은 분명히 있는데 실무형으로 추진력이 느껴지지 않고, 손학규 후보는 다른 후보에 비해 정책이 눈에 띄지만 아직 국민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쌓지는 못한 거 같다고 말했다. 또 김두관 후보는 기대보다 힘이 안 느껴진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정길 전 장관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아까 확인차 전화 드렸는데 안받으시더라구요.


"영화 보고 있었습니다."


- 혼자 가시진 않으셨을테고 아드님이랑 같이 가셨나요?


김정길 전 장관에겐 20대의 막내 아들이 있다. 김 장관은 막내 아들과 잘 다니는데 집회 현장에 아들을 데리고 온 적도 몇 번 있었다.


"아들은 오늘 부대 복귀했고요. 와이프랑 같이 갔습니다."


- 뭐 보셨습니까?


"'나는 왕이로소이다' 봤는데 많이 웃었습니다."


- 요즘은 '도둑들'이 인기 많던데요.


"그것도 봤어요."


- 영화 많이 보시네요. 그럼 스파이더맨이나 베트맨 같은 외화도 보십니까.


"예, 둘 다 봤습니다. 와이프랑 제가 영화 보러 자주 다녀요."


- 아드님은 언제 군대를 갔습니까?


"지난 4.11 총선 끝나고 3일 뒤엔가 갔죠. 좀 미안했어요, 군대가는데 아빠가 상황이 그래서. 군대 가는 지가 더 아빠 신경을 쓰게 했으니."


- 아드님 군대 보내면서 걱정을 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건강이 좀 안좋아요. 그래선가 친구도 많이 없어요. 어디 가서 잘 적응하는 애는 아니예요."


- 건강이 안좋았다면 군대 면제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일부러 보내신 건 아닌지.(웃음)


"신체검사 받았는데 3급이 많더라구요. 안좋긴한데 4급을 하나라로 받아야 군대를 면제받거든요. 우리 애는 3급은 많은데 4급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쨌든 군대는 잘 적응하는 거 같아요. 휴가 때 보니 괜찮아 보여요."


김정길 전 장관에겐 위로 아들이 하나 더 있다. 막내가 군대에 가면서 두 아들 모두 군대를 갔다. 첫째 아들은 자이툰 부대에 파병까지 다녀왔다. 지난 인터뷰 때 김정길 전 장관은 아들이 파병수당으로 꽤 많은 돈까지 벌어왔더라며 은근 자랑하기도 했다.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죠. 지난 총선부터 얘기해보죠. 패배하고 충격이 크셨을텐데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솔직히 선거 전날까지도 떨어질 거란 생각 못했습니다. 현장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떨어지고 나서 말 그대로 멘붕이었죠. 한 달 간 트위터도 못했습니다."


- 패배도 패배지만 장관님 총선 지지율이 지방선거 지지율보다 낮게 나온 것도 예상밖이었습니다. 이때문에 패배의 충격이 더 컸고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 참담한 패배에 대해 변명할 기회를 드리죠.


"영도에 가면 될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거기는 통합진보당 민병렬 씨가 나와서 제가 포기했어요. 부산시장 선거 45% 득표한 사람이 민병렬 씨와 단일후보 경쟁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나는 전략적으로 새누리당에서 제일 센 사람하고 붙을려고 했어요. 만약 김형오가 영도에 나온다면 제가 나갈라고 했죠. 


그 다음으로 센 사람이 서병수인데 거긴 통합진보당 고창권 씨가 나온대요. 야권단일화 그림상 참여계 고창권 씨까지는 나와줘야 되거든요. 그래서 부산의 중심을 찾아보자 해서 부산시청이 있는 행정의 중심 연제구로 갈려고 했는데 거긴 또 '문재인 후보가 안 가겠나' 그런 말이 들려요. 그래서 부산에서 유동인구가 제일 많고 지역으로도 중심인 '부산진을'을 택했죠."


- 그러니까 야권 단일화와 각 후보들 사정을 고려해서 장관님이 택한 지역이 부산진을이었군요.


"내 나름대로는 선거전략을 그렇게 그리고 있었는데 이게 문재인 실장이 출마하면서 의미가 좀 죽어버렸죠. 부산 선거판이 박근혜와 문재인 싸움으로 가버리니까 우리는 묻혀버렸잖아요. 전략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부산의 중심은 비워두고 부산의 중심을 서부산벨트 옮겨버렸잖아요. 낙동강벨트 전략으로 동부산은 이슈가 죽었어요. 


'문성길'이라면서 나도 끼우긴 했는데 사실 나는 '낙동강 벨트'가 아니잖아요. 결국 '낙동강 벨트' 전략이 부산 전체 판을 만드는 동력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낙동강 건너 봉하까지도 못갔어요. 또 같은 부산의 북강서을의 문성근도 못살렸잖아요. 선거결과를 두고 누구 탓만 해서는 안되겠지만 선거전략의 문제점을 묻어 둬서도 안돼죠."





- 문재인 후보가 어디로 나왔다면 야권의 선거판 그림이 괜찮았을까요?


"연제구에 나왔으면 좋았다고 봅니다. 그러면 김영춘(부산진갑), 김정길(부산진을), 문재인(연제구) 이렇게 해서 부산의 정치·경제·지역의 중심에 삼각편대가 만들어지잖아요. 그럼 부산 전체에 바람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었겠죠. 문재인 후보의 지역구인 사상은 제가 이전에 살던 곳입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 49%를 받은 데가 사상이구요. 부산시장 선거 당시의 기여를 주장해서 사상구를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안했습니다. 전체적인 부산의 총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어요."


- 친노 진영에 좀 서운하셨겠는데요.


"문재인, 문성근 이런 분들은 정치를 처음 시작하잖아요. 반면 저는 노무현 대통령 친구고 부산의 선거판을 오래 봐왔지요. 선거 전에 제게 '어디서 나왔으면 좋겠냐'고 물어보고 또 선거전략도 함께 상의했으면 좋았겠죠. 난 부산에서 제일 센 여당후보를 찾거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중심지를 찾고 있는데 친노진영은 '낙동강 벨트'라는 다른 전략을 짜고 있었어요. 그러니 당연히 그림이 안맞죠."


- 이제 민주당 대선 경선 얘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장관님 출마는 좀 의외였는데요. 마감 한시간을 남겨두고 등록하셨죠.


"사실상 대권의 꿈은 총선에서 떨어지고 나서 접었습니다. 시대가 날 요구하지 않는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정치는 그걸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 출마는 안하지만 대선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된다고 생각해서 경선 출마를 했습니다."


- 경선 출마로 어떻게 힘을 보탠다는 말이죠?


"민주당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을 봤는데 별 차이가 없더군요. 새누리당 박근혜보다 개혁적인 게 없습니다. 이름만 다를뿐 거의 같은 정책이더라구요. 예를 들어 한미FTA의 경우 야당후보 대부분이 재협상을 말하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깁니다. 우린 협상권을 행정부가 가지고 있지만 미국은 의회가 가지고 있어요. 그럼 재협상하려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상.하 양원 의회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합니까? 결국 폐기 후 새로 협상하는 수밖에 없죠. 재협상으로 간다해도 협상 전략상 폐기할 수 있다고 해야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남북간 변화를 이끌려면 종전협정을 해야하는데 그걸 말하는 후보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년이면 휴전 60주년입니다. 종전협정을 하게 되면 양국이 군비 축소를 통해 예산을 절약할 수 있고 그걸 복지예산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연간 33조나 되는 국방비에서 10조만 줄여 복지비로 쓰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바로 실질적인 변화입니다."


- 그렇다면 다른 후보들 정책을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출마하셨다는 말인데.


"정말 '저 사람이 되면 세상이 바뀌겠구나!' 하는 믿음을 줄 때 서민들은 투표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민주당에 그런 열정을 보여주는 후보가 없습니다.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 누가 되도 똑같은데 뭐하러 투표하겠습니까? 내가 한 시간 남겨두고 등록한 건 '내가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당 후보한테 야당의 차별성을 일깨워줘야 겠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고요, 앞으로 대통령 예비후보 경선에서 했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 장관님의 경선출마가 다른 후보들에게 영향이 있었다고 보십니까?


"문재인 실장이 남북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말을 했어요. '평화협정'이란 말을 썼죠. 또 김두관 지사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약속했잖아요. 강정마을은 제가 출마선언을 한 곳입니다. 제가 경선에 참여했기 때문에 후보들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 이상적인 길이기도 하지만 의문도 많이 듭니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원로 정치인으로서, 대선배로서 민주당이 바로 갈 수 있도록 옳은 노선과 정책을 제시하는 겁니다. 이승만의 길은 아니지만 김구의 길은 갈 수 있잖아요. 대통령 출마 한번도 안했지만 케네디 가문의 에드워드 케네디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나 대선에 출마한 로버트 케네디보다 더 존경받은 진보 정치인입니다. 그런 길을 내가 가면 되는 거죠. 대통령이 되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내가 하는 주장이 옳고, 내가 하는 주장을 한국의 지식인이나 젊은 사람이 동의해주면 돼요. 내가 그걸 하겠다는 겁니다."


- 하지만 경선에서 탈락하셨습니다. 그 역할의 장을 잃으셨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사실 당선되면 더 골치 아팠어요. 돈이 3억이 넘게 들어가거든요.(웃음) 언론은 써주지 않아도 트위터에 글을 쓰면 동감하는 사람들이 리트윗 해줘요. 처음 대통령 예비경선 나갈 때는 '미친놈 아냐?' 하던 게 제 연설회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트윗에 올라오면서 점점 지지글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나중엔 지지 트윗이 초단위로 올라오기도 했어요. 앞으로 오프에서도 트위플들을 만날 계획입니다. 부산은 이미 만났고 16일엔 서울에 벙개가 잡혀있습니다. 대구, 제주도, 대전, 광주 이런데도 벙개를 해서 전국에서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그 생각을 반영하는데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계획은 혹시 있나요?


"오프라인 카페를 하나 운영해볼 생각입니다. 거기 가면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만들 겁니다. 특강도 하고 그렇게 이루어진 활동들을 책으로도 만들고요."


- 언제 쯤 카페가 문을 열까요?


"올해 안에 해볼 계획입니다. 조금 늦게 되고 빨리 되는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할 겁니다. 일단 서울에서 먼저 문을 열고 부산에도 열 겁니다."


- 그러니까 현실정치와 트위터의 연결점 역할을 하시겠다는 말씀 같군요.


"여론을 좀 더 확산시키는 역할이겠죠. 저를 통해 트위터는 조금이나마 목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고요. 정동영, 김진애, 천정배, 심상정, 노회찬 같이 진보적 정치인들이 이런 세력으로 나설 수도 있겠죠. 그러고보면 지금 민주당 경선에서 진보적 후보가 없잖아요.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정동영, 천정배 후보 모두 포기했잖아요. 그러니까 트위터를 통해서라도 진보적 정책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지난 4.11 총선 당시 선거사무실을 찾은 청년 유권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김정길 후보. ⓒ 진실의길



- 경선에 참여하면서 민주당 경선 후보들을 지켜보셨을텐데 각 후보들 평을 부탁드립니다.


문재인 후보는 때묻지 않고 진정성도 분명히 있는데 자기 주장과 목소리가 부족한 거 같아요. 노무현의 가치를 노무현보다 더 추진력 있게 해야하는 데 그게 느껴지지 않아요. 대통령 할려면 좀 더 대담하고 과감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실무형같아요. 정책방향도 그렇구요. 


손학규 후보는 정책은 다른 후보에 비해 눈에 띄는 거 같아요. 하지만 아직 국민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쌓지는 못한 거 같고 야당 후보로서 좀 더 검증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김두관 후보는 이번에 좀 힘이 안 느껴져요. 연설도 별로 잘 못한 거 같고. 형제가 다 서민이라면서 서민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대통령 후보는 '내가 어떻다'가 아니라 '내가 되면 바뀐다'는 확신을 보여줘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별로 못봤어요."


-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장관님 주변에서 장애인을 두 분 봤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총선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봉사실장님이 바로 그분들인데요, 제가 좀 놀란 건 그 분들이 장관님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언제든 찾는다는 겁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저를 대여섯 번 정도 인터뷰 했죠."


- 사실 그 분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텐데요.


"저도 처음엔 잘 못 알아듣겠던데요, 여러 번 듣다보니 들리더군요. 정말 안들리면 몇 번 다시 물어보고 해서 듣고요. 이젠 듣는 데 별 어려움은 못 느껴요."


- 요즘도 통화 하시나요?


"예, 제 전화번호를 알아요. 요새도 전화가 와서 안부도 묻고 언제 인터뷰 하자고 하고요. 얼마 전에도 노무현재단의 아는 사람을 한 사람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없어서 소개는 못했어요."


- 그리고 캠프에 봉사실장 하시던 분은 지적장애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영도에 있을 때부터 날 도와주겠다고 하던 사람이예요. 이번에도 성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사람이 저보고 '형님!' 하면서 돕겠다고 해요. 그래서 무조건 오라고 했죠.


- 사실 모르는 사람들은 그 분의 행동을 오해할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캠프로선 좀 불편할 수도 있었을텐데요.


"다른 사람들은 오해할 수도 있죠. 겉모습 봐선 장애인인지 알 수 없으니까. 약간 어눌해 보이는 사람이 봉사실장이라고 막 얘기하고 다니니 캠프로선 좀 걱정이 되겠죠. 하지만 그 사람한테 상처를 줄 순 없잖아요. 불편해 하는 사람 많았는데 내가 감싸니까 캠프가 말 못하고 따라왔죠. 난 국회의원 되면 장애인 보좌관 한 명 쓸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청와대 수석 중 한 명은 장애인 중에 임명하겠다고 생각했죠. 대통령부터 해야 밑에서도 배려하죠."



김정길을 만나 본 사람은 김정길이 편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총선 때 김정길을 만난 한 트위플은 한참 어린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김정길의 모습이 참 신선했다고 하기도 했다. 이러한 김정길의 편안함을 사람들은 '정치인이 다 그렇지' 하며 정치적 매너로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가 나이와 성별, 장애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나면 김정길의 편안함이 정치적 매너가 아니라 몸에 배인 태도임을 알게 된다.


사람을 대할 때의 편안함은 김정길의 가장 크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장점이다. 이런 장점이 매스미디어에선 힘들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래선지 비록 경선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김정길은 트위터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경선 막판 초단위로 올라오는 지지 트윗에 김정길 자신도 놀랐다고 말했다. 김정길은 요새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트위플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김정길이 7번의 패배를 극복하고 이제 새로운 정치를 시작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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