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2012 대선

조경태, "3대 혁명을 하겠습니다"

커서 2012. 7. 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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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출신 민주당 3선 의원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한 조경태 의원. © 김병국

 

 

민주통합당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은 여야를 떠나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젊다. 올해 44세. 그러나 정치 경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20대였던 1996년 15대 총선에 처음 도전한 뒤 3수만에 2004년 17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리고는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그것도 새누리당의 아성이랄 수 있는 부산에서. 그의 득표율도 간단치 않다. 17대 39.1%, 18대 44.9%, 19대 58.2%를 기록했으니 놀랄 만하다.

 

민주당 대선후보로는 가장 먼저 지난달 11일 출마를 선언한 조 의원은 지역주의 극복 등 원칙 있는 정치를 해왔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낮은 인지도 때문에 지지율은 여태 1%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30일로 예정된 당내 예비경선에도 통과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그는 고교 선배이자 당내 지지율 1위인 문재인 고문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 5대 불가론’을 제기하며 대립각을 세운 바도 있다.

 

조 의원은 대표적인 공약으로 서울대 학부제의 단계적 폐지와 대기업 본사 지방이전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그는 ‘사회개혁 3대 공약’을 내걸었는데 경제(재벌)개혁, 교육개혁, 보육개혁 등이 그것이다. 지난 14일 조 의원은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자서전 <원칙 있는 승리>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 부산지역 트위플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조 의원은 대선 출마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자신의 대선 공약 등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다음은 조 의원이 트위플과 나눈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 지난 14일 출판기념회 행사 후 부산지역 트위플들과 인터뷰를 갖고 있는 조경태 의원(정면 가운데) © 김병국

 


- 오늘 연설을 듣고 조 의원께서 이렇게 박력 있는 정치인이라는 건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은 좀 못했습니다. 제가 단기필마로 나왔습니다.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걸 뚫고 나가야 하잖아요. 연설은 제가 좀 잘하거든요.(웃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면,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정치가 국민이 중심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가 않죠. 여든 야든 ‘민생을 챙기겠습니다’ 하는데 제가 깊숙이 들어가 보니까 실상은 정치가 기득권세력의 싸움판이라는 거죠.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그 권력을 최선을 다해서 쓰게 되면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야 모두 국민을 위해 권력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또 5년을 보낸다면 그야말로 국민은 절망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에서 제가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 지난 4.11 총선에서 58.2%를 득표했는데 이를 어떻게 대선에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보수언론도 있고 진보적 색깔의 언론도 있는데 저에 대해 균형성을 가지고 제대로 평가하는 언론은 없어요. 저로선 참 안타깝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영남에서 민주당 이름으로 3선 의원에 58.2%의 지지율을 얻었는데 여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없습니다. 김부겸, 이정현 이런 분들은 겨우 이번에 처음 도전한 사람들인데 이 분들에 대해선 ‘안타깝다’ ‘아깝다’ 하면서도 조경태의 3선에 대해선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사상에 출마한 문재인 의원 같은 경우도 초선에다 저보다 득표율이 더 낮았는데도 언론에서 훨씬 더 주목하거든요. 이걸 도표로 만들어서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형평성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지지율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들으니 새삼스럽습니다. 58.2%, 이 정도로 높았나 싶기도 하고요.


“부산 사하구 주민들 달나라에서 온 분들 아닙니다. 그 분들도 모두 부산시민이잖아요. 제가 처음부터 높았던 게 아니거든요. 15%, 17%, 39%, 45%, 58% 이렇게 뚜벅뚜벅 올라가는 과정을 사하주민이 평가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장 완벽하게 지역주의 벽을 넘어선 유일한 정치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토대엔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결과죠. 그 희생의 바탕 위에 제가 3선의 꽃을 피운 겁니다. 이게 정치사에서 의미 있는 결과임에도 언론이나 정치평론가의 주목이 없는 거 같습니다. 저의 모델을 잘 연구하면 지역주의도 극복하고 동서화합도 되고 국민통합도 되지 않겠습니까?”

 

-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의지는 부족함은 없다고 보는데 출마가 왜 꼭 지금이어야 할까요?


“느낌이란 게 있거든요. 제가 28살에 처음 출마했을 때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왜 지금이냐?’ ‘너 나이 너무 어리지 않느냐?’ 그때 신혼 3개월째고 은행에서 500만원도 대출도 안 해줬을 때였습니다. ‘조금 더 갖추고 해도 늦지 않느냐?’ ‘너 나이 너무 어리지 않냐?’ 이런 질문을 받던 때였습니다.”

 

- 부산과 국회에서 ‘3선 의원 조경태’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주문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출마한다는 소리를 듣고 좀 놀랬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제가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유가를 낮추는데 기여했습니다. 국회의원이면서도 재벌 정유사와 맞서 싸울 때 외로웠어요. 그때 ‘혼자 힘으로 재벌세력과 싸우는 게 버겁다’ ‘국회의원으로서 한계가 있다’ 이런 걸 느꼈습니다. 중소유통상인회 고문으로 장관들 나무래도 그건 한순간이고 진전이 없는 거예요. 이런 건 누가 해야 합니까? 결국 대통령이 강한 의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과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따로 있습니다. 이대로 4년 간 편안하게 (국회 상임위) 위원장도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저야 맘은 편하겠지만 고통 받는 민초들의 맘을 어루만지는 데는 한계가 있잖습니까.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성 정치인들에게 긴장감도 좀 줘야 합니다. ‘느그들 잘해라, 만약 제대로 못하면 조경태가 치고 올라간다’ 이렇게 경고도 하고 말입니다.”

 

 

 

▲ 조경태 의원 © 김병국



- 민주당에서 3선 의원이면 보통 역량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그에 걸맞게 대우를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제가 바로 그 점을 문재인 의원한테 질문했습니다. 이런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존중하지 않는 그런 패권주의가 우리 당에 존재합니다. 그분들은 ‘자기들이 모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지난번 공천과정을 보면 심지어 저한테 공천을 안주려고 전횡을 저지르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 왜 그랬을까요? 서로 교류가 안돼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래서 제가 토론하자고 하는 겁니다.”

 

- 조 의원께서 보는 ‘빅3’의 문제점은 어떤 겁니까?


“제가 국회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현재 나온 주자들로는 여권 야권 누가 잡든 불행해집니다. 여당의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야당의 기득권 세력이 발목을 잡고, 반대로 야당의 기득권이 잡으면 여당의 기득권이 발목을 잡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통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이념적 차이가 너무 심해 통합은 물론 전진할 수도 없습니다. 동서화합을 통해 국민통합 이룰 때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통합의 최적임자가 바로 저 조경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5대 국회 때부터 민주당으로 패권주의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저는 권력에 줄 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권력이라면 정권의 권력도 있지만 정당의 권력도 있거든요. 박근혜 의원은 새누리당으로 한 번도 광주에 출마한 적이 없습니다. 당이 가지고 있는 한계, 우리나라 정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조경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만약 대통령이 되시면 어떤 정치를 펼칠 생각인지요?


“첫 번째가 경제개혁이고 두 번째가 사회개혁입니다. 정치개혁은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우리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건 경제개혁과 사회개혁입니다. 경제개혁의 핵심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평적 관계입니다. 그럴려면 재벌개혁을 꼭 해야 합니다. 동일노동에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합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경제개혁은 임금의 격차, 빈부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겁니다. 그 다음은 사회개혁입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누구나 행복해야 하잖습니까? 근데 다들 행복해질 수 없어요. 힘들어해요. 주거가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도권 인구 2천만 명이 그런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요. 그러니까 부동산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교육개혁입니다. 학벌 없는 사회, 대학이 서열화 되지 않는 사회, 열심히 땀 흘리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가 보육개혁입니다. 우리가 남녀차별 없애자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남녀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보육문제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워본 아빠로서 느끼는 여성의 고통이란 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성의 힘든 일상을 해방시켜줘야 합니다. 이제 보육을 가정사로 치부하지 말고 국가가 아주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건 혁명입니다. 개혁도 약합니다. 3대혁명을 통해서 민생을 통합시켜 나가야 합니다. 대선주자 중에 이만큼 명쾌하게 얘기하는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 ‘혁명’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방해받고 있기 때문이죠. 3대혁명을 위해서 완수시키기 위해선 재정이 필요합니다.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선 대한민국이 가진 포션이 더 커나가야 하죠. 그렇게 되려면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정치가 분열되고 지역이 분열되고 국론이 분열되면서 전진의 에너지를 막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게 국민통합입니다.”

 

- 핵발전소에 대해서 분명한 의견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점은 대선주자 중에서 제가 가장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핵발전소를 가동하게 되면 반드시 찌꺼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폐기물, 소위 말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처리할 데가 없습니다. 이거 ‘불편한 진실’이거든요. 이걸 어디 쌓아두느냐 하면은 핵발전소 안에 둡니다. 그런데 이게 2016년이면 포화상태가 됩니다. 그럼 이후에 이걸 어디에 둘 것이냐가 이제 큰 이슈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답이 없습니다. 이걸 최소 12만년 봉해서 땅속에 묻어두는 동안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구는 항상 지각변동이 일어나잖습니까? 그 안정성을 세계 어느 학자도 자신 못 한다는 거죠. 독일이 핵을 포기한 게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 고백해야 하는데 ‘핵 마피아’ 때문에 못하고 있습니다. 대안은 신재생에너지가 정답입니다. 일자리 20~30만개 만들 수 있습니다. 자연에너지를 통해서 이 나라를 핵으로부터 해방시켜 내는 게 국가지도자로서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 웃옷을 벗은 차림으로 제작한 조경태 의원의 98년 선거 당시 선거포스터

 
- 웃옷을 벗고 찍은 이 사진 아시죠? 조 의원께서 3선에 성공한 이유가 이렇게 필사의 각오로 싸워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 사진에 얽힌 사연을 좀 들려주십시오.


“제가 만 28세 때, 그 때 돈도 없고, 조직도 없고, 선거 기획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사람하고 둘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선거포스터가 정형화 되어있지 않아 까만 양복 입고 나온 사진이 대부분이었죠. 제 집사람은 ”그렇게 홍보자료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겠느냐“며 갑자기 “벗어라, 누드로 한번 만들어보자”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 “말도 안되는 얘기하지 마라. 어떻게 신랑을 그렇게 만드냐”고 했더니 “그거 말고 방법이 있겠냐?”고 하더군요. 처음엔 홀랑 다 벗으라는 거예요. 이건 너무 심하다 싶어 반라로 낮췄습니다. 이게 상반신도 최대한 내린 겁니다. 아래 구름으로 가린 거 보이죠?”

 

정치를 시작할 때 조경태 의원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얼마나 없었으면 그의 아내가 선거포스터를 다 벗고 찍자고 했을까? 아내가 남편을 욕보인다는 소리까지 감수할 정도로 가진 게 없었던 그가 지금은 민주당 이름으로 부산에서 3선 의원이 되었다. 또 그는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 이제 대통령에 도전한다. 국회의원 첫 도전 당시의 조경태 선거포스터를 보며 비웃은 사람들은 지금 조경태의 대선 출마를 보면서 또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조경태의 도전은 항상 주변의 비웃음 속에서 치러졌다. ‘3자 대결’에서 운이 좋았다는 조소(嘲笑)는 지난 4.11 총선이 치러지기 전까지도 따라다녔다. 그러나 조경태는 항상 그런 조소를 뚫고 우리에게 승리의 낭보를 전해주었다. 현재 1%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을 감안하면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조경태는 이번에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출발한 조경태의 승리 신화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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