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씨. 그리고 68혁명

 

 

반갑다 친구들아! 우리가 올해로 사십대구나. 키야! 세월 참 빠르다. 국민학교 때 88 올림픽이 언제 오겠냐며 그 땐 대학생이네하며 낄낄댔는데 벌써 20년 전이고, 21세기엔 도시에 우주선이 날라다닌다 했는데 그 새 7년이 지났다.

 

설날에 본가에 가니 마누라와 동생들이 40대라며 막 놀리는데, 이거 뭔 감회라도 있어야 약이 오르지. 생활비, 애들 유치원비 투덜대는 동반자가 옆에 있어, 30대잔치가 끝났다는 거 정도 느끼겠더라.

 

우리가 태어났던 68년이 보통 해는 아니었어. 새해 초부터 참 시끄러웠지. 정초에 북한에서 남파한 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바람에 남한사람들 깜짝 놀랬었구, 또 68학생혁명이라는 학생운동이 절정기에 달해 세계적으로도 많이 시끄러웠다는구나.

 

 

 

 

 

그 해 10월 음력으로 9월에 내가 세상에 나왔어. 아버지 어머니도 그 해에 결혼하셨어. 결혼에다 자식까지 낳고 두 분에겐 참 축복받은 해야. 그런데 두 분이 알리바이를 짜맞추지 못한 거같아. 내가 10월에 나왔는데 결혼은 5월이니. 뭐 능력이 좋으셨겠지.  

 

군데 군데 곰팡이가 핀 두 분 청첩장이야. 접혀진 부분도 없고 저게 전체 모습이야. 저 땐 저렇게 다 소박했어.

 

내 추억의 사진 몇장 보여줄께.

 

  

 

 

이건 가장 아끼는 옛날 사진이야. 백일 좀 지났을 땐데, 날 안고 행복해하는 어머니와 이모의 모습이 참 좋아. 보면 볼 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사진이야.

 

 

 

 

기억나니? 예전엔 저렇게 사진사들이 사진뒷배경을 끌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줬었어. 사진사가 "사진"하고 외치면 불러서 찍었지. 동생과 같이 찍은 거야. 사람들이 그러는데 동생은 까불이고 난 얌전이였다고 하더라.    

  

 

 

 

77년도 사진이야. 국민학교 2학년 때지. 동생들 사진인데, 가족 사진 중에서 내가 고전처럼 아끼는 거야. 두 녀석 모습도 웃끼고 뒤에 처다보는 동생친구들 표정도 일품이야. 그거 뿐인가. 철문 기둥에 붙은 빨간 글씨 보이지 '멸공'이라고. 저게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좋아. 그리고 그 옆에 벽보 보이니. 그거 영화 포스터야. 물론 변두리극장 2편동시상영이지.

 

아침마다 저 기둥밑에 쪽문으로 출근하던 누나들 모습이 생각나네. 그 땐 여자들 작업복에 왠 모자를 씌워줬는데, 중앙에 꼭지 달린 모자를 살짝 걸쳐 쓴 모습이 이뻤던 것같아. 저기서 뭘 만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사장은 일본사람이었다고해.

 

오른 쪽에 살짝 보이는 담벼락이 앞으로 좀 더 나왔었는데, 저 담벼락에 뛰어넘지 못하면 겁쟁이 취급받아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어. 난 서울에서 내려와 1년은 못 넘다 그 다음 해에 간신히 넘었어. 

 

이 사진 보면 바로 '다망구' '오징어달구지' '라면땅' 막 이런 말들이 떠올라. 오후 늦게 술래잡기 하다 어느집 담에 숨으면 저녁찌개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그러면 집에 가곤 했었지

 

  

일간스포츠

 

 

매달 이거 사달라고 엄마 졸랐던 기억나니? 난 450원인가 했을 때부터 기억난다. 사실은 책보다 별책부록에 더 관심이 갔었어. 별책부록 보고 책을 골랐었지. 대개 어깨동무보다는 소년중앙을 많이 본거 같아. 소년중앙 부록이 괜찮았었거든. '꺼벙이' '독고탁'도 기억나지?

 

 

 

크로바문고다! 이거 왜 그렇게 귀했는지 몰라. 소년잡지처럼 단행본이 아니라 시리즈가 많아 한꺼번에 사기가 부담이 되어서 많이들 못산거 같아. 이 책 있는 집 가면 그냥 눈이 둥그래져서 환장했었잖아.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거 밖에서 처다보기만 했었지. 저런 시리즈를 통째로 사서 보는 집이라면 십중팔구 부잣집이었던 거같아.

 

대야망은 정말 인기 좋았지. 그래서 지금도 최배달 그러면 남달라. 우리 사이에선 정말 대단한 영웅이었지. 전세계가 그를 존경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어른들은 시큰둥하데.

 

 

 

 

뱀주사위놀이. 이거 말고도 기억나는 거 많지. 부딛혀서 계급 높은 쪽이 이기는 군기놀이. 책받침 튕겨서 하는 축구 놀이판. 이걸로도 충분히 재밌었는데 나중에 블루마블 바람이 불어서 있는 집 애들이 끼워주니 마니 하면서 괄시하더라. 

 

 

 

 

원더우먼과 소머즈야. 원더우먼이 좀 늦게 나왔지 아마.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는데도 원더우먼이 변신하면 자꾸 눈길이 갔던 거같아.

 

누가 더 예쁘냐. 원더우먼? 소머즈? 인형같이 예쁘기로는 원더우먼인데, 매력은 소모즈가 넘쳤던 거같아. 가끔 소모즈 모습 보면 현재 어떤 배우보다 더 눈길이 가거든 근데 원더우먼 본명이 '린다카터'고 소머즈는 '린제이와그너'라는 거 알지?  

 

 

ⓒ 2005 말괄량이 삐삐

 

 

삐삐 롱스타킹! 이 언니가 벌써 마흔아홉이라는구나. 우리나라 나이론 50쯤 되겠네. 한국에서 한 창 인기있을 때 벌써 대학생이셨구나.

 

그리고 10.26일 아침 거리 풍경은 생각나니. 그게 국민학교 5학년 때지. 우리 어머니는 놀래서 눈물이 글썽하셨는데, 아버지가 그 모습 보고 당장에 '독재자'라며 호통을 치셨지. 등교하는 길에 보니, 땅 바닥에서 통곡하시는 어른들도 많으셨어. 학교에도 책상에 엎드려 울던 애들 꽤 있었지. 난 당시 박정희가 독재라며 나이 안맞게 좀 아는 척 했던친구들과 어울려서 대통령 죽음에 별 충격은 없었던 거같아. 

 

 

김재규 ⓒ 조선일보

 

 

아버지는 10.26 이후에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실망이 크셨지. 어느날부턴가 9시뉴스시간 되면 밥그릇이 테레비로 막 날라가고 그러더라. 그래서 어머니가 뉴스시간 되면 채널 살짝 돌렸어. 돌려봤자 그 땐 한 군데뿐이었지만. 나도 갑자기 뜬금 없이 방송에서 불세출의 영웅 전장군님이란 소리가 나와서 어린 맘에도 많이 의아했어.

 

  

5.18항쟁 ⓒ 국정브리핑

 

 

5.18 때 과외수업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뭔가 우리에게 할말이 많았던 표정이었어. 당시 흔히 볼 수있었던 어른들처럼 "이런 빨갱이들"이라거나 "쥑일놈" 이런 소리는 전혀 없었구. 그냥 잘 해결되어야 할텐데 사람이 많이 죽으면 안되는데 이러셨어. 그 당시에 그 정도면 뭘 아셨던 분이지. 이어졌던 말들은 알듯 말듯 알송달송한 말들이어서 기억도 안나. 그리고 몇달 뒤 정권에서 과외를 금지시켜서 선생님과 헤어지게 되었지.

 

 

80년 미스유니버스대회 ⓒ 국정브리핑

 

 

광주항쟁 석달 뒤던가, 세계 유니버스 대회가 대대적으로 열렸어. 다들 놀랬지. 저렇게 아름다운 미녀들이 수영복만 입고 경복궁에 섰으니. 아직도 그 때 모습이 뇌리에 선명한 거 보면 미스유니버스대회 홍보가 대단했었나봐.

 

지금 생각해보면 저 언니들도 용감했어. 군부의 발포로 수백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나라에 몇 달만에 겁도 없이 온 거 보면. 지들끼리도 아마 별일 없을까하며 수군댔겠지. 다들 지금은 쉰이 넘으셨겠다.

  

이후에 군부정권이 민심완화책으로 중학교 2학년 때 통행금지 해제했고, 83년 중3때 두발과 교복 자율화 했었지. 우리는 그 꺼먼 교복 고등학교 때 안입었잖아. 그거 알지? 그래서 우리 졸업식엔 밀가루 계란 세례 없었던거.

 

우리 졸업하고 교복부활시키면서 각 학교에서 내세운 주요 명분이 사복으로 빈부격차가 드러난다는 게 이유였는데 요즘은 백만원 가까이 하는 교복 때문에 빈부차를 더 드러낸다면서. 하여튼 뭐든지 티 낼라는 사람때문에 제도가 안멕혀

 

 

 

 

이 분 참 시도 때도 없이 오셨어. 가봉의 봉고 대통령. 이름도 헷갈려 가봉의 봉고인지 봉고의 가봉인지. 하여튼 외국정상 왔다 하면 대략 이분이었던 거같아. 우표수집책에 이 분 기념 우표도 있는 거보면, 참 징허신 분이야. 그런데 이분 아직도 대통령이라면서. 대단혀 

  

 

 

 

야간자율학습 빼먹고 학교 담 넘어 변두리 극장에서 2편 동시로 영화 많이 봤지. 그 때 한 창 인기 있던 영화 '개인교수'와 '그로잉업'이야. 니들은 둘 중에서 어떤 게 더 재밌던? 난 그로잉업이 더 좋았어. 영화 정말 웃기고 나중엔 감동도 있었지. 중간에 있는 저 주인공이 못생긴 것도 참 신기했고. 이게 시리즈로 아마 10편까지 나왔을 걸. 개인교수는 4편?

 

 

 

 

결국 독재정권에 끝이 왔어. 6.10 항쟁이 전국을 휩쓸었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들떳었니. 난 그 때 재수했었는데, 친구들끼리 모여 몇번 데모하러 갔었어. 의식화된(?) 친구 놈에 끌려 갔었지. 먼저 자갈치 시장에서 고래고기와 소주 몇병을 시켜 먹고 출전하려했는데, 몇 잔 먹기 전에 벌써 주위가 데모판이더라. 세잔 정도 마시고 바로 시위대열로 들어갔지.

 

정말 그런 경험 처음이었어. 집단의 경험이란 거. 수천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외치고 하나의 노래를 불렀어. 구경하는 아저씨들은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와 함성을 질렀어. 육교를 지나가면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어. 정말이지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그건 몇 시간 전의 내가 아니었어. 그게 바로 처음 느껴 본 '전율'이었어.

 

재미도 좋았지. 아저씨들이 담배, 먹을꺼리, 음료수 이런 걸 사와서 막 주는거야. 정말 많았어. 최루탄차와 전경들이 밀어서 시위대가 완전히 사라졌다 싶은데, 누군가 "동지들 다시 모여 ~~"하며 노래를 부르면 순식간에 다시 수 천 명이 모였어. 그 역동성을 감히 2002년 월드컵이 못따라오지. 2002년은 87항쟁의 아류일뿐이야. 집단의 추억에 목말랐던 대한민국이 15년만에 다시 벌인 축제랄까. 지랄탄이 다리 사이로 지나가고 치약 바른 얼굴엔 눈물이 쏟아졌어. 점점 크게 들리는 타격대의 군화소리와 최루탄대포소리, 그런 상황에서 수만명이 도시 대로에서 한 목소리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한달간 전국을 휩쓸었던거야.

 

생각해봐. 그건 68년생 우리를 위한 거였어. 선배들이 가장 감수성 예민한 때인 20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축제였어. 그리고 바로 우리들 가슴 깊숙이 87년은 꽂혀버렸지.

 

 

 

: 이문세 홈페이지

 


  

 

87년 민주화 항쟁말고 또 꽂힌 게 있지. 그 해에 거리엔 최루탄이 있었다면 다방엔 이문세가 있었어. 정말 지겹게도 나왔지. 여기 가도 이문세 저기 가도 이문세. 노래가 이문세 꺼밖에 없었나봐. 근데 들어도 들어도 안질리긴 했어. '어허야 둥기 둥기'는 빼고.

 

그러고 보면 우린 '이문세와 87년' 세대라고 할 수있는 거같아. 사회정치적으로는 87년에 꽂히고, 음악적으로는 이문세에 꽂혔잖아. 그 둘에게 우리의 감성을 거의 다 사로잡힌 거지. 

  

 

 

 

90년 제대했는데, 찾아보니 저런 게 있더라. 아직도 저런 카드를 휴대하고 잊어먹으면 큰일 난거처럼 군기잡고 그러지 않겠지.

 

그리고 제대하고 나오니까 이승철이데. '말'판에서 '철'판으로 바뀐거지. 노래방가면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그러구 그랬지.

 

  

 

 

 

 

94년에 대학 졸업했다. 취직이 그렇게 어려울 땐 아니었는데 그래도 나름 고생했던 거같아. 서울갔다가 저 봉투에 차비 2만원만 받아왔는데 연락은 없더라. 자기소개서도 지금 보니 고생해서 적은 흔적이 있어. 첫직장 월급이 80만원이 좀 안되었지.

 

우리들 추억은 여기까지야. 그 다음부터는 걱정 시작이지. 취직걱정, 결혼걱정, 애들걱정, 부모걱정, 걱정에 걱정이 계속 이어지잖아.

 

누가 그러는데 2005년 현재 우리가 총 82만명이라고 하더라. 다들 건강하지? 부모님은 잘 계시고?   

 

30대가 끝나 이제 기대가 의무로 바뀌고 관용보다 비판이 더 많아지는 중간 점을 지나온 거같아. 실수하면 당장 그 나이에 인생 뭐 살았냐 라는 소리 듣는 나이잖아. 마흔이 사실은 '불혹'이 아니라 '불욕'이더라구. 이래 저래 시달리고 나이까지 체력을 좀 먹기 시작하는데 혹할 마음이 어딨겠냐구. 철 들은 건 없고 몸은 축나기 시작하는데 해야할 일만 많아졌지.

 

친구들아! 오늘 만나서 즐거웠다. 별로 축하하지 않는 40대 우리끼리 자축하자꾸나. 새로 시작하는 우리의 마흔에 축복이 깃들길 바란다.

 

모두 건강해라.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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