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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이 신라의 주인이 아니라 발전이 없었다는 덕만의 말에 미실은 폐부를 찔린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지켜보는 시청자는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 '주인'이라는 말이 상황에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을 백성이나 피지배 계층을 두고 썼다면 주인의식이라는 공적 의미로 읽힐 수 있었을텐데 권력자인 미실과 덕만이 쓰니 진짜 주인을 가리는 사적인 소유권 다툼으로 여겨진 것이다.

이 부분은 작가의 실기로까지 보였다. 단어가 적절히 쓰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인의식'을 의도했다해도 그건 너무 상투적인 접근이었다. '분노가 먼저'라거나 '신권을 내려놓겠다'는 식으로 현실정치를 예리하게 파고들고 상징하던 드라마가 뻔해 보이느 '주인의식'이라는 해석을 내놓으며 고른 극의 수준 유지에 실패하니 시청자들은 맥을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선덕여왕도 이제 슬슬 힘이 빠지나 생각이 들려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어진 40회에서 '주인'이라는 말의 해석에 다른 가능성을 내놓으며 드라마를 다시 제 궤도로 올려놓았다. 덕만은 40회에서 백성들이 이제 새로운 화두인 '여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며 웃음 짓는데 이는 주인이 아니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미실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미실은 주인이 아닌 지배자지만 덕만은 주인인 여왕으로서 신라를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덕만은 스스로 여왕이 되려고 한다. 진짜로 신라의 주인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미실은 신라의 주인으로서가 아닌 자신의 남자나 낳은 아이를 통해서 신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주인을 조종해서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덕만과 미실의 차이는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한 여자와 주인을 조종해서 자신의 이익을 찾겠다는 여자의 차이다. 미실의 방법은 여자들이 전통적으로 이 세상과 관계하는 방법이다. 권력을 실제 소유할 수 없는 여자들은 남자를 통해 세상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미실도 바로 이 방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상대하는데 덕만은 그런 미실을 꾸짖고 스스로 주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선덕여왕 39회에서 주인이라는 말은 효과적으로 쓰인 것이 맞다. 그건 주인이 될 수 없는 여자들이 한 말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될 수 없는 여자들이 '주인논쟁'을 벌이는 것은 소유권을 두고 벌이는 정치게임이 아니라 세상의 변혁에 대한 얘기이다. 여자인 미실과 덕만이 벌이는 '주인논쟁'은 일반적인 정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주인논쟁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이 주인이 되기 힘든 우리 사회는 반은 주인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질 때 세상은 진보한다. 반만 주인인 사회는 모두가 주인인 사회보다 당연히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덕만의 미실이 주인이 아니어서 나라의 발전이 없었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 닿아있다. 덕만은 오늘날 여성들을 향해 당신들이 주인이 되려할 때 세상은 발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여성을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이 사회의 차별을 향한 말이 될 것이다. 

선덕여왕이 새로운 정치드라마에서 이제 성평등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 드라마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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