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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속출 속에 기록도 천차만별


세계최강 미국이 푸에르토리코에 콜드게임으로 패했다. 우승후보 도미니카는 야구 오지인 유럽의 네덜란드에게 두번이나 격파당하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대만도 제대로 된 프로야구팀이 없는 중국에게 패해서 1라운드 탈락했다. 한국은 아시아 승자를 다투는 일본에게 1라운드에서 예상밖의 콜드게임패배를 당했다. 

이변 속출이다. 아무리 승부의 세계는 모른다지만 이렇게 이변이 많으면 대회의 재미는 반감된다. 강팀과 약팀, 라이벌과 다크호스 등의 대결구도가 유지되고 그 구도 안에서 변수가 제한되게 발생해야 게임의 재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재미란 건 예측가능한 토대 위에서 벌어지는 반전이다. 매 게임 누가 이길지 알 수 없고, 분명한 대결구도가 없는 승부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승부의 구도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만들어지고, 그러면 게임은 개싸움이 될뿐이다.
 
야구엔 왜 이렇게 이변이 많은 걸까? 타종목보다 높은 이변의 빈도는 '야구가 스포츠일까?'라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스포츠라면 강자와 약자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고, 강팀이 쌓은 전통과 경기력이 게임에서 잘 보여져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압도하고, 강자와 강자의 대결에선 긴장감이 느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강자와 강자의 게임이 맥없이 끝나고, 약자가 강자를 쉽게 이기는 게임이 흔하게 벌어진다면 스포츠보다는 도박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야구는 도박과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승부의 순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점이 도박과 흡사하다. 축구는 골의 순간이 눈 깜짝할 새 벌어져 포착하기 힘들지만 야구는 관중이 승부의 순간을 놓칠 위험이 별로 없다. 도박에서 패를 보여주기 직전 최고조에 이른 긴장감이 패를 펼치는 순간 일시에 해소되는 것처럼, 투수와 타자의 극적인 승부장면도 도박과 같은 긴장의 고조와 해소를 보여준다. 관중들은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안타냐, 땅볼이냐?', '홈런이냐, 플라이냐?'로 가슴을 졸이다 타구의 방향을 보고난 후 환호를 하거나 아쉬움의 탄성을 지르게 된다. 

투수에게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도 야구를 도박에 가깝게 한다. 아무리 좋은 팀도 그날 출전하는 투수의 컨디션이 나쁘면 황당하게 질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약체라도 좋은 투수 하나만 있으면 세계최강팀도 잡을 수 있다. 단체종목 중에 특정 포지션 선수 한 명이 승부에 끼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 종목은 야구말고 없을 듯 하다. 야구는 전체 선수들의 실력보다 그날의 투수운에 승부가 결정되기 쉬운 불합리한 스포츠다. 도박에서 처음 어떤 패를 받느냐에 따라 승부가 크게 좌우되는데 야구의 투수도 도박의 첫패만큼 승부에서 중요한 것이다.

야구가 단기적으로는 실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도 도박과 유사한 점이다. 스포츠라면 단기전에서도 강팀과 약팀의 실력차가 분명히 드러나고 승부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수놀음이라는 야구의 불합리성은 승부편차를 크게 만들어 야구의 단기전 승부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강자와 약자의 실력차를 드러내기 위해선 여러번 게임을 해서 승률의 확률로 결정지어야 한다. 도박이 이렇다. 도박의 고수들은 한 판으로는 그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여러번의 게임이 쌓여야 확률적으로 우위를 보여줄 수 있다. 

야구와 도박을 비교한 것은 야구가 과연 세계대회가 가능한가를 묻기위함이다. 아무리 열심히 실력을 쌓아도 단기전에선 실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게 야구다. 그건 이번 대회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야구올림픽이 사라진 것도 단기전에서의 야구승부의 문제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투구수를 제한한 것도 투수의 영향을 제한하기 위한 고육책인 듯 하다.

세계야구대회가 야구의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까? 이 딜레마를 그냥 방치한다면 WBC는 곧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몇달 합숙한 네덜란드가 100년 전통의 미국을 가비얍게 이기는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면 누가 WBC를 보겠는가? 당장 이번 대회부터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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