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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학자 중에 후진국 원조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후진국에 학교 지어주고 식량 원조해줘봐야 나중에 다시 찾아가면 여전히 굶주린 사람들이 손 내밀고 있고 학교는 잡초만 무성하다고 한다 자신들의 부를 후진국과 나누기 싫어하는 선진국의 이기적 주장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원조된 물질조차도 관리하지 못하는 후진국의 한심한 시스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후진국이 비참한 상태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법과 제도를 정착시키고 전쟁을 유발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



갑자기 후진국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물질보다 중요한 게 제도와 시스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물론 대한민국은 국가 시설과 제도의 기본적 운영조차 버거워 하는 저런 나라와 비교할 그런 쪽팔리는 나라는 분명 아니다 대한민국은 후진국과 질적으로 다른 나라다 하지만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선진시장경제국가들과도 질적으로 다른 나라다



지하철에서 출근시간 확인하기 위해 천정에 매달린 싸인보드를 자주 찾아보곤 한다 그 싸인보드엔 시계 외에 국정홍보문구도 번갈아가면서 표시된다 그런데 최근에 눈에 안보이던 문구가 나온다 “시장경제 선진화”다 얼핏 봐선 역대정권들의 홍보문구보다 수준이 더 나아보이지 않는다 “정의사회 구현”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깡패 때려잡으면 된다 “세계화”는? 개방많이 하면 된다 세살 먹은 어린애도 이해할 수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시장경제 선진화”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아마 이걸 제대로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간단할 거 같지만 이 예사롭지 않은“시장경제 선진화”란 홍보문구는 일단 ‘한국시장’과 ‘선진시장’이 뭐가 다른지를 알아야 이해가 된다



IMF는 지난 40년간 대한민국의 성장이 물량투입에 의존한 바가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시장이 후진국보다는 좀 낫다는 것이 물량투입을 어느 정도 소화해내었던 법과 제도가 갖추어진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7년 환난은 한국시장의 물량투입 경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선진시장은 물량투입 없이 경제가 성장한다 말인가? 아니다 이건 한국과 선진국의 물량의 분배구조가 다르다는 말이다 “물량투입”이란 시장만큼 효율성을 고려하기 힘든 국가가 자원을 분배했다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한국은 국가가 자원을 분배한다 그러나 선진국가는 시장이 자원의 분배를 한다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에선 정부로 달려가고 선진국은 시장으로 달려간다 여기에서 두 체제의 경제 효율성 차이가 발생한다 시장에서 노력하지 않고 국가 앞에서 “뗑깡부리는” 한국은 선진시장 경제에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이다 



후진국은 애초에 물량투입에 한계가 있었지만 한국은 20세기 말 물량투입에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은 기본적인 자원의 분배구조는 가지고 있었지만 효율적 자원의 분배구조는 없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제2단계 후진국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형 효율적 자원분배구조, 즉 시장분배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선진국가 진입은 요원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가 자원 분배를 안하고 시장이 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로 선언하면 될까? 시장보고 자원분배해보라고 명령하면 될까? 그래봐야 시장은 또 국가의 눈치를 보게 되고 다시 개혁은 원위치하게 된다 국가가 자원 분배를 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시장에게 명령조차 할 수없을 만큼 국가에 집중된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시장경제 선진화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분권화이다 시장경제를 위해 분권화를 해야한다는 말이 생소하신가?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알기로 경제학의 상식 중에 상식이다



그런데 이게 노무현의 개혁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상관이 너무 너무 많다 노무현정권은 틈 날 때마다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이 말들은 바로 분권화를 의미한다 집중된 권력구조에서 사람들은 중앙만 처다본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에서 나오는 하찮은 말이라도 이슈화되고 어이없는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분권화가 되면 과연 누굴 처다봐야 할까? 분권화된 시스템에선 위에서 많은 것을 내려보내지 않는다 정부 내의 기관들과 각 사회 조직들은 스스로 알아서 행동해야 한다 이때 그들이 참고하고 의존해야 할 것이 바로 제도와 시스템인 것이다



이제 지하철에 표시되던 “시장경제 선진화” 홍보문구와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이 연결되시는가? 왜 정권초기에 검찰을 그렇게 일찍 독립시켜주는 바람에 노무현이 그 고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시는가? 왜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겠다고 난리를 쳤는지 이해가 되는가? 왜 이용훈 대법원장이 검찰과 변협에 칼을 세우는지 이해가 되는가? 어떻게 공정거래위원장 따위가 네티즌과 대화를 하겠다는 건방을 떠는지 이해가 되시는가? 한국은행장과 재무부가 허구헌날 금융정책으로 싸움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가? 이게 바로 민주정부와 시장경제 선진화의 핵심요건인 분권화이다 그리고 분권화를 위한 한국에서의 필수개혁이 바로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인 것이다



혹 아직도 납득이 안가시는 분께 윤영관 교수외 6인 쓴 세계화와 개혁과제란 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이 책엔 노무현정권의 개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윤영관 교수를 발탁했다고 하는데 잠깐만 내용을 살펴보자 



윤교수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집중된 권력으로 보았다 87년에 정치판의 거대독재권력이 해체되었지만, 한국은 그 해체된 권력을 골고루 나누어 가지지 못했고 그 권력들은 다시 사회 각 집단의 보스에게로 몰려 신문사권력 “재벌권력 정치권력 등의 몇 개의 집중된 권력으로 재편”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정도의 권력재편만으로 한국사회가 민주화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각 집단에 나누어진 권력은 “1인자에게 집중되었고 집단 내에서 그 권력은 전혀 견제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화가 아니라 1인 독재체제에서 3-4인의 다수 독재체제로 전이 되었던 것이다



집단 내의 견제를 받지 않는 집중된 권력은 서로 쉽게 유착하게 되었고 그 결과 권력과 언론이 유착하고 권력과 경제가 유착하고 경제와 언론이 유착하는 “좋은게 좋다”식의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이전에는 유착체제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일방적 지배체제였음) 윤교수는 이러한 집단 간의 유착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집단 내의 집중된 권력구조 때문이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분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럼 누가 먼저 해야하는가? 언론이 하고 경제가 하고 국가가 나중에 할까? 그렇게 택도 없다 국가가 먼저 분권화를 실천해야한다 국가 조직은 집중된 권력체제를 유지하면서 다른 집단과 조직에게 집중구조를 해소하라고 하면 절대 사회는 분권화 되지 않는다  검찰을 좀 더 두고 한나라당과 반개혁세력 혼을 내줄 수도 있었는데 노무현이 왜 눈물을 머금고 검찰을 빠이빠이 했는가 그러지 않고는 개혁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거 외에는 꼼수가 통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왜 이전 정권들이 검찰 독립시킨다고 주둥이만 떠들면서 검찰 독립 못시켜주었을까? 이전 정권은 검찰 독립을 현실 내에서 조정하려 했다 그 당위성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검찰 독립을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필연적 조치(분권화)로 이해했다 공허한 당위론에 그냥 떠밀려서 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로드맵에 따라 숙고하고 숙고해서 나온 결단이었던 것이다



청계천이 부러운가? 청계천 백개 만든다고 한국경제가 선진시장 경제 되는가? 선진시장 경제 정착 안되면 청계천 만개 만들어도 한국은 제자리다 아무리 물량 투입해봐야 선진국만큼의 효율적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한 한국은 아프리카 후진국들이 원조물자를 말아처먹듯이 수천개 만든 청계천들을 다 말아처먹을 것이란 말이다 청계천 백개보다 경부운하 10개보다 이용훈대법원장 한명이 더 소중하다는 거 아직도 의심하시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말로 화두를 던진적도 있다 이 말은 기업이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뗑깡’ 부리지 말고 스스로 시장경제를 헤처나가라는 격려와 경고와 정부의 엄살이 섞여있는 발언이다 정부도 권력을 시장으로 넘길테지만 기업 당신들도 자원배분의 권력과 책임을 스스로 행사하라는 말인 것이다 이렇듯 노무현 정권의 말들은 모두 일맥상통한다



노무현의 개혁은 질적 개혁이다 한국사회를 정비하는 차원이 아닌 아예 질을 바꾸는 작업이다 생각해보라 2차대전 후 독립국가중에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 꼴을 제대로 갖춘 비유럽 국가가 있는가? 없다 그만큼 서구의 시스템과 제도를 뛰어넘는 것은 어렵다 그들이 수백년에 걸쳐 피를 흘려 쌓아온 문명인데 당연하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이 그걸 하려고 한다 스스로 몸을 찢기고 칼을 맞아가며 하려고 한다 60년전 유교근본주의 국가였던 한국에 우리 몸에 맞게 서구시장경제 옷을 입히려 하는 순간이다



노무현은 외롭다 자신의 개혁을 지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제 노무현을 외롭게 하지 말자 한미 FTA 로 노무현을 외롭게 하지 말자 허구헌날 기관들끼리 싸운다고 비난하며 노무현을 외롭게 하지말자 알았으면 이제 노무현과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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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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