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친일파 중엔 시대맥락이 고려되지 않고 뭉뚱그려 친일파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나름의 업적을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와 친일파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재평가를 말하는 사람들도 그런 안타까운 부분을 구분해내려는 취지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의 일제시대의 재평가는 친일파의 선별 쯤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일본의 35년 지배를 우리시대의 근거로까지 격상시키려고한다 일제의 35년 지배로 몇몇 분야는 다른 국가에 비해 성취가 좋았을 수도 있다 일제시대 이식된 관료제도나 산업화정책이 해방 이후 남한의 공업화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준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근거에 시선을 빼앗겨 우리가 지불한 정치비용을 잊어선 안된다


일본강점으로 1905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 내에서 정치는 작동을 완전히 멈췄다 해방후 정치가들이 다시 한반도로 들어왔지만 그들은 40년간의 정치부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6.25전쟁에 이르게된다 한반도는 일제 지배로 인한 정치부재에 전쟁이라는 정치비용을 치렀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도 한반도의 정치는 복원되지 않았고 아직도 그 비용을 계산하고 있다


과연 일제시대의 득실을 따지면 한국은 플러스일까 마이너스일까 일제가 이식한 관료제도와 한반도산업화가 한반도의 분단비용과 남한의 현 정치갈등 비용을 상쇄시키고 남을까


베트남은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치고 분단을 해소하면서 외세로 인한 정치비용을 모두 해결했다 현 상황 남한만을 본다면 경제적으로 베트남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와 비교하면 장담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비교한다면 완패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미래이다 그들은 통일된 정치체제로 미래를 준비하고 우리는 계속 분단비용을 치러야 한다 연간 10%의 성장으로 동아시아에서도 최고의 성장률을 보이는 베트남을 30년 후에도 우리가 앞설 수있다고 확신할 수있을까


국가의 발전은 물질을 투입한다고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후진국에 공급된 수많은 원조는 오히려 원조를 독차지하려는 후진국 정치세력의 분쟁과 부패만 일으켰다 물질을 관리할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진제도를 도입하면 해결될까 이것도 쉽지 않다 정신이 유리된 제도가 제 역할을 하기는 힘들다 제도에 깃든 선진제국의 정신은 피도입국가의 문화에 맞게 재편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이 해방 후 서구의 제도를 도입하고 겪은 혼란을 봐도 제도를 다른 문화에 정착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식민지들이 선진제국의 제도의 세례를 받았지만 이후 그 잇점을 살리지 못했다 식민지 관료들이 물러간 후 제도는 토착문화와의 이질성을 드러내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므로 35년 통치로 인한 제도의 세례를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라 할 수있다


한국이 해방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은 일본이 아닌 우리 문명 내부에 있다 다 제국주의종식 후 독립국의 대부분 성공사례는 동아시아에 몰려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홍콩 싱가폴 대만 등 유교문명이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 자본주의 경제 도입후 가장 성장률이 좋은 국가도 베트남 중국 등의 유교문명이다 이처럼 한국의 성공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아닌 유교문명의 선진성에서 찾는 것이 더 설득력있다


남한의 정치적 경제적 성취의 근거를 일제시대에서 찾으려는 일부의 시도는 한반도 정체성 혼란에 그 원인이 있다 분단․반공 국가의 정체성을 가졌던 남한은 민주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있다 민주정부로서 독재정권의 기반이었던 반공 반북을 국가정체성으로 계속 내걸 수는 없다 새로운 정체성은 한반도를 포괄하는 통합적 정체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 분단국가이다 명쾌한 민족 정체성을 쉽게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제시대 재평가는 바로 이러한 민족정체성의 재확립이 지체된 틈을 친일연구가들이 파고든 결과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다가는 민족정체성에 일제시대가 끼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정권 차원에서 민족정체성 연구가 어렵다면 지식인 그룹에서도 민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일제시대 연구가들은 근세사의 압도적인 자료를 가졌기 때문에 그에 맞서는 민족정체성의 연구는 더 정교하고 치열해야 한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아직 지면이나 넷에서 한반도를 포괄하는 민족정체성을 깊이 있게 거론하는 글을 본 적이 별로 없는거 같다


제발 정치세력에 봉사하는 그 많은 지식인들의 1%만이라도 민족정체성에 헌신하길 바란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거다란 블로그]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Posted by 커서

트랙백 주소 :: http://geodaran.com/trackback/3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놈놈놈'에서 드러난 한국평단의 이중성

디워는 때리고 놈놈놈은 추켜세우는 평론가들 다음영화 네티즌 리뷰 김지운감독의 '놈놈놈'이 네티즌으로부터 디워와 질적 차이를 못 느낄 정도의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평단이 경멸하는 심형래감독과 비교되는 게 김지운감독..

가판대 사진 찍다 파파라치 몰린 사연

파파라치로 몰린 사연 블로거뉴스를 보다 재밌는 포스트를 발견했습니다. 이구아수님의 '약국에서 광고지를 찍다 도촬족으로 몰린 사연' 인데 나도 얼마전 사진을 찍다 봉변을 당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의 글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촛불집회에 <놈놈놈>이 나타났다

4명의 여성들이 현수막을 들고 촛불집회가 열린 부산시청 광장을 한바퀴 돕니다. 현수막을 본 시민들은 웃고 박수를 칩니다. 현수막에 뭐가 쓰였길래? 7월19일 촛불집회에서 가장 대박난 퍼포먼스입니다. 영화 <놈놈놈>을 패러디..

부산의 촛불소녀들

부산시청 광장의 촛불소녀들 부산의 시청광장에서 촛불집회 참석자들을 반기던 학생들입니다. 목에 피켓을 매고 지하철 시청역을 내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에 학생들이 참석하는 건 흔히 보지만 이렇..

19일 부산촛불에 '분열'이 있었습니다

어제(19일) 시위대가 쥬디스태화 앞 대로를 통해 전포로 올라가는 중간에 분열이 있었습니다. 아고라 주축의 시위대는 전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kbs로 이동하려고 했고 다른 대학생과 단체 소속 시위대는 서면로타리 점거를 주장했..

19일 부산촛불에 전국의 아고리언들이 모였다

19일 부산촛불집회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서울과 경남북의 아고리언들이 부산을 찾아왔습니다. 그간 부산아고리언들이 몇차례의 서울원정집회를 한데 대해 서울의 아고리언들이 답방을 약속했고 19일 약속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19일 부산촛불, 경찰과 수차례 몸싸움

부산 경찰의 시위 대응 방식이 17일부터 바뀌었습니다. 이전엔 시민과 협의해서 가두행진을 보장했는데 17일 집회부터는 집회 중 해산방송을 보내고 전경을 인도 위에 올리고 함성을 지르게 하면서 집회에 참석한 시민에게 위압적인 장..

19일 부산집회 분위기 최고가 될 듯

오늘(7월19일) 서울과 마찬가지로 부산에도 촛불집회가 있습니다. 오늘 집회엔 부산과 경남의 각 지역의 아고리언들이 결합하기로 되어 있어 더 활발할 듯 합니다. 서울의 아고리언들이 5시 쯤 부산시청에 도착하기로 되어있습니다...

놈놈놈, 또 인질마케팅에 속았다

리더쉽 부재가 부른 영화산업의 위기 송강호는 그런데로 재미를 주긴했다.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모습이 웃겼다. 그러나 그 테잎을 너무 많이 틀어 나중엔 짜증이 났다. 영화를 보고난 후 기억나는 건 송강호가 뒤뚱거리는 모습뿐이다...

촛불집회에서 노는 아이들

부산시청 광장의 분수대입니다. 분수대 중심에 해양도시를 상징하는 닻이 있고 그 주변으로 분수가 솟아오릅니다. 7월17일 촛불집회가 열리던 오후엔 분수가 작동하지 않아 바닥에 물기가 없었습니다. 물이 빠져 접근을 허락한 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