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도대체 뭘 잘못했는가?
"집단은 양심이 없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유명하신 학자께서 하신 말이다 개인보다 집단이 더 잘못과 악행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완전히 드러나고 자신의 행위에 철저히 검증받기 때문에 사회의 규범과 도덕을 아주 잘 따른다 그러나 집단안에 있는 개인들은 드러나지 않으므로 집단의 힘을 믿고 비양심적 행동을 서슴치않고 저지른다
대한민국의 선거는 "집단은 양심이 없다"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본이다 개인으로서의 호남인과 영남인은 절대 상대를 비방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심지어 덕담까지 나눈다 그러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투표에선 그들은 상대에게 무참할 정도의 폭력을 행사한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5.31선거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라고한다 하지만 5.31선거에 대해 반성할 쪽은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의 대중이다 수도권은 수도이전에 대한 앙심으로 지역이기주의적 투표를 강화했고 영남과 호남도 지역주의가 더 심화되었다 5.31에서 즉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양심이 없는 집단이 벌인 비이성적 투표였다
그러면 이러한 비이성적 지역주의 투표를 대통령이 부추겼기 때문에 반성하라는 것일까 "모든 실패는 대통령 때문"이라는 법칙이 통하는 한국에선 이렇게 말해도 별 이상하게 안들릴지 모르나 상식에 비추어본다면 이건 억지중에 억지이다 여당은 호남당 이미지 벗기위해 호남쪽 비위까지 거슬려가며 영남쪽 진출을 시도했고 진정한 지역적 차별을 깨기 위해 수도권의 공장과 행정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고있는 중이다 지역주의를 깨는데 실패한 책임은 물을 순 있어도 부추긴 잘못은 없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비판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다 언론들은 대통령이 여러사람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독선적으로 행동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건 말장난이다 언론들이 대통령 취임전 이구동성으로 조언 했던 것이 무엇인가 여론의 눈치보지 말고 개혁을 추진해야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것이라는 충고였다 바로 이 충고를 바꾸어 비판하면 오만과 독선이 된다 오만과 독선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는 개혁은 없다 이러한 비판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개혁은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제 남은 비판은 너무 성급한 개혁과 대통령의 자세론이다 개혁은 좋은데 너무 빠르게 진행하려 했고 그걸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이나 말들이 정말로 거슬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그렇게 역사상 최대의 참패를 갖다 준 선거의 정답이 된단 말인가 이건 정답 순위에서도 10등 이하 정도 되야 상식이다(앞서도 말했지만 첫번째 이유는 지역주의다)
개혁이란 언제나 성급하단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건 언제든지 갖다 붙일 수있는 정말 의미없는 비판이다 대통령의 자세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토론 중에 핵심에서 밀릴 때 항상 상대의 자세를 문제삼을 때가 많다 자세론은 논리에서 밀리는 쪽이 마지막으로 내세우는 궁색한 무기다
과거에 대한 판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내일을 만들어 낼 수있다 5.31선거를 집권세력의 잘못에 대한 심판이라 판단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내일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참여정부의 지역주의타파 실험의 실패라는 판단은 가능하나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라는 판단은 동의할 수 없다
5.31 선거는 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수많은 지역주의 선거의 연장선이다 지난 날의 선거를 들여 봤다면 누구나 5.31선거의 결과를 비슷하게 예측할 수있었다 호남과 영남에 근거를 상실하고 수도권까지 수도이전으로 지지여론을 잃은 우리당의 참패는 누구나 예상할 수있었다 실제로 유시민은 이미 몇년전에 이를 예측하기도 했다
만약 이 선거를 민심의 심판이라고 규정한다면 우리는 정말 희안한 법칙을 하나 만들게 된다 "민심심판 예정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노무현 정권은 나라를 잘 운영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지역주의에 의해 민심의 심판은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는가 이 선거를 민심의 심판이라고 규정하는 즉시 이런 황당한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개혁은 역시 혁명보다 어렵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보면서 난 그것이 개혁신경질이 아닐까라 생각한다 개혁의 과정은 어렵다 개혁당하는 자들의 저항은 끈질기다 그래서 지켜보려면 짜증이난다 게다가 노무현 개혁의 첫번째 대상은 언론이다 김영삼도 막판에 조선일보 손볼려다 흠씬 두들겨 맞았고 김대중은 아예 엎드리고 살았던 막강한 언론이다 지금 그들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개혁신경질을 부추기고 있다
혁명은 민중의 희생으로 성공하고 개혁은 지도자의 희생으로 성공한다 세계사에서 민중의 처참한 희생없이 혁명이 성공했던 적은 없다 박정희도 18년간 폭력적 정권으로 민중을 희생시키면서 지주세력의 국가를 공업화 세력으로 교체시켰다 민중의 희생으로 제도를 바꿨다는 점에선 혁명이랄 수있다 그러나 그건 절대 반복되어선 안될 폭력적인 추악한 혁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150석에서 20석으로 내려앉은 캐나다 여당의 예를 들고있다 참여정부는 정치인의 희생도 감수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게 개혁이다 국민들의 모든 개혁신경질을 다 받아주며 신경질 나서 던진 돌에 온몸에 멍투성이인 정치인들을 다독거리며 개혁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과연 이게 독선이고 오만일까 불굴의 의지와 끈기라고 불러야 하지않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제도가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옳은 소리다 경제학자들은 국가 부의 원천은 그 나라의 제도라고한다 후진국에 아무리 지원을 해줘도 나중에 가보면 지원된 병원이나 공장은 폐허가 되어있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 중엔 국민이 굶어죽는 나라도 있다 프랑스의 대륙이 과학기술에 앞섰지만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왜? 영국의 제도가 프랑스를 앞섰기 때문이다 후진국엔 물적 지원이나 자원을 관리할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부의 제일의 원천은 제도다 제도가 시대에 맞게 서지 않으면 아무리 별 수를 다써도 국가는 발전을 멈추게 되어있다
한국은 지금 국가가 모든 것을 관리했던 시대에서 시장이 관리하는 국가로 넘어가고 있다 노무현은 이미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건 선언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갔다면 그에 맞게 과거 정부가 권력을 쥐고있던 시절의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바뀐 환경과 제도가 충돌하여 한국은 경쟁력을 상실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제도의 혁신만이 한국의 살길이다
만약 한국의 고질적인 지역주의 선거 민심에 따라 국가의 정책을 결정한다면 한국은 어찌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심을 따르라는 것만큼 무책임한 발언은 없다 순간에 불거지거나 고질적인 비이성적 민심에 따르다간 국가가 좌초할 수있다 상식에 근거한 총량적 민심이 정치인이 섬겨야할 진짜 민심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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